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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눕자” “무릎꿇자” 한국당 비공개 의총서 나온 대응 비법

중앙일보 2019.12.24 11:05
“드러눕는 방식을 제안한다. 팔짱을 끼고 누워서 저항을 하는 거다.”  
“드러눕지 말고, 차라리 양쪽으로 도열해 무릎을 꿇자. 절박하고 처절하게”

“둘러싸고 샤우팅(shouting)도 하고 손뼉도 치고 하면서 발언자에게 힘을 실어주자”
 
저항 투쟁의 현장에서 나올법한 이 발언들은 지난 23일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오간 말들이다.
선거제 개편안 상정을 놓고 일전이 예상됐던 임시국회 본회의를 불과 한 시간 앞둔 23일 오후 6시. 전운(戰雲)이 감도는 한국당 의총장(국회 예산결산특위 회의장)에 한국당 의원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속속 들어섰다. 한국당의 비공개 의총은 전투로 치자면 ‘마지막 전략회의’였다.
 
이날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ㆍ바른미래당 당권파ㆍ정의당ㆍ민주평화당+대안신당, 이하 4+1)가 주도하는 본회의 개의가 급물살을 타자 한국당 의원들 사이에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온 힘을 다해 막아야 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 회의는 선거법 개정안 등을 놓고 파국을 거듭하는 국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당시 의총 현장과 참석 의원에 대한 취재를 종합해 이날의 상황을 재구성했다.
 
본격적인 의총은 본회의 개의 40분을 남긴 오후 6시 20분께 시작됐다. 이날 가장 먼저 언급된 대책은 ‘국회의장실에서 드러눕기’였다. 심재철 원내대표가 제일 먼저 나섰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23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의사일정 변경 동의를 통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상정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의장석 왼쪽부터 이주영 국회부의장, 문 의장,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경록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이 23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의사일정 변경 동의를 통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상정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의장석 왼쪽부터 이주영 국회부의장, 문 의장,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경록 기자



심재철 원내대표 “국회의장실 쪽에서 드러눕는 방식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팔짱을 끼고 드러누워 비폭력 저항을 하는 겁니다. 분명 상대가 팔짱을 빼려고 할 거고 이때 우리가 적극적으로 저항하며 할퀴고 하면 국회법 위반이죠. 하지만 소극적으로 저항하면 문 의장을 막을 수 있어요”
 
이어 구체적인 ‘전략’까지 제시됐다. 문 의장의 예상 길목을 여섯 군데로 나눠서 막아선다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몇몇 의원들이 이견을 제시하고 나섰다.
 
의원 A “국회의장실을 막고 있다가 다시 우르르 가서 다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하고, 이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의원 B “우리가 ‘밟고 가라’고 하는데, 정말로 밟고 지나 가버린다고 하면 모양새가 웃겨집니다. 다 같이 의장실에 앞에서 막고 해야지 여섯 군데로 나눠서 막는다면….”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제372회 국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 출석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제372회 국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 출석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이때 의원들 사이에서 역발상 제안이 나왔다. 제안자는 4선의 조경태 의원이었다. 조 의원은 ‘합법 투쟁’을 강조했다.
 
조경태 의원 “우리 스스로 국회선진화법을 지키지 않으면 지지가 돌아설 우려가 있어요. 역발상으로 통로를 막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길을 열고 양쪽으로 무릎을 꿇고 도열을 하는 겁니다. 우격다짐이 아니라 무폭력 저항으로….”
 
의원 C “길목을 막지 말고, 우리는 필리버스터에 집중합시다. 주호영 의원이 처음 필리버스터 나서면 옆에서 샤우팅도 하고, 손뼉도 치고 하면서 힘을 실어줍시다.”
 
의원 D “국회의장실에는 전부 갈 게 아니라 원내 지도부가 가서 강력항의를 해야 합니다. 대신 길을 막거나 하진 말고. 오히려 저쪽에서 우리를 뿌리치고 지나가라 하는 각오로….”
 
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와 이주영 국회부의장 등 의원들이 23일 제372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가 열리기 전 문희상 국회의장실을 찾아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와 이주영 국회부의장 등 의원들이 23일 제372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가 열리기 전 문희상 국회의장실을 찾아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오후 6시 50분, 약 30분간 이어진 회의의 결론은 결국 ‘필리버스터 전력 지원’ ‘무(無)폭력’ 대응으로 좁혀졌다. 통로에서 드러눕거나 길목을 막는 등 몸싸움은 최대한 피하고, 대신 합창 구호와 필리버스터로 밤샘 대응을 하자는 전략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심 원내대표 등 원내 지도부는 국회의장실로, 나머지 의원들은 황교안 대표가 농성을 벌이는 로텐더홀로 향했다. 실제 이날 본회의장에서 한국당 의원들은 의총 회의에서 나온 방침대로 움직였다. 
 
한 한국당 의원은 “여야 할 것 없이 민생 챙기기는 뒷전으로 증오의 싸움터가 된 국회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다른 의원은 “문 의장이 대놓고 한국당을 궁지로 몰아갔다. 최악의 선거법 개정안이나 공수처법을 막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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