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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욱 "애들 보러간다"…'필리버스터 국회' 성탄절 풍경

중앙일보 2019.12.25 15:11
‘필리버스터 국회’는 휴일인 25일 성탄절도 쉼 없이 돌아갔다. 선거법 개정안을 놓고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이 바통을 이어받으며 각각 반대-찬성 토론을 이어갔다. 국회 본회의장을 벗어난 의원들은 각자 지역구에 있는 성당과 교회 등을 찾아 미사·예배에 참석하며 유권자 눈도장 찍기에 바쁜 하루를 보냈다. 필리버스터 극한 대치 속에 여야 의원들이 맞은 크리스마스 풍경들을 모아봤다.
 
◇성탄 케이크 돌린 ‘가족형’=성탄절 전날인 24일 오후 6시 20분 국회 본회의장 앞.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filibuster·무제한 토론) 5번째 주자였던 지상욱(서울 중구성동을·초선) 바른미래당 의원이 허리를 두들기면서 바깥으로 나왔다. 2시간 50분간의 토론을 마친 뒤 곧장 휴대전화를 켜고 어디론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이 2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마친 뒤 눈에 인공눈물을 넣고 있다. [연합뉴스]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이 2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마친 뒤 눈에 인공눈물을 넣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지역구로 가나.
“오늘 지역에는 일이 끝나서 없다. 직원들도 휴가를 보냈다.”
크리스마스이브인데 어디로 가나.
“아이들을 보러 가려고 한다. 아이들이 어리니까….”
 
피로감 가득한 그의 등 너머로 국회 분수대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였다. 지 의원에게는 초등학생인 두 딸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오른쪽)과 조정식 정책위의장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오른쪽)과 조정식 정책위의장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슷한 시각 민주당 원내대표실 한쪽의 탁자에는 초록색 케이크 상자 서너개가 놓여있었다. 보좌진들의 책상에도 드문드문 케이크 상자가 보였다. 산타는 조정식(경기 시흥을·4선) 민주당 정책위의장이었다. 그가 필리버스터 첫날부터 비상대기 근무 중인 원내대표실·원내행정기획실 직원들에게 돌린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간식을 넣어주신다기에 ‘크리스마스’를 상기시켜 드렸더니 의원회관에 있는 가게의 케이크를 사서 돌리셨다”고 말했다. 케이크 상자 옆에는 초밥 도시락 여러 개가 층층이 쌓여있었다. 밤샘 당번으로 낙점된 보좌진·당직자들이 크리스마스 케이크 옆에서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웠다.
 
2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의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실 창문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붙어있다. 하준호 기자

2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의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실 창문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붙어있다. 하준호 기자

◇성탄 전야 국회서 보낸 ‘체념형’=팍팍한 국회 일정 속에서도 저마다의 방법으로 성탄절을 맞이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럴 수 없었던 이들도 있었다. 24일 밤부터 25일 아침까지 본회의 대기조로 편성된 민주당 의원들이 그랬다. 일찌감치 마음을 비운 이들은 별도의 지역 일정을 잡지 않고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인 업무를 봤다.
 
대기조 순번 상 24일 자정부터 25일 오전 4시까지 본회의장을 지켜야 했던 도종환(충북 청주흥덕·재선) 의원은 성탄절 지역구행(行)을 포기했다. 저녁 일정도 있는 터라, 교통체증을 불사하고 지역구에 다녀오기가 빠듯했다고 한다. 같은 대기조에 편성된 강훈식(충남 아산을·초선) 의원은 운동으로 밤샘을 위한 체력을 비축했다고 한다.
 
내년 총선 불출마의 뜻을 밝힌 김성수(비례대표·초선) 민주당 의원은 24일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본회의장으로 들어왔다. 약간의 반주를 곁들인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친 그는 이내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았다. 동료 의원들의 전언에 따르면 그는 한국당 ‘대표 공격수’ 전희경 의원의 토론 차례가 자신의 대기 시간에 돌아올 것을 고려해 미리 대비(?)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 의원의 차례가 뒤로 밀리면서, 김 의원은 하릴없이 같은 당 기동민(서울 성북을·초선) 의원의 토론 시간대에 객석 응원군으로 동참하게 됐다. 기 의원은 “성탄절을 맞아 국민께 선물을 드려야 하는데 이런 모습으로 인사드리게 돼 집권 여당으로서 송구스럽다”며 총 2시간 38분 이어진 찬성 토론의 운을 뗐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선거법 관련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마치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선거법 관련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마치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쉴 틈 없이 움직인 ‘강행군형’=24일 오전 또는 낮에 본회의장 대기조 임무를 마친 의원들은 지역구행을 택했다. 24일 낮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본회의장을 지킨 권미혁(비례대표·초선) 민주당 의원은 의원회관 집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부리나케 짐을 챙겼다. 권 의원은 이날 오전 차기 입성을 노리는 경기 안양동안갑 지역에서 일을 보다가 올라왔는데, 대기 시간이 끝난 뒤 다시 지역으로 내려간 것이다. 번거로운 왕복행이었지만, 그는 “우리 대기조는 전원 출석했다”며 웃어 보였다.
 
최인호 민주당 의원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강행군으로 보냈다. 23일 자정까지 본회의장에 있다가 의원회관 집무실에서 4시간가량 눈을 붙였다. 그러고는 24일 오전 4시부터 오전 8시까지 또다시 본회의장을 지켰다. 그를 포함한 정무위 소속 의원들이 대기조 당번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발언 내용을 다듬은 최 의원은 오전 11시 20분쯤 4번째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서 약 3시간 40분간 서서 토론했다. 토론 후 그의 행방을 묻는 기자에게 최 의원실 관계자는 “곧장 지역으로 달려가셨다”고 전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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