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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미국에 안갔더라면 태어나지 않았을 이 교향곡

중앙일보 2019.12.24 09:00

[더,오래] 이석렬의 인생은 안단테(7) 

한국 영화 ‘암살’에서는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 2악장의 선율이 나온다. 나라가 해방되어 환호하는 장면에서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의 2악장 선율이 잔잔히 흐른다. 일본강점기에 많은 한국인이 조국과 고향을 그리워했던 마음이 이 음악으로 표현되고 있는 듯하다. 드보르자크가 남긴 아름다운 선율들은 지금도 세계인의 가슴을 울린다.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는 작곡가의 미국 체류 기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곡가가 바라본 아메리카 대륙의 역동적인 모습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함께 녹아 있는 작품이다.
 
체코의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 드보르자크가 남긴 아름다운 선율들은 지금도 세계인의 가슴을 울린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체코의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 드보르자크가 남긴 아름다운 선율들은 지금도 세계인의 가슴을 울린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체코의 작곡가 드보르자크는 대단히 성실한 인물이었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부단히 노력해 체코에서 인정받는 대표적인 작곡가가 되었다. 중년에 이르러 그의 명성은 유럽 전역으로까지 퍼졌다.
 
유럽에서 명성이 높아진 드보르자크는 어느 날 미국에서 온 중요한 편지를 받았다. 이 편지는 대도시 뉴욕에서 온 편지였고, 편지를 보낸 인물은 자넷 서버라는 뉴욕의 재력가였다. 자넷 서버 여사는 상당한 음악애호가였고 음악교육에도 높은 뜻을 가진 여성이었다. 자넷 서버 여사는 미국의 음악계를 발전시키겠다는 의도로 뉴욕에 음악원을 설립하려고 했는데, 그 음악원의 초대 원장으로 드보르자크를 초빙한 것이다.
 
이때는 프라하 음악원의 교수로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드보르자크는 미국 행을 망설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높은 연봉과 휴가 조건, 신대륙에 대한 관심 등이 드보르자크가 여사의 요청을 받아들이게 했다.
 
시골 마을에서 자란 드보르자크가 대도시 뉴욕을 향해 출발한 날짜가 1892년 9월 15일이었다. 그리고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서 뉴욕에 도착한 것이 9월 27일이었다. 이때부터 작곡가의 미국 시기가 펼쳐졌으며 1895년 4월까지 미국에 체류하게 된다.
 
드보르자크는 미국 생활 때에도 여러 걸작들을 작곡했다. 현악 사중주 F장조 ‘아메리카’와 ‘현악 오중주 Eb장조’ 등이 미국 체류 시기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실내악 걸작들이다. 그리고 작곡가의 가장 유명한 작품 ‘신세계로부터’가 미국 체류 시기에 만들어졌다. 작곡가는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를 얘기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만일 제가 미국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교향곡을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드보르자크는 3년 간의 미국 생활에서 폭넓은 관심과 성실함으로 인해 빼어난 작품들을 낳았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신세계로부터’가 미국 체류 시기에 만들어졌다. [사진 pixabay]

드보르자크는 3년 간의 미국 생활에서 폭넓은 관심과 성실함으로 인해 빼어난 작품들을 낳았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신세계로부터’가 미국 체류 시기에 만들어졌다. [사진 pixabay]

 
이 교향곡에는 미국 생활 때의 상념들이 담겨 있다. ‘신세계로부터’라는 제목도 작곡가 자신이 직접 붙인 것이다. 드보르자크는 이 교향곡에 신대륙의 드넓은 자연과 대도시의 활기를 담았으며 ‘신세계로부터’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교향곡으로 인해 자넷 서버 여사도 음악의 역사에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이 교향곡의 탄생에 대한 글에는 대부분 여사의 초대장 얘기가 함께 실린다. 뉴욕의 자넷 서버 여사가 초대 원장으로 드보르자크를 초빙한 것은 드보르자크의 국제적 명성을 높여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로 인한 예술적 유산으로 교향곡 ‘신세계로부터’가 탄생했다.
 
드보르자크는 미국에서 3년간의 체류 기간을 끝내고 다시 체코로 돌아왔다. 예술가에게 3년간의 외국 생활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일 수 있다. 그렇지만 드보르자크는 3년간의 미국 생활에서도 폭넓은 관심과 성실함으로 인해 빼어난 작품들을 낳았다. 그는 신대륙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는 외국인이기도 했지만, 신대륙의 모습을 예술로 탄생시킨 최고의 음악가이기도 했다. 드보르자크는 조국에서도 최고의 작곡가였고 신대륙에서도 최고의 작곡가였다.
 
음악평론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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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렬 이석렬 음악평론가 필진

[이석렬의 인생은 안단테] 음악은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 이제 바쁜 시절을 지나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음악을 즐기는 반퇴 세대들이 있다. 그들은 음악을 통해 문화적으로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 음악을 감상하고 공연장을 방문하고 악기를 함께 연주한다. 음악이 함께 하는 삶은 아름답고 여유롭다. 본 연재물은 음악의 즐거움을 환기하고 음악을 통해 생활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하는 것을 지향한다. 음악은 우리에게 에너지를 보충해주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한다. 이제 음악을 들으면서 여유를 갖고 삶을 더욱더 아름답게 채색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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