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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도, 수입품도 원인 아니다···내년 봄 민통선이 두려운 돼지열병

중앙일보 2019.12.25 14:00
지난달 7일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변에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 방지와 야생멧돼지 이동을 막기 위한 철조망이 설치된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7일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변에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 방지와 야생멧돼지 이동을 막기 위한 철조망이 설치된 모습. [연합뉴스]

 
지난 9월 17일, 경기도 파주의 돼지농가에서 국내 최초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했다. 발생 100일째를 맞는 25일 현재까지 사육 돼지 14건, 야생의 멧돼지 51마리가 ASF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전파를 막기 위해 강화·김포·파주·연천·철원 등지의 사육 돼지 38만 마리가 살처분됐고, 6만 마리가 긴급 수매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100일
태풍, 수입식품 보다 북한 하천 통한 유입에 무게
"기온 오를 봄 재확산 우려, 방역 소홀하면 안돼"

 
사육 돼지의 추가 발병은 10월 9일 이후 멈춘 상태이나, 민통선 인근 야생 멧돼지에선 ASF 발견이 계속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접경지역 살처분과 추운 날씨로 감염 확산이 주춤하지만, 기온이 오르는 봄에 재확산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돼지열병 어디서 왔나? 여전한 미스터리 

[자료 환경부]

[자료 환경부]

 
발병 100일이 지났지만, 국내 유입 경로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지금까지 지목된 유입 의심 경로는 태풍, 북한과 연결된 강, 불법 수입식품 등 3가지다.

 
불법 수입식품의 경우 12월까지 검역 과정에서 23건이 적발됐다. 하지만 유입 경로로 보긴 어렵다. 살아있는 바이러스가 검출된 적은 없고 모두 유전자만 발견됐기 때문이다.
 
대구국제공항 입국장 내 합동검색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유입을 막기 위해 배치된 농림축산검역본부 영남지역본부 검역요원들이 검색 과정을 시연하는 모습. [뉴스1]

대구국제공항 입국장 내 합동검색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유입을 막기 위해 배치된 농림축산검역본부 영남지역본부 검역요원들이 검색 과정을 시연하는 모습. [뉴스1]

 
'태풍 링링 이후 ASF가 빠르게 퍼졌다'는 정황 때문에 한때 태풍이 유입 경로라는 추정도 나왔다. 하지만 국립환경과학원 정원화 팀장은 “태풍으로 유입됐다면 태풍의 영향을 받은 다른 지역에서도 발병했어야 하지만 특정 지역에 국한됐다”며 가능성을 낮게 봤다.
 
남은 가능성은 북한에서의 유입이다. 정 팀장은 "DMZ 철책을 넘어 직접 유입원이 들어오기는 어렵지만 다른 경로를 통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지역에서 남쪽으로 넘어오는 수계는 크게 임진강 본류와 사미천 두 곳이다. 두 곳에서 연결되는 연천, 파주 지역에서 ASF 감염이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네이버 지도 캡쳐]

북한 지역에서 남쪽으로 넘어오는 수계는 크게 임진강 본류와 사미천 두 곳이다. 두 곳에서 연결되는 연천, 파주 지역에서 ASF 감염이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네이버 지도 캡쳐]

 
지난 19일 열린 '아프리카돼지열병 대응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실비아 크렌델 미국 농무부 동아시아 담당관도 북한 유입설에 무게를 뒀다. 그는 “북한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하지만, 중국과 몽골에서 발병한 패턴을 살펴보면 북한에서 ASF가 창궐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의 ASF는 북한과 연결된 하천인 사미천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사미천은 북한에서 내려와 연천군 장남면 인근에서 임진강에 합류한 뒤, 파주로 흘러가는 하천이다. 이에 대해 정원화 팀장은 "사미천을 통해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아 4차례 조사를 했지만, 증거를 발견하지는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너구리·새가 폐사체 먹고 확산했을 수도 

유입 후 전파 경로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국립환경과학원은 ASF로 사망한 멧돼지의 사체를 뜯어먹은 너구리, 새 등이 다른 멧돼지로 바이러스를 옮겼을 것으로 추정했다. 정 팀장은 “발견된 사체엔 대개 뜯어먹힌 흔적이 있다”며 “파주의 너구리에 위치추적기를 달아 추적한 결과, 지난달 30일 폐사체가 발견된 지점 근처를 너구리가 28일부터 오가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폐사체를 먹은 작은 동물이나 새가 감염원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8월3일 중국 선양에서 최초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해 도로가 통제됐다. [신화통신=연합]

지난해 8월3일 중국 선양에서 최초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해 도로가 통제됐다. [신화통신=연합]

전문가들 "ASF 출처 몰라도 통제 가능"

크렌델 담당관은 19일 심포지엄에서 “세계 어느 나라도 유입 경로를 밝혀낸 나라는 없다. 하지만 유입 경로를 특정하지 못하더라도 ‘ASF 종식’을 선언할 만큼 통제하면 된다”고 밝혔다. 

 
중국의 경우 지난해 8월 ASF가 발병해 전체 33개 성(省)급 행정구역에서 161건의 돼지 확진 사례가 나왔고, 130만 마리 돼지가 도살됐다. 그러나 통행 제한, 음식물쓰레기 사료 금지, 불법 도축 금지 등을 통해 현재는 32개 행정구역에서 ASF가 사라지고 1곳만 남았다. 
 
체코는 지난 2017년 6월 ASF가 첫 발생한 뒤 2018년 2월까지 펜스 설치, 사냥 금지, 예방적 살처분 등 조치를 취했다. 올해 4월에야 'ASF 종식'을 선언했다.
 

접근 어려운 DMZ… 폐사체 처리 힘들어

경기도 파주시에서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살처분이 완료된 양돈농가의 시료 채취를 하러 가는 모습. [연합뉴스]

경기도 파주시에서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살처분이 완료된 양돈농가의 시료 채취를 하러 가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 들어 ASF에 감염된 멧돼지의 사체 발견 지점이 남하하는 모양새다. 11월까지 발견된 멧돼지 폐사체 35건 중 4건이 민통선 밖에서 있었는데, 이달 발견된 멧돼지 16건 중 절반(8건)이 민통선 밖에서 발견됐다. 광역 울타리 내에 있긴 했지만, 민통선 밖 남쪽 지역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페트르 사트란 체코 수의청 동물보건복지국장은 “죽은 지 3주 뒤까지 폐사체에 바이러스가 남아있기 때문에 2주 이내에 치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체코에선 겨울에 굶주린 돼지들이 폐사체를 뜯어먹어 1·2월에 두번째 대규모 ASF가 발생한 사례가 있다.
 
국내에서 ASF는 DMZ 인근에서 발생했다. 폐사체를 빨리 발견해 즉시 처리하는 게 전파 차단에 중요하지만, 군사분계선·지뢰 등으로 접근이 힘들다는 어려움이 있다. 정원화 팀장은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확산 차단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방역 소홀하면 봄에 재확산 가능성

지난달 28일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주재로 경기도북부청에서 열린 ASF 농가 간담회. 농민들은 생계 보상과 재입식을 요구한다.[연합뉴스]

지난달 28일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주재로 경기도북부청에서 열린 ASF 농가 간담회. 농민들은 생계 보상과 재입식을 요구한다.[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겨울 이후를 걱정한다. 조호성 전북대 교수는 "당장은 접경지역의 돼지를 살처분했기 때문에 주춤하지만, 상황이 끝난 건 아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특히 남부 지방은 ASF에 대한 긴장감이 낮아진 듯하다.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봄에 다시 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립생태원 김영준 부장도 “농민들은 벌써 돼지를 다시 키우겠다며 재입식을 요구하지만 감염 경로마저 불분명한 상황에서 섣불리 그랬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질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야생 멧돼지 폐사체의 발견 소식에 너무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김영준 부장은 “민통선 내 멧돼지 폐사체는 최대한 많이 발견해야 전파 경로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도움 된다”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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