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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절벽 심각한데 농어촌 명문고 전국 모집까지 막혀 반발

중앙일보 2019.12.25 05:01
경남 거창고 모습. [중앙 포토]

경남 거창고 모습. [중앙 포토]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을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가라.’
 

정부 2025년부터 농어촌 명문고에서 전국단위 모집 금지
학교들 "인구절벽인데 대도시에서 농어촌 오는 문은 넓혀야"

경남 거창고 내에 걸려 있는 ‘직업 선택의 십계(十戒)’ 중 일부다. 한 번이라도 이 글귀를 본 사람이라면 이 학교가 어떤 곳인지 궁금증을 일으킨다. 남보다 좀 더 나은 직장 더 높은 자리를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와 달리 ‘낮은 곳에서 나보다 남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가라’는 뜻이 담긴 이런 글귀를 교육적 가치관으로 내세우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거창고 재학생과 졸업생은 이런 가치를 소중히 여겨 가슴에 새기며, 사회에 나가서는 행동으로 이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거창고가 지역에서 대학 입시 성적 외에도 명문고로 인정받고 있는 또 다른 배경이다.  
 
그런데 이런 경남 거창고와 남해군 남해해성고 등 전국의 농어촌 명문고들이 폐교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달 7일 교육부가 ‘고교서열화 해소와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 정책’에서 농어촌 명문고의 전국 단위 모집을 2025년부터 폐지하기로 하면서다. 지역의 반발이 커지고 있지만 아직 개선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24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 79곳을 2025년 일반고로 전환하면서 전국을 대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농어촌 자율학교의 모집 특례를 폐지하겠다는 방침도 함께 밝혔다. 해당 학교는 모두 49곳이다.    
 
경남에서는 거창고·거창대성고·거창여고·고성중앙고·남해제일고·남해해성고·세종고·의령고·창녕고·창녕대성고·창녕여고·창녕옥야고·칠원고·하동고·함안고·함양고·합천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농어촌자율학교는 현재 전국 단위로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또 일반고와 달리 특성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상당수가 기숙사를 운영해 학생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교육환경도 갖추고 있어 입시에서도 성과를 내는 곳이 많은 편이다. 이로 인해 경남뿐 아니라 전국의 학생이 농어촌 명문고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2025년부터 타 지역 학생 선발권은 없어지면서 이들 명문고가 좋은 학생을 받을 수 없어 위기에 놓인 것이다. 실제 이들 학교가 있는 곳은 대부분 인구가 줄어드는 농어촌 지역이어서 다른 지역 학생을 모집하지 못할 경우 일정 기간이 지나면 폐교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창녕 옥야고 수업 모습. [중앙 포토]

창녕 옥야고 수업 모습. [중앙 포토]

 
남해 해성고 관계자는 “한 때 학생 수 감소로 폐교 위기까지 겪었지만 2004년 자율학교로 지정된 이후 교사들의 노력으로 그동안 전국에서 우수학생을 모집해 기숙사 등을 제공하면서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명문고로 거듭났다”며 “그런데 갑자기 지역 모집으로 바꾸라고 하는 것 학교 문을 닫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다”고 반발했다. 거창고 관계자는 “농어촌 명문고의 전국 모집을 폐지하면 결국 해당 학교에는 지역 내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지만 그나마 덜 알려진 학교는 학생 모집이 힘들어지는 연쇄반응도 우려된다”며 “농어촌의 인구 절벽현상이 심각해지는 사회적인 부분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수도권이나 대도시에서 농어촌으로 오는 문은 넓히고 그 반대는 좁히는 식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남해·거창=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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