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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보며 차 만들더라"···현대차 노사 '와이파이 싸움'

중앙일보 2019.12.24 15:40
현대차 울산1공장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코나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

현대차 울산1공장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코나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

‘와이파이가 뭐라고…’
 
현대자동차 사측과 노동조합(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사이에 ‘와이파이(Wi-Fi·무선 인터넷 근거리 통신망)’를 둘러싼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 내 와이파이 사용을 놓고 "접속을 차단하겠다"는 사측과 "노사협의회 합의 위반"이라고 맞서는 노측의 줄다리기지만, 결국 현대차그룹 노사관계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사측은 "24일 자정을 기해 와이파이 접속을 다시 제한한다"고 23일 노조에 통보했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지난 9일 생산라인 내 와이파이 접속을 처음 차단했다. 노조는 이에 반발해 특근을 거부했고, 일단 와이파이 접속을 재개한 뒤 대화에 나섰지만 이견은 좁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측이 다시 접속 제한을 통보한 것이다. 
 
발단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현대차 노조는 노사협의회에서 생산라인 내 와이파이 공유기(AP) 설치에 합의했다. 당시 무선 인터넷이 확산하던 시기인데다, 현대차가 자동화 설비를 들여오면서 범용 무선 인터넷망을 깔았고 이를 직원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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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와이파이를 이용해 휴대전화 인스턴트 메신저를 통해 사측이 공지사항을 전달하기도 했다. 노사 양측이 ‘필요에 따라’ 와이파이를 이용해 왔지만 잡음도 계속됐다. 울산 공장 견학을 하던 방문자들이 완성차 조립 도중 휴대전화를 보거나 태블릿PC로 동영상을 시청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다.
 
현대차의 조립 품질 문제 등으로 골머리를 앓던 사측으로선 품질 관리와 브랜드 이미지 훼손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성 노조의 대명사’인 노조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사측이 당장 ‘실력 행사’를 하진 못했다.
 
상황이 바뀐 건 노조의 ‘투쟁 동력’이 크게 떨어지면서다. 현대차 울산 공장의 평균 연령은 50대다. 올해 1500명, 내년 1000명이 정년퇴직한다. ‘5년 후면 노조가 붕괴한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현대차 노조는 무파업으로 임금·단체 협상을 마무리 지었고, 6년 만에 ‘온건파’ 노조 집행부가 선출됐다.  
 
해외 생산 비중이 높아진 것도 노조의 투쟁 동력을 악화시킨 요인이다. 현대차그룹의 해외 생산 비중은 지난해 기준 56%에 달하고, 올해 기아차 인도공장이 가동되면서 5년 내에 70% 선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과거에는 노조의 파업이 수출에 지장을 줬지만, 지금은 큰 타격을 줄 수 없다는 의미다. 
 
이상수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 당선자가 지난 5일 현대차 울산공장 노조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수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 당선자가 지난 5일 현대차 울산공장 노조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에 글로벌 자동차 산업 경기가 나빠지면서 현대차그룹의 핵심성과지표(KPI)가 생산 기준에서 판매 기준으로 바뀌었다. 재고 관리가 중요해지면서 많이 생산하는 것보다 많이 파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는 의미다. 생산량에 영향을 미치는 걸 협상카드로 삼아온 노조로선 카드가 또하나 준 셈이다.
 
수년째 수면 아래 있던 와이파이를 두고 노사가 힘겨루기를 하는 데엔 이런 배경이 있다. 노조는 집행부 교체 시기에 사측이 노사협의회를 통해 합의한 사안을 일방적으로 철회한 것에 감정이 상한 모습이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 역시 조합원들에게 작업 중 와이파이 사용을 자제할 것을 교육해 왔다”며 “일부 조합원의 일탈을 전체로 몰아가고, 집행부 교체 시기에 ‘노조 길들이기’를 하는 것 아닌지 의심이 간다”고 주장했다.
 
노조 집행부는 “내년 1월 일을 시작할 차기 집행부에서 대응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사실상 연말까지 별다른 대응을 하기 어렵다. ‘유튜브를 보면서 차를 조립한다’는 따가운 여론도 노조 입장에선 부담스럽다.
 
현대차 안팎에선 오랫동안 계속돼 온 현대차 노사의 대치가 사측으로 기우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는다. 이항구 한국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미 노조도 미래 차 변화에 동참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며 “감정 싸움은 내려놓고 현대차 노사 양측이 구조조정과 구조변혁을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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