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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와 같은날 시진핑 만난 文, 의전 대등했지만 실속 '완패'

중앙일보 2019.12.24 14:56
23일 하루 내내 베이징 외교가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일 정상이 중국을 찾아 중국 지도자를 만나는데 과연 중국이 누구를 더 배려할지에 관심이 모아져서였다.
 

오찬과 만찬 나눠 하고 회견 장소도 같아
의전에서는 엇비슷하다 평가 나오지만
일본은 소고기 대중 수출 허가 선물 받아
한국은 기대한 한류나 관광 제한 풀지 못해
문 대통령 발언이 중국 언론에 이용당하며
실리 챙기기에선 일본에 완패한 모양새

중국 인민일보는 24일 1면 상단에 한중 정상회담을, 하단에 중일 정상회담 소식을 게재했다. [중국 인민망 캡처]

중국 인민일보는 24일 1면 상단에 한중 정상회담을, 하단에 중일 정상회담 소식을 게재했다. [중국 인민망 캡처]

 
결론부터 말하면 ‘의전은 대등, 실리는 완패’ 정도가 아닐까 싶다. 우선 의전을 보자. 여기선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려는 중국 특유의 용의주도함이 엿보였다. 한·중과 중·일 정상회담을 전한 중국 인민일보(人民日報)의 24일 자 1면 사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민일보가 왜 중요한가. 인민일보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로, 모든 중국 언론의 보도 기준을 잡기 때문이다. 인민일보는 이날 1면 오른쪽 상단에 한·중 정상 회담, 하단엔 중·일 정상 회담을 다뤘다.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며 웃는 모습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위에 있으니 한국을 더 중시한 모양새다. 한데 신문을 가만히 보면 아래 사진을 키워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보다 더 크게 보이게 했다. 중국식 '균형 잡기'라고 할 수 있다.
 
시 주석은 또 문 대통령이나 아베 총리와의 회견 장소로 모두 인민대회당을 택했다. 얼마 전 케리 람 홍콩특구 장관을 중난하이(中南海)에서 만나 인민대회당에서 회견한 리커창(李克强) 총리 케이스와 차이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을 아예 차단한 것이다.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국 인민망 캡처]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국 인민망 캡처]

 
시 주석과 문 대통령은 오찬을, 아베 총리는 만찬을 했다. 외교 의전상 허리띠 풀고 속 깊은 말을 할 수 있는 만찬이 더 중요하긴 하지만 이는 아베 총리의 방중 일정이 2박 3일로, 1박 2일의 문 대통령보다 하루가 더 긴 점을 고려하면 굳이 따질 건 아니다.
 
문제는 실리다. 우리는 손에 잡히는 게 없다. 반면 일본은 선물을 받았다. 아베 총리 방중에 맞춰 23일 중국 언론은 중국이 18년 만에 일본산 소고기 수입금지령을 해제하기로 했다는 보도를 내놓았다.
 
중국은 2001년 일본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소고기 수입을 금지했다. 2010년엔 구제역을 이유로 일본산 우제류 제품도 수입 금지했다. 한데 이 두 가지 금지령을 아베 총리가 시 주석을 만나는 날에 맞춰 푼다고 발표했다.일본으로선 성탄 선물을 받은 셈이다.
 
반면 우리는 기대했던 관광이나 한류 부문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한류 규제령) 해제를 겨냥해 ‘문화’ 협력을 강조했지만 시 주석은 외면했다.
 
2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2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 주석은 한국과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교육, 스포츠, 미디어, 청소년, 지방” 등 다섯 가지를 열거했다. 문화도 없고 관광도 없었다. 이 틈을 노리기라도 한 듯 아베 총리는 시 주석에 “무역과 스포츠 외 관광과 문화 영역에서의 실무 협력 확대를 바란다”고 파고들었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실리를 챙기긴커녕 중국의 언론플레이에 이용당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이 “홍콩 사무든 신장 문제든 모두 중국의 내정”이라고 발언한 것으로 중국 언론은 대서특필됐다. 청와대는 “시 주석의 홍콩, 신장 언급에 대해 문 대통령이 잘 들었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지만 늦었다. 인민일보가 문 대통령 발언을 속보로 내보내고 나머지 언론은 이를 제목으로 뽑는 등 시쳇말로 중국은 장사를 크게 벌여 이미 재미를 톡톡히 봤다.
 
반면 아베 총리는 홍콩과 신장 사태에 대한 중국의 대응방안 개선을 요구하고 시 주석이 이를 반박하는 등 신경전을 펼친 것으로 일본 언론이 보도했고 이를 홍콩 명보(明報) 등이 24일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문 대통령과 비교하면서 말이다.
 
중국 인민일보는 "홍콩사무든 신장문제든 모두 중국의 내정"이라고 문재인 대통령이 발언했다며 이를 모바일 서비스에서 속보 형식으로 내보냈다. [중국 인민망 캡처]

중국 인민일보는 "홍콩사무든 신장문제든 모두 중국의 내정"이라고 문재인 대통령이 발언했다며 이를 모바일 서비스에서 속보 형식으로 내보냈다. [중국 인민망 캡처]

 
중국의 일방적 보도는 한국을 가벼이 여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스스로 치열한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과거 문 대통령 특사가 시 주석을 만날 때 대등하게 앉지 못하고 지방 성장을 만날 때와 같은 자리에 앉아 '하대 논란'이 인 적이 있었다.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방중한 이해찬 의원(왼쪽 위)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면담하고 있다. 이날 좌석 배치를 놓고 하대 논란이 일었다. [베이징공동취재단]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방중한 이해찬 의원(왼쪽 위)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면담하고 있다. 이날 좌석 배치를 놓고 하대 논란이 일었다. [베이징공동취재단]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했지만, 한국 정부는 중국에 이렇다 할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게 쌓여 오늘의 상황에 이른 게 아닐까 싶다. 자존(自尊)은 우리 스스로 세워야 한다. 중국에 듣기 좋은 말 몇 마디 한다고 해서 중국이 알아서 세워주는 게 아니지 않나.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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