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229만 도시 응급센터 없던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국제적십자위원회, ‘글로벌 스탠더드 응급실’ 완성
주민 치료도 버거운데 2016년 이후 난민에 몸살
주민·난민 행복 공유 위해 시설·교육·시스템 투자
의료 수준 향상해 지역주민과 난민 모두에 혜택
1년 만에 글로벌 스탠더드 응급센터 완성
콕스바자르 현은 지역 주민 229만 명이 2016년 이후 이웃 미얀마에서 몰려온 70만 이상의 로힝야인(미얀마에선 라카인 이탈자로 부름)을 품으며 공존해온 지역이다. 이 병원도 로힝야 난민촌에서 발생한 환자를 치료한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포화상태인 의료 시설이 더욱 부족한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ICRC는 지난 1년간 사다르 병원 응급센터의 시설과 장비를 보강하고 인력을 훈련하는 한편 시스템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강화해왔다.

2018년 9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사다르 병원 응급의료센터. 우상조 기자
한 해 전 ‘지저분한 응급실 앞에 소가 어슬렁’
“소나기가 내린 직후에 도착한 사다르 병원은 입구와 그 주변이 온통 진창으로 변해 있었다. 인근 도로가 포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응급실로 이어지는 병원 입구에선 한쪽 다리가 없는 중년 남성이 목발을 짚고 센터를 나서는 모습, 할머니가 손가락에 피 묻은 붕대를 둘둘 감은 채 다른 여성 두 명의 부축을 받고 나가는 모습이 각각 눈에 들어왔다. 5층짜리 건물에 들어서니 바닥이 흙으로 지저분했다. 보안 사무실이 설치돼 있었지만 문이 잠겨 있었고, 보안 요원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응급센터 뒷문 쪽에 가봤더니 한 여성 환자가 철제 이동 병상에 누운 채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로힝야 난민촌에서 후송된 환자였다. 환자가 들어간 곳을 보니 ‘신장 투석실’이라는 표식과 ‘로힝야 진료소’라는 새 표식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뒷문 양옆으로 보호자로 보이는 남자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응급실 밖에 주차한 앰뷸런스 앞에서 소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콕스 바자르에는 시내에도 여기저기 소가 어슬렁거렸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봤더니 모두 주인이 있는 소이며 방목해 키운다고 한다.

2018년 9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사다르 병원 응급의료센터 앞 복도에 입원실을 구하지 못한 환자들이 담요를 깔고 머물고 있다. 우상조 기자
사복 의료진에 복도까지 입원환자 가득
의사 한명과 남자 간호사 3명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가운도 입지 않고 일반 복장이었다. 현지 국제적십자위원회() 현지 직원을 통해 물었더니 하얀 가운을 입는 것은 필수 규정이 아니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내부에는 에어컨도 통풍시설도 없었다. 천정에서 돌아가는 팬이 유일한 냉방 겸 환기 장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냉장고도 없었고 수납장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필수적인 소독약이나 의약품 응급수술 도구는 보이지도 않았다. 청바지 차림의 간호사들이 시트도 없는 이동식 병상에 앉은 환자에게 붕대를 감아주는 모습이 보였다.

2019년 11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사다르 응급의료센터의 변신한 모습. 의료장비와 시설은 물론 제대로 복장을 갖춘 의료진의 모습까지 모든 것이 변했다. 채인택 기자
서비스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 무상 의료
병원에 전기는 들어오지만 두 대의 승강기 중 하나는 가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승강기 문 앞에 두 명의 환자가 나란히 이불을 깔고 누워서 수액을 맞고 있었다. 콕스바자르 ICRC 사무소의 공보담당 무함마드 잠쉐는 “의료비는 무료에 가까워 진료비가 1인당 3다카~5다카(약 42~70원)에 불과하다”라고 알려줬다. 의료 서비스 공급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무상의료의 현실이었다. 복도 벽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이 병원을 지원했다는 표시가 보였다.

2019년 11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사다르 병원 응급센터의 모습. 왼쪽에 경비와 오른쪽에 환자 분류 간호사의 모습이 보인다. 가운데는 로힝야 난민촌에서 이송된 응급 환자다. 채인택 기자
병원 수준 높여 주민과 난민 모두에 혜택
당시 콕스바자르 ICRC 사무소 공보관인 오마르 샤리프는 “의료 시설과 장비를 보강하면서 지역주민들에게 국제인도주의기구가 자신들에게도 도움을 준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로힝야 난민의 유입으로 지역주민들이 반감을 갖지 않도록 세심하게 노력하는 현장이었다.

2019년 11월 사다르 병원 응급실 벽에 붙은 환자 분류 안내문. 사진을 더해서 이해가 쉽도록 했다. 채인택 기자
응급실 시스템도 선진국 수준으로
분류 간호사는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를 세 등급으로 나누고 있었다. 간단한 처치만 필요한 환자, 검사와 진단이 필요한 환자, 그리고 곧바로 진료가 필요한 긴급 환자다. 이렇게 분류가 이뤄지면 각기 다른 방에 들어가 필요한 처치나 진료를 받게 된다. 압달렐라 타일크 ICRC 콕스바자르 병원 응급실 프로젝트 담당은 “이러한 환자 분류법을 정착하는 등 시스템부터 정착해야 환자를 위해 제대로 돌아가는 응급센터를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사다르 병원 응급센터 혁신 작업을 진행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 병원 관계자들의 모습, 주민과 난민이 모두 만족할 수준의 응급의료를 정착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채인택 기자
주민과 난민 모두 만족할 응급의료 서비스
무함마드 모히우딘 사다르 병원 원장은 “ICRC와 협력해서 국제 수준으로 내실을 다진 응급센터는 우리 병원의 자부심”이라며 “주민과 난민 모두에게 충분한 응급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사다르 병원 응급센터에선 의료진을 상대로 한 ICRC의 교육도 활발했다. ICRC 코스바자르 사무실의 마리 크래머 응급실 의료진 교육담당(응급의학 전문의)는 “집중 교육을 통해 사다르 병원 의료진에게 응급의학을 전수하고 있다”며 “장비와 시스템 도입, 인력 교육은 응급센터 수준을 높이는 세 기둥”이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ICRC 사무소릐 경제보장 담당 이멜트 차크라(완쪽)가 난민 유입으로 경제 사정이 어려워진 지역 주민 리부불와를 만나 애로 사항을 듣고 있다. 난민들의 몰려오면서 임시 거처를 짒시 위한 대나무 수요가 늘면서 값이 올랐다. 그런데 리부불와가 만들어 파는 게잡이 대나무 통발의 원료가 대나무다. 채인택 기자
주민·난민 공존 위한 경제 프로그램도 가동
게를 잡는 데 필요한 대나무 통발을 만드는 수공업자인 리부불와를 만났더니 “남편이 미얀마와 국경을 이루는 강에서 수산업을 해왔는데 난민 사태로 경비가 강화되면서 일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나무 통발을 만들어 이를 보충하려 했지만 난민이 들어오면서 재료인 대나무 값이 올라 힘들었는데 ICRC의 지원으로 배도 하나 장만해 생계를 꾸리고 있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ICRC의 소액 대출로 농사 면적을 늘린 논민 몸다르 베곰(오른쪽)이 아들과 함께 밭을 돌보고 있다. 채인택 기자
난민 오면서 생계 어려워진 주민 불만 해소

숲에서 땔감을 생산해 팔던 무함마드 이브라힘은 로힝야 난민이 몰려오면서 당국이 벌목을 금지해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방글라데시 ICRC의 소액 대출로 축산업을 시작했는데 마침 그의 집을 찾아간 그날 아침 키우던 암소가 송아지를 낳았다. 채인택 기자.
콕스바자르(방글라데시)=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