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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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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소가 어슬렁' 응급센터···가난한 방글라데시에 기적이 왔다

중앙일보 2019.12.25 07:10
1인당 국내총생산(GDP) 1745달러(2018년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의 가난한 나라인 방글라데시에 기적이 일어났다. 229만 명이 사는 동남부 콕스바자르 현의 최대 의료기관인 사다르 병원에 최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지원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의 시설과 인력, 그리고 시스템을 갖춘 응급센터가 문을 열었다. 이 지역 최초이자 유일의 제대로 된 응급센터다. 주민과 난민의 공존과 화합을 위한 사업의 하나다.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229만 도시 응급센터 없던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국제적십자위원회, ‘글로벌 스탠더드 응급실’ 완성
주민 치료도 버거운데 2016년 이후 난민에 몸살
주민·난민 행복 공유 위해 시설·교육·시스템 투자
의료 수준 향상해 지역주민과 난민 모두에 혜택

  

1년 만에 글로벌 스탠더드 응급센터 완성

지난달 사다르 병원을 찾았더니 번듯한 응급실이 손님을 반겼다. 응급실의 각 방에는 각종 전자 장비가 가득했고, 깨끗한 시트가 깔린 병상이 즐비했다. 약장과 보관장에는 각종 의료용품과 의약품이 가득했다. 의료진은 제대로 된 가운이나 수술복을 입고 환자를 맞고 있었다.  
콕스바자르 현은 지역 주민 229만 명이 2016년 이후 이웃 미얀마에서 몰려온 70만 이상의 로힝야인(미얀마에선 라카인 이탈자로 부름)을 품으며 공존해온 지역이다. 이 병원도 로힝야 난민촌에서 발생한 환자를 치료한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포화상태인 의료 시설이 더욱 부족한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ICRC는 지난 1년간 사다르 병원 응급센터의 시설과 장비를 보강하고 인력을 훈련하는 한편 시스템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강화해왔다.  
2018년 9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사다르 병원 응급의료센터. 우상조 기자

2018년 9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사다르 병원 응급의료센터. 우상조 기자

 

한 해 전 ‘지저분한 응급실 앞에 소가 어슬렁’

그 결과 지금 보기에는 너무도 일상적인 응급실 모습으로 변했다. 하지만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9월 이곳을 찾았을 때만 해도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당시만 해도 콕스바자르 주에는 제대로 된 응급실 개념조차 없었다. 당시의 현장 르포를 잠시 소개한다.  
“소나기가 내린 직후에 도착한 사다르 병원은 입구와 그 주변이 온통 진창으로 변해 있었다. 인근 도로가 포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응급실로 이어지는 병원 입구에선 한쪽 다리가 없는 중년 남성이 목발을 짚고 센터를 나서는 모습, 할머니가 손가락에 피 묻은 붕대를 둘둘 감은 채 다른 여성 두 명의 부축을 받고 나가는 모습이 각각 눈에 들어왔다. 5층짜리 건물에 들어서니 바닥이 흙으로 지저분했다. 보안 사무실이 설치돼 있었지만 문이 잠겨 있었고, 보안 요원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응급센터 뒷문 쪽에 가봤더니 한 여성 환자가 철제 이동 병상에 누운 채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로힝야 난민촌에서 후송된 환자였다. 환자가 들어간 곳을 보니 ‘신장 투석실’이라는 표식과 ‘로힝야 진료소’라는 새 표식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뒷문 양옆으로 보호자로 보이는 남자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응급실 밖에 주차한 앰뷸런스 앞에서 소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콕스 바자르에는 시내에도 여기저기 소가 어슬렁거렸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봤더니 모두 주인이 있는 소이며 방목해 키운다고 한다.  
 
2018년 9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사다르 병원 응급의료센터 앞 복도에 입원실을 구하지 못한 환자들이 담요를 깔고 머물고 있다. 우상조 기자

2018년 9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사다르 병원 응급의료센터 앞 복도에 입원실을 구하지 못한 환자들이 담요를 깔고 머물고 있다. 우상조 기자

사복 의료진에 복도까지 입원환자 가득

병원 1층 응급실을 찾았더니 먼지가 잔뜩 묻은 채 반쯤 열린 창문이 보였다. 응급실은 10㎡ 남짓한 공간만 있을 뿐 시설이나 의료진은 없다시피 했다. 응급실은 별도로 구획되지 않고 병원 입구에서 안으로 이어지는 복도 옆의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의사 한명과 남자 간호사 3명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가운도 입지 않고 일반 복장이었다. 현지 국제적십자위원회() 현지 직원을 통해 물었더니 하얀 가운을 입는 것은 필수 규정이 아니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내부에는 에어컨도 통풍시설도 없었다. 천정에서 돌아가는 팬이 유일한 냉방 겸 환기 장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냉장고도 없었고 수납장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필수적인 소독약이나 의약품 응급수술 도구는 보이지도 않았다. 청바지 차림의 간호사들이 시트도 없는 이동식 병상에 앉은 환자에게 붕대를 감아주는 모습이 보였다.  
2019년 11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사다르 응급의료센터의 변신한 모습. 의료장비와 시설은 물론 제대로 복장을 갖춘 의료진의 모습까지 모든 것이 변했다. 채인택 기자

2019년 11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사다르 응급의료센터의 변신한 모습. 의료장비와 시설은 물론 제대로 복장을 갖춘 의료진의 모습까지 모든 것이 변했다. 채인택 기자

 

서비스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 무상 의료

응급실 바깥의 복도는 바닥에 담요를 깔고 누워있는 환자와 보호자로 가득했다.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입원실은 250병상밖에 없는데 현재 600명의 환자가 병원에 있다고 했다. 병상이 아닌 바닥에 누워 입원하면서 빈 병상이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병상을 얻지 못한 환자는 복도와 통로에 빡빡하게 이불이나 담요 깔고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병원에 전기는 들어오지만 두 대의 승강기 중 하나는 가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승강기 문 앞에 두 명의 환자가 나란히 이불을 깔고 누워서 수액을 맞고 있었다. 콕스바자르 ICRC 사무소의 공보담당 무함마드 잠쉐는 “의료비는 무료에 가까워 진료비가 1인당 3다카~5다카(약 42~70원)에 불과하다”라고 알려줬다. 의료 서비스 공급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무상의료의 현실이었다. 복도 벽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이 병원을 지원했다는 표시가 보였다.  
2019년 11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사다르 병원 응급센터의 모습. 왼쪽에 경비와 오른쪽에 환자 분류 간호사의 모습이 보인다. 가운데는 로힝야 난민촌에서 이송된 응급 환자다. 채인택 기자

2019년 11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사다르 병원 응급센터의 모습. 왼쪽에 경비와 오른쪽에 환자 분류 간호사의 모습이 보인다. 가운데는 로힝야 난민촌에서 이송된 응급 환자다. 채인택 기자

 

병원 수준 높여 주민과 난민 모두에 혜택

당시 현장을 함께 방문했던 ICRC 콕스바자르 사무소의 병원 프로젝트 담당자인 바버러 텀벌은 “이곳은 콕스 바자르 유일의 응급시설”이라며 “현재 ICRC의 지원으로 응급실 리노베이션을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뒷문 근처에 있는 빈 공간을 찾았더니 벽에 벽돌을 쌓고 바닥을 시멘트로 바르는 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텀벨은 “의료센터에 제대로 된 응급실을 만들고 그 운영을 지원하면 지역주민들과 난민들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목적을 설명했다. 병원을 병원답게 만드는 지원 프로그램이다.  
당시 콕스바자르 ICRC 사무소 공보관인 오마르 샤리프는 “의료 시설과 장비를 보강하면서 지역주민들에게 국제인도주의기구가 자신들에게도 도움을 준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로힝야 난민의 유입으로 지역주민들이 반감을 갖지 않도록 세심하게 노력하는 현장이었다.  
2019년 11월 사다르 병원 응급실 벽에 붙은 환자 분류 안내문. 사진을 더해서 이해가 쉽도록 했다. 채인택 기자

2019년 11월 사다르 병원 응급실 벽에 붙은 환자 분류 안내문. 사진을 더해서 이해가 쉽도록 했다. 채인택 기자

 

응급실 시스템도 선진국 수준으로  

1년 뒤 다시 찾은 사다르 병원 응급실은 그야말로 기적의 현장이었다. 심지어 운영 시스템도 비약적으로 개선한 상태였다. 응급실은 입구부터 의료 선진국 수준의 관리를 하고 있었다. 경비원이 입구를 지키고 있어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 응급실을 찾은 환자나 보호자, 또는 앰뷸런스를 타고 온 환자와 의료진은 응급실 창문을 통해 환자 상태를 묻는 설문지를 받고 이에 답해야 한다. 설문지 답을 살펴본 분류 간호사가 응급실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야 비로소 응급실에 들어올 수 있다. 골람 사르와르 ICRC 콕스바자르 현장 의사는 “응급센터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시설과 장비와 함께 꼭 필요한 환자가 응급실에 찾아와 적합한 처치와 치료를 받는 시스템을 정착하는 게 필수”라고 말했다.    
분류 간호사는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를 세 등급으로 나누고 있었다. 간단한 처치만 필요한 환자, 검사와 진단이 필요한 환자, 그리고 곧바로 진료가 필요한 긴급 환자다. 이렇게 분류가 이뤄지면 각기 다른 방에 들어가 필요한 처치나 진료를 받게 된다. 압달렐라 타일크 ICRC 콕스바자르 병원 응급실 프로젝트 담당은 “이러한 환자 분류법을 정착하는 등 시스템부터 정착해야 환자를 위해 제대로 돌아가는 응급센터를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사다르 병원 응급센터 혁신 작업을 진행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 병원 관계자들의 모습, 주민과 난민이 모두 만족할 수준의 응급의료를 정착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채인택 기자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사다르 병원 응급센터 혁신 작업을 진행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 병원 관계자들의 모습, 주민과 난민이 모두 만족할 수준의 응급의료를 정착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채인택 기자

주민과 난민 모두 만족할 응급의료 서비스  

응급센터 벽에는 이 같은 응급환자 분류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분류하는지를 적은 그림과 글이 붙어 있었다. 환자와 보호자 교육용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아직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선진 응급실 운영 시스템이다. 사스(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 당시 문제가 돼 환자 분류 시스템이 급히 보급됐지만 지금은 상당수 의료기관에서 흐지부지된 상태다.  
무함마드 모히우딘 사다르 병원 원장은 “ICRC와 협력해서 국제 수준으로 내실을 다진 응급센터는 우리 병원의 자부심”이라며 “주민과 난민 모두에게 충분한 응급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사다르 병원 응급센터에선 의료진을 상대로 한 ICRC의 교육도 활발했다. ICRC 코스바자르 사무실의 마리 크래머 응급실 의료진 교육담당(응급의학 전문의)는 “집중 교육을 통해 사다르 병원 의료진에게 응급의학을 전수하고 있다”며 “장비와 시스템 도입, 인력 교육은 응급센터 수준을 높이는 세 기둥”이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ICRC 사무소릐 경제보장 담당 이멜트 차크라(완쪽)가 난민 유입으로 경제 사정이 어려워진 지역 주민 리부불와를 만나 애로 사항을 듣고 있다. 난민들의 몰려오면서 임시 거처를 짒시 위한 대나무 수요가 늘면서 값이 올랐다. 그런데 리부불와가 만들어 파는 게잡이 대나무 통발의 원료가 대나무다. 채인택 기자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ICRC 사무소릐 경제보장 담당 이멜트 차크라(완쪽)가 난민 유입으로 경제 사정이 어려워진 지역 주민 리부불와를 만나 애로 사항을 듣고 있다. 난민들의 몰려오면서 임시 거처를 짒시 위한 대나무 수요가 늘면서 값이 올랐다. 그런데 리부불와가 만들어 파는 게잡이 대나무 통발의 원료가 대나무다. 채인택 기자

 

주민·난민 공존 위한 경제 프로그램도 가동

ICRC는 이 지역에서 지역 주민과 난민 동시 혜택 받는 복지 프로그램도 가동해 ‘화합과 공존’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었다. 이멜트 차크라 ICRC 콕스바자르 사무소 경제보장팀장은 “난민 유입으로 생계가 곤란해진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경제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차크라는 “난민을 받아들인 지역주민의 불편과 불만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는 게 주민과 난민의 공존을 위해 가장 필요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게를 잡는 데 필요한 대나무 통발을 만드는 수공업자인 리부불와를 만났더니 “남편이 미얀마와 국경을 이루는 강에서 수산업을 해왔는데 난민 사태로 경비가 강화되면서 일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나무 통발을 만들어 이를 보충하려 했지만 난민이 들어오면서 재료인 대나무 값이 올라 힘들었는데 ICRC의 지원으로 배도 하나 장만해 생계를 꾸리고 있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ICRC의 소액 대출로 농사 면적을 늘린 논민 몸다르 베곰(오른쪽)이 아들과 함께 밭을 돌보고 있다. 채인택 기자

방글라데시 ICRC의 소액 대출로 농사 면적을 늘린 논민 몸다르 베곰(오른쪽)이 아들과 함께 밭을 돌보고 있다. 채인택 기자

 

난민 오면서 생계 어려워진 주민 불만 해소  

밭농사를 짓는 농부 몸다르 베곰은 “난민이 몰려오면서 농업용수로 써왔던 개천의 물이 오염되고, 국제기구에서 난민들에게 공급한 쌀이 흘러나오면서 쌀값이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ICRC가 소액 대출을 해준 덕분에 밭을 더 많이 빌려 농사 규모를 키우면서 수입을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숲에서 벌목을 통해 땔감 장사를 해왔던 무함마드 이브라힘은 난민들이 마구잡이로 숲을 훼손할까 우려한 정부가 아예 벌목을 금지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그는 “ICRC의 대출로 암소를 사서 축산업을 시작했다. 그의 집을 찾은 바로 그날 새벽에 암소가 송아지를 출산했다. 이브라힘은 “송아지를 키워 팔고 그 돈으로 더 많은 가축을 기르고 싶다”고 말했다.  
숲에서 땔감을 생산해 팔던 무함마드 이브라힘은 로힝야 난민이 몰려오면서 당국이 벌목을 금지해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방글라데시 ICRC의 소액 대출로 축산업을 시작했는데 마침 그의 집을 찾아간 그날 아침 키우던 암소가 송아지를 낳았다. 채인택 기자.

숲에서 땔감을 생산해 팔던 무함마드 이브라힘은 로힝야 난민이 몰려오면서 당국이 벌목을 금지해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방글라데시 ICRC의 소액 대출로 축산업을 시작했는데 마침 그의 집을 찾아간 그날 아침 키우던 암소가 송아지를 낳았다. 채인택 기자.

차크라는 “지역 주민에게 경제적인 안정을 제공하는 일은 국제인도주의 사업에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국제인도주의 기구는 보이지 않는 문제까지 미리미리 찾아 대비하고 있었다. 국제인도주의기구가 난민들에게 임시로 기거할 곳과 식량, 생필품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지역주민과의 공존까지 고민하는 세심한 모습을 확인했다.  
 
콕스바자르(방글라데시)=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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