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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통원치료받다 교통사고…法 "업무상 재해"

중앙일보 2019.12.25 09:00
오토바이 이미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pixabay]

오토바이 이미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pixabay]

업무상 재해로 꾸준히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아오던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병원 치료를 받고 집으로 오던 길에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사망에 이르렀다면 이 역시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A씨는 1992년 이황화탄소 중독증 등으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이황화탄소 중독증은 독성 화학물질인 이황화탄소를 흡입해 생기는 병인데 청력ㆍ시력장애를 동반하기도 한다. A씨도 꾸준히 입원 및 통원치료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A씨는 집에서 500m가량 떨어진 병원에서 치료 후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오다 넘어져 머리를 다쳤고 약 3주 뒤 사망했다.  
 
A씨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오토바이 사고 역시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며 유족급여를 청구했다. A씨가 업무를 하다 얻은 이황화탄소 중독증 때문에 평형감각이 좋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공단은 인정하지 않았다. A씨의 사고는 교통사고일 뿐이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정한 요양 중의 사고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이황화탄소 중독증과 사망 사이 인과관계도 없다고 봤다. A씨의 유족은 행정소송을 냈다.
 

法, "법에 적힌 유형은 예시일 뿐"

산재법은 업무상 재해를 업무상 사고와 업무상 질병, 출퇴근 재해 등으로 나눈다. 또 시행령에서는 업무수행 중에 사고가 났는지, 사업장 내에서 천재지변으로 발생했는지, 요양하던 중 사고가 났는지 등 좀 더 세밀한 기준을 정한다. 법원은 이런 세밀한 규정이 있어도 모든 업무상 재해의 원인을 법령에 써놓을 수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법령에 나온 유형은 예시에 불과하므로 법과 시행령에 쓰인 유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서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법원은 A씨가 사고를 당하기 전 행적과 사고 장소를 살폈다. A씨는 사고 발생 30분 전 평소 산재 치료를 받던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약을 탔다. 사고 지점은 평소 A씨가 병원과 집을 오가는 길에 있었다. 산재법에 명시된 요양 중 사고는 ▶요양급여와 관련한 의료사고 ▶의료기관 안에서 발생한 업무상 질병과 관련한 사고뿐이다. 하지만 법원은 “사고 발생 장소가 의료기관 내인지 여부는 본질이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업무상 재해를 치료받으려고 병원을 오가며 통상 따를 수 있는 위험이 사고로 발생한 것”이라며 “A씨의 사고와 업무의 연관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13부(재판장 장낙원)는 A씨 유족의 청구를 받아들여 근로복지공단의 유족급여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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