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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현금복지 54조원 쓰는데도 잇따르는 가족의 비극

중앙일보 2019.12.25 00:24 종합 26면 지면보기
성탄절을 앞두고 대구에서 40대 초반 부부와 중학생 아들, 초등생 딸 등 일가족 4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집 앞에는 은행과 대부업체 등이 발송한 독촉장과 세금 미납 고지서가 수북했다. 가장이 몇 년 전 개인사업을 하다 부도난 뒤 생활고에 시달렸으나 기초생활수급권자는 아니었다고 경찰이 전했다.
 

대구 일가족 4명 등 6개월간 30명 숨져
복지체계, 구멍난 정책 시급히 보완해야

최근 6개월간 일가족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된 유사 사건이 7건이나 발생해 이미 30명이 숨졌다. 지난달 인천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40대 여성 가장 등 일가족 4명이, 같은 달 서울 성북구의 다가구주택에서 네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앞서 7월에는 탈북민 한성옥·김동진 모자가 아사(餓死)한 지 두 달 만에 발견됐다.
 
이처럼 반복되는 ‘가족 비극’을 단순히 개인의 불행이나 책임으로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사회와 국가 복지 시스템에 구멍이 뻥 뚫렸다고 봐야 한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이 터진 이후 2015년부터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복지 예산을 매년 큰 폭으로 증액하는데도 비극은 오히려 더 잦아지고 있다. 실제로 보건·복지·노동 분야 내년 예산은 180조5000억원으로 전체 예산(512조원)의 36%를 차지한다. 아동수당·기초연금 및 청년 구직수당 등 현금 살포성 복지 지출은 올해 48조원에서 내년엔 54조원으로 급증한다. 심지어 대통령이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 지급 우수 세무서 24곳에 피자 400판을 돌릴 정도로 현금을 뿌리는 복지 행정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개인과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여 정부가 선심 쓰듯 복지 지출을 확대하는 판국에 개인과 가정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이유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예산 부족이 아니라 복지 전달 체계가 고장났다고 봐야 한다. 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복지 담당 공무원의 96%는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한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전국의 구도심에서 60대 이상 고령자뿐 아니라 한참 일해야 할 40·50세대의 고독사가 넘쳐난다.
 
좌파 이념에 사로잡힌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실패도 가족의 해체와 비극에 적잖은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 52시간제 도입 여파로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자영업자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있다. 이 와중에 한국 경제의 허리를 떠받치고 가족 부양의 짐이 갈수록 무거워지는 30·40세대 취업자 수는 2017년 10월 이후 24개월째 감소세다.
 
일자리가 사라지면 가난한 사람들은 더 속수무책이다. 가족 붕괴는 조만간 전체 공동체의 붕괴로도 번질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정부는 현실을 직시하고 실용주의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선심 복지보다 비극을 막는 게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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