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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무원이다

'태안 몰디브' 득템했다…드론 띄워 3억원 벌어준 공무원

중앙일보 2019.12.25 06:00
‘드론 공무원’.

 
지현규(52) 태안군청 기획감사실 주무관의 별명이다. 그가 나고 자란 태안 곳곳을 누비며 찍은 드론 영상은 내년부터 군청 홈페이지와 유튜브 등을 통해 태안을 소개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그는 취미인 드론을 날려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고선명(UHD) 홍보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화제가 됐다. 애지중지하는 ‘드로니(애칭)’로부터 주인인 지 주무관의 얘기를 들어봤다.

 

드론 흠뻑 빠져 ‘재입사’

'드론 공무원'으로 유명한 지현규 태안군청 주무관이 촬영에 나가기 앞서 배 위에서 '드로니(드론 애칭)'와 포즈를 취했다. [태안군청]

'드론 공무원'으로 유명한 지현규 태안군청 주무관이 촬영에 나가기 앞서 배 위에서 '드로니(드론 애칭)'와 포즈를 취했다. [태안군청]

주인님은 원래 2004년부터 군청에서 운전직 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다 2010년 TV에서 우연히 본 드론 다큐멘터리가 정신을 쏙 빼놨죠. 이후 취미로 즐기면서 ‘드론으로 내 고향을 홍보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답니다. 혹시 몰라 드론 조종 자격증까지 땄죠. 마침 2017년 태안을 알리는 일을 하는 지방전문경력관 채용 공고가 났습니다. 주인님은 면접장에서 “취미인 드론으로 고향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남기고 싶다”고 했답니다. ‘드론 공무원’이 탄생한 배경입니다.

 

20㎏ ‘강제 다이어트’

지현규 태안군청 주무관이 배 위에서 드론을 조종하고 있다. [태안군청]

지현규 태안군청 주무관이 배 위에서 드론을 조종하고 있다. [태안군청]

본격적으로 드론 촬영에 뛰어든 건 올 초부터입니다. 저를 다루는 건 생각보다 우아하지 않습니다. 태안은 섬이 114개, 해안선만 559㎞에 달합니다. 주로 해가 쨍쨍할 때 배 위에서 촬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멀미는 기본, 내리쬐는 햇볕을 피할 곳도 없죠. ‘천하절경’은 쉽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물때와 날씨ㆍ바람ㆍ일출ㆍ일몰 등 조건을 완벽하게 맞추려고 한 장소에 5~6차례씩 들르는 건 다반사입니다.

 
배터리를 충전해 한 번에 실제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 안팎. 주인님은 배터리를 7개씩 들고 다니는 것도 모자라 업무용 차에 대용량 인버터를 달아 충전을 반복했습니다. 올여름 104㎏였던 주인님 몸무게가 겨울에 84㎏까지 쏙 빠졌다니, 제게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요?

 

장안사퇴 ‘득템’하다  

저 사실 죽을 뻔했습니다. 욕심 많은 주인님이 자초한 면도 있죠. 생동감 있는 장면을 찍겠다며 ‘근접비행’을 많이 요구하셨거든요. 갈매기나 나무, 돌부리에 부딪힌 적도 많았습니다. 한 번은 산 중턱에 떨어진 저를 찾으러 주인님이 한 시간 동안 헐레벌떡 뛰어오셨더라고요. 그런데 저를 집어 들더니 하는 말.

“배터리 꺼지면 위치를 파악할 수도 없고, 촬영한 자료 다 잃을 뻔했네!”

 
주인님은 사비를 들여 주말에 배를 타고 나갈 때가 많았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성과도 있었습니다. 지난 8월 대조기(바닷물이 크게 빠질 때) 때만 나타나는 거대 모래섬 ‘장안 사퇴(砂堆)’ 장관을 찍었거든요. 학암포로부터 3㎞, 낚싯배로 20분을 나가자 바다 한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길이 35㎞, 폭 4㎞, 높이 최대 35m 규모 모래섬…. 산전수전 다 겪은 저도 처음 보는 장관이었습니다. ‘태안의 몰디브’로 불리며 포털 실시간 검색어로도 등장했죠.

 

“복지부동 제일 싫다”

주인님은 ‘드로니 일기’를 써내려 왔습니다. 1년여 동안 97곳에서 드론을 484번 띄웠다네요. 88시간 동안 1955㎞ 비행하며 찍은 사진만 4668장, 동영상은 26시간 분량이랍니다. 보통 드론은 카메라로 찍은 동영상의 ‘조미료’ 역할을 할 때가 대부분인데 주인님은 오로지 드론으로만 다큐멘터리를 찍었다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군청에선 “외주 제작을 맡겨도 볼 수 없는 고품질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예산을 1억원 이상 절감했다. 홍보 효과까지 더하면 3억원 이상 기여했다”고 합니다.

 
자랑 하나 할까요. 최근 충남 미디어 영상 공모전에 제가 찍은 ‘하늘에서 본 태안 장안사퇴’를 출품해 수상했습니다. 상금 100만원은 불우이웃에 기부했죠. 10~27일 군청 1층 로비에서 그동안 촬영한 작품 50점, 15분 분량 영상 전시회도 열고 있습니다. “공무원은 수동적이란 말, 복지 부동하다는 편견이 제일 싫다”는 지.현.규. 주무관을 주인님으로 둬서 자랑스럽습니다.

김기환의 나공
[나공]은 “나는 공무원이다”의 준말입니다. 세종시 정부 부처와 공기업을 중심으로 세금 아깝지 않게 뛰는 공무원이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각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며 헌신하는 이들의 고충과 애환, 보람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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