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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성탄 아침에 되돌아본 가수 양준일

중앙일보 2019.12.25 00:33 종합 26면 지면보기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이달 초 추억의 가수를 재소환하는 JTBC ‘슈가맨’에 나온 그를 보고 유튜브 클립을 찾아봤다. 30 여년전 우리에게 이런 가수가 있었다니 놀라웠다. 1990년대 초 짧게 활동한 재미교포 가수 양준일(50) 얘기다. ‘뉴트로’ 열풍 속에 90년대 음악을 재조명하는 유튜브 열기가 그를 발견했다. ‘리베카’ 등 시대를 앞서간 뉴 잭 스윙 풍의 음악과 ‘힙’한 패션, 지드래곤을 닮은 외모로 ‘90년대 지디’라 불린다. 유튜브 팬덤이 상당했다. ‘슈가맨’에 출연한 그는 미국의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며 서둘러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이름이 실검에 오르고, CF 출연 제의가 잇따르고, 30 여년 만에 잡힌 팬미팅 티켓은 일순 매진됐다.
 

낯설단 이유, 배척받은 90년대 스타
뉴트로 열풍 타고 30년 만에 재발견
우리 안 혐오와 차별문화 돌아봐야

활동 당시 양준일은 한국에 없던 ‘낯설고 이상한’ 가수였다. 한국어가 서툴러 영어 가사를 많이 쓰고, ‘삘’대로 흐느적대는 자유분방한 퍼포먼스에 첨단 트렌드인 ‘젠더리스’ 패션을 선보였다. ‘영어, 퇴폐’ 등의 이유로 방송사 심의에 걸리고, 무대 위로 돌이 날아왔다. 아무도 가사를 써주지 않았다. “출입국 관리하는 분으로부터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게 싫다’는 말을 들었다”라고도 했다. 이런 대중의 ‘혐오’를 그는 노래 ‘가나다라마바사’의 나레이션에 녹였다. “가수 양준일 몰라? 아으 밥맛 떨어져. 왜 이렇게 머리가 기냐. 어쭈 귀걸이까지 했어. 야 여잔지 남잔지 모르겠다.”
 
활동 기간은 2년 남짓, 사실상 ‘퇴출’이었다. 단지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되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혐오와 차별 문화’의 상징이었단 얘기다. 물론 그때 그에게 돌 던진 누구도 자신이 혐오를 일삼는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 같다. “양준일 음악이 싫었을 뿐, 그가 시대를 앞서간 게 문제, 연예인을 싫어하는 게 죄냐” 백이면 백 이랬을 거다.
 
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의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선량한 시민을 자처하는 이들이 무심코 행하는 차별과 혐오에 주목한다. 김 교수 역시 ‘결정장애’란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장애=부족함·열등함’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차별적, 혐오적인가 깨달으며 책을 썼다고 밝혔다. 장애인에게 격려차 하는 ‘희망을 가지라’는 말도, 장애인에겐 희망이 없다는 전제를 깐 차별의 언어다. ‘요즘 얼굴이 너무 타서 동남아 사람 같아’ ‘여자는 원래 수학에 약하지 않나’도 존재 자체로 상대를 깎아내리는 표현이다.
 
‘~이 싫다’는 말도 “무수한 차별은 ‘싫다’라는 감정에서 나오며, 그 감정이 누군가의 기회와 자원을 배제할 수 있는 권력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선 차별과 혐오 표현이 될 수 있다. 가령 이성애자가 ‘동성애자가 싫다’고 말하는 것과 동성애자가 ‘이성애자가 싫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싫다’고 말하는 것과 장애인이 ‘비장애인이 싫다’고 말하는 것도 다르다.
 
양준일의 뒤늦은 팬덤을 보면서 ‘노브라’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온라인 ‘조리돌림’을 당하고 끝내 세상을 등진 설리가 생각났다. 설리의 악플러는 사건 이후 방송에 나와서도 “연예인이라면 악플을 감수해야 한다”고 당당했다. 양준일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가혹해진 ‘혐오의 악플문화’다. 양준일 개인의 명예회복은 이루어졌고 일부 포털이 연예뉴스 댓글 폐지 등 악플 대책을 내놓았지만, 비극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19년 혐오와 차별의 문화는 우리 사회를 뿌리째 병들게 했다. 나는 ‘매사 정치적 올바름을 따지는 과도한 예민함이 피곤할 뿐, 차별할 생각은 없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니 ‘악독한 차별주의자’보다 낫다고 자기 위안 삼을 것인가. 김 교수는 “생애에 걸쳐 애쓰고 연마해야 할 내용은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라고 했다. 사랑과 은총이 넘치는 성탄의 아침, 가슴 깊이 새겨볼 말이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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