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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총대 멘 문희상 상처뿐인 리더십…野 “죄인” “충견” “날강도”

중앙일보 2019.12.25 05:00
문희상 국회의장이 23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의사일정 변경 동의를 통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전격 상정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의장석 왼쪽부터 이주영 국회부의장, 문 의장,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경록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이 23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의사일정 변경 동의를 통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전격 상정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의장석 왼쪽부터 이주영 국회부의장, 문 의장,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경록 기자

 
“역사의 죄인” “권력의 시녀” “좌파 충견 노릇” “날강도”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문희상 국회의장이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서 들은 말들이다. 의장으로서의 권위는 물론 인격조차 지키기 힘들어졌다. 전날 그가 한국당 반대를 무릅쓰고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상정하면서 겪는 일이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문 의장에 대해 네 가지 대응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직권남용·권리방해 혐의 형사고발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사퇴 촉구 결의안 제출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 청구 등이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겠다는 ‘최대 압박’ 메시지가 실렸다. 심 원내대표는 “의장의 중립 의무를 강화하고 이를 어길 경우 탄핵할 수 있도록 국회법을 개정하겠다”고도 했다.
 
과거에도 여당이 주도하는 안건을 국회의장이 주도해 처리한 예는 있었다. 하지만 야당의 반발이 “원천 무효”, “사퇴하라” 선을 넘지 않았다. “천벌”, “엉터리”, “날강도”라는 원색적 언술뿐 아니라 아들 세습공천 문제까지 거론하며 비난이 집중되는 이번 상황은 분명 이례적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항의 가운데 임시국회 회기 결정 안건을 가결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희상 국회의장이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항의 가운데 임시국회 회기 결정 안건을 가결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소 ‘의회주의자’를 자처해 온 문 의장이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연말 정국에서 문 의장이 총대를 멘 두 장면이 계기가 됐다. 한 번은 국회에서 “여야가 없다”고 일컬어지는 내년도 예산안 처리 때다. 나랏돈 문제에는 의원 개개인이 당파보다 실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뜻에서 나온 말인데, 올해는 싸움판이었다. 문 의장은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지난 10일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이하 4+1)가 주도해 제1야당을 배제한 채 예산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의사진행을 이끌었다.
 
한국당이 이때 “아들 공천”, “지역구 세습” 논란을 처음 공개 제기했다. 문 의장은 “정기국회 회기 내 예산안 처리” 명분을 내세워 의사봉을 두드렸다. 한국당 쪽에서 “천벌 받을 의장”이라는 외침이 나왔다. 의장실 관계자는 “천벌이라는 말에 (문 의장이)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고 전했다.
 
13일 뒤 이뤄진 선거법 개정안 상정은 문 의장 리더십에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냈다. 두어 달 전부터 “내가 총대를 메겠다”고 공언한 그였다. 23일 한 시간 넘게 의장실 문을 두드린 한국당 원내지도부를 피해 뒷문으로 나가 본회의를 개의했다. 한국당이 ‘예산부수법안 수정안 무더기 제출’로 지연 작전을 펴자 돌연 “의사일정 변경 표결”을 선언하는 과감함도 보였다. 예산부수법안(20건) 처리를 또 다시 미루는 부담을 감수하며 이날 27번째 안건으로 있던 선거법 개정안을 네번째로 확 끌어올려 상정했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이인영(더불어민주당), 심재철(자유한국당), 오신환(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71회국회(정기회) 제12차 본회의에서 2020년도 예산안 상정을 두고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문희상 국회의장과 이인영(더불어민주당), 심재철(자유한국당), 오신환(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71회국회(정기회) 제12차 본회의에서 2020년도 예산안 상정을 두고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후유증은 컸다. 24일 종일 이어진 필리버스터(filibuster·무제한 토론)에서 문 의장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권성동 한국당 의원은 그를 “문희상 씨”라고 지칭한 뒤 정면으로 쳐다보며 “정말로 한심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의장이다. 나 같으면 쪽팔려서라도 자진해서 내려오겠다”고 했다.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고 국회법을 무시·파괴하는 모습을 보여준 의장에게 서운함을 넘어 정말 ‘과한 것 아닌가’ 하는 말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문 의장이 비판받는 핵심 지점은 국회법의 ‘자의적 해석’이다. 필리버스터 적용이 가능한지를 놓고 해석상 논란이 있었던 ‘임시국회 회기 결정의 건’에 대해 민주당 손을 들어준 게 대표적 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대 교수는 “국회법은 적용 시 해석 논란이 끊이지 않는 속성이 있어 국회의장 등 권한 행사 주체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면서 “의장이 되면 당적을 벗고 무소속이 되는 이유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최대한 여야 합의 정신에 따라 국회를 운영하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문 의장의 친정인 민주당은 ‘문희상 엄호’ 기조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24일 오전 “국회의장을 향한 한국당의 치졸한 인신공격 중단을 촉구한다”면서 “그간 한국당 출신 의장들이 보여준 행태와 극명히 대비되는 합리적 의사 진행”이라고 감쌌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같은 날 라디오(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쪼개기 임시국회’ 전술과 관련해 “회기를 25일까지 3일 정도 잡아 봤더니 의장이 너무 힘들다”면서 회기 단축 가능성을 시사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7월 국회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7월 국회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문 의장은 지난 7월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국회의장이라는 임무가 정치인생의 화룡점정이자 마지막 무대라는 각오”라고 밝혔다. “남은 임기 동안 신뢰받는 국회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가 수장으로 있는 20대 국회는 야당도 아닌 여당에서 나온 말처럼 “역대 최악의 국회”(표창원 의원)가 됐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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