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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좋은 재판’의 꿈

중앙일보 2019.12.24 00:17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승현 논설위원

김승현 논설위원

최근 이전 개원한 전주지방법원의 창문은 수직으로 뻗은 대나무 모습이다. ‘대쪽 같은’ 정의와 원칙을 의미한다. 법원 앞에 세운 두 개의 기둥은 ‘법’과 ‘국민’을 상징한다고 한다. 건축물 곳곳에 국민의 신뢰를 얻겠다는 법원의 바람이 담겼다. 담장도 없앴고, 텅 비어서 오히려 위압적이던 로비도 휴게 공간으로 꾸몄다.
 
“병원이나 호텔 로비처럼 이용자가 중심인 공간, 시민이 주인인 법원으로 거듭나길 바란다”는 게 한승 법원장의 설명이다. 악성 민원인이 로비 의자에 진을 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지만, 서울역 대합실처럼 발랄해진 로비는 그런 걱정을 잊게 할 만큼 좋은 변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16일 준공식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그는 “국민과 전북 도민이 준 선물”이라면서 “국민과 함께 하는 ‘좋은 재판’이라는 꿈을 실현하는 도약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법원장의 다짐 사흘 만에 국민 눈 앞에 펼쳐진 법정 풍경은 참담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의 재판에서 검찰은 조직적·공개적으로 판사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치색이 짙은 사건의 재판에서 벌어진 법·검 충돌은 불신 지수를 높이는 ‘나쁜 재판’이 아닐 수 없다. 법정 안 누구에게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윈스턴 처칠(1874~1965) 전 영국 총리가 한 말을 위안으로 삼아 본다. 그는 1943년 폭격으로 폐허가 된 영국 국회의사당의 재건을 약속하며 “We shape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우리가 건축을 하지만, 그 건축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라고 말했다. 지금의 건축가에게도 영감을 주는 처칠의 말대로 새 법원에 담은 꿈이 우리 사회의 가치로 부활하길 희망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를 기다리는 어른처럼 보일지라도.
 
김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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