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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칼럼] “모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라”는 성탄의 아침

중앙일보 2019.12.24 00:33 종합 31면 지면보기
최훈 제작총괄 겸 논설주간

최훈 제작총괄 겸 논설주간

거리의 캐럴, 크리스마스 카드는 사라졌어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성탄(聖誕)의 기쁜 아침입니다. 모두들 힘든 한 해였습니다. 분열과 갈등, 팍팍해진 삶의 현장 속 마음의 행로가 그러했을 겁니다. 그러기에 올 성탄엔 따스한 위로와 축복을 더 많이 나누길 소망합니다. 그건 성탄이 모든 사람에게 주려 했던 의미를 함께 음미해 보면서 비롯될 겁니다.
 

갈등, 분열로 얼룩졌던 한 해 저물며
관용·배려·사랑의 가치 더욱 절실
새로운 눈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소중하고 따뜻이 바라볼 첫날 되길

아기 예수 탄생을 기록한 마태복음엔 흥미로운 코드 많습니다. 신학자 이장렬 목사의 풀이(『25일간의 성탄 묵상』)를 인용해 봅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해 좀 지루하다 싶은 예수의 윗 42세대 선대 족보엔 악인, 이방인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다윗왕은 충직한 장군의 아내와 불륜으로 솔로몬(훗날 성군으로 추앙받지만)을 낳습니다. 숨기기가 어렵자 그 충신을 살해합니다. 자기 며느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유다의 막장 드라마도 있습니다. 성스러운 아기의 혈통에 관한 마태의 ‘신상털기 폭로’쯤 되는지라 이해가 쉽지 않지요.
 
“그런 굴곡지고 죄 많은 인간임에도 아기 예수가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의 한복판에서 태어나 있는 그대로의 인간과 함께 부대끼며, 우리의 길이 잘 이루어지도록 함께 걸어가겠다는 약속”으로 이 목사는 설명합니다. 낯설고 무서운 신이 아니라 우리 죄를 용서해 줄 수있는 믿음직한 동반자의 탄생이란 거지요. 당시 사회는 여성은 사람 숫자에 포함시키지 않는 남성 중심이었죠. 그런데 아기 예수 족보에는 의아하게도 과부, 기생, 이민자 여성, 간음을 행한 여인 등 가장 비참한 처지의 여인들이 주로 등장합니다. 어머니 마리아를 빼곤 말입니다. 아하, 이건 좀 쉽습니다. 바로 사회의 소수자(minority)들에 대한 배려, 두 성(性)을 아우르는 ‘인간 사랑’이 그 의미일 겁니다. 다문화·이주노동자 차별, 젠더 갈등으로 얼룩졌던 한 해였습니다.
 
‘동방박사 3인이 아기 예수에게 바친 선물’. 교리 시험의 단골 메뉴입니다. 황금과 유황, 몰약이죠. 하늘로 향 피어올리는 유황은 경외심, 시신을 염할 때 쓰는 몰약은 치유에 대한 희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터라 메시아에게 바친 황금은 의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독일의 자카리스 하이에스 수사신부는 황금이란 “존재하는 것 중 가장 비싼 물질” (『별이 빛난다』)이라고 설명합니다. 가장 갖고픈 것이겠지요. 사람의 가장 본질적 갈망은 바로 ‘사랑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니 사랑이 가장 고귀한 ‘내면의 황금’이란 얘기지요. 가족·배우자·친구,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것에 드러내는 사랑이 바로 황금 선물입니다. 오늘 하루, 전화가 좀 쑥스러우면 카톡이나 문자는 어떨는지요.
 
모두가 기쁜 성탄 전후, 난감한 선과 악의 상징 두 명이 대비됩니다. 아기 예수의 아버지 요셉과 당시의 헤롯왕입니다. 약혼녀 마리아가 동거 전 덜컥 임신했다니 요셉으로선 참 당혹스럽습니다. 당시 로마법으론 ‘사형’의 죄입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아 남모르게 파혼하기로”만 합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계시를 받기 전에도 말이죠. 용기가 필요한 극도의 배려입니다. 참 그러고 보니 사람에 대한 관용이라곤 사라진 세상입니다.
 
세속의 권력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듯합니다. 동방박사, 대사제들 모두 새로운 왕이 탄생한다니 헤롯이 가만있을 순 없었겠지요. 아기 예수를 찾지 못하자 두 살 아래 베들레헴 남자 아기를 다 죽여 버리니 말이죠. 헤롯은 왕이 될 수 없던 이방인 출신입니다. 권모술수와 정략 결혼, 외교적 책략 등에 아주 능해 왕까지 올랐으나 하필 폭정의 그때 구세주가 태어난 건 권선징악의 드라마 같습니다. 두려움에 기득권 지키려는 광기와 독선. 권력자들이 오늘 성찰할 자신입니다.
 
산타와 루돌프 사슴(순록) 얘기는 늘 유쾌합니다. 뉴욕타임스의 12월 12일자 ‘루돌프’ 관련 칼럼은 ‘빨간 코’ 변종으로 따돌림받던 루돌프를 구원받아야 할 소수자들의 아이콘으로 해석합니다. 9번째 썰매 사슴에서 최선두 센터로 산타에 발탁된 ‘계층 사다리’ 스토리입니다. “누가 나쁜 아이인지 산타가 어떻게 아느냐. 개인정보 보호!” “영공·가택 무단 침입”에 “관세법·김영란법 위반 선물”까지 시대를 초월한 논란은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니 성탄의 죄인은 “산타란 없다”며 동심(童心)을 파괴·학대하는 어른들입니다.
 
“모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라”는 안셀름 그륀 신부의 말씀(『안셀름 신부의 성탄선물』)이야말로 참 공감이 갑니다. 왜 아기 예수는 곧 새해와 새벽을 맞을 엄동설한 캄캄한 밤에 태어났을까요. 메시아가 사람의 모습으로 혼돈과 고난의 세상에 온 건 아마도 모든 걸 새로이 시작하자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그대가 사는 그곳에서, 모두가 편견 없이 새로운 눈으로 그대와 사람들을 바라보길 바라는 아기 예수의 순수한 마음”처럼 말이지요. 가장 고귀한 성탄 선물은 바로 세상 어떤 가치와도 바꿀 수 없는 사람,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성탄이 ‘새롭게 시작하려는 당신의 남은 생애 중 첫 번째 날’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최훈 제작총괄 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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