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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신의 이코노믹스] 페이스북 ‘리브라’ 추진에 중국 ‘디지털 위안화’로 맞불

중앙일보 2019.12.24 00:09 종합 24면 지면보기

디지털로 옮겨가는 미·중 화폐전쟁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페이스북은 지난 6월 암호화폐 ‘리브라(Libra)’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시큰둥하다. 통화정책 교란과 개인정보 침해를 우려해서다. 잇따르는 페이스북 해킹 사건도 리브라 개발의 걸림돌이다. 이런 부정적 기류에도 페이스북은 규제 당국을 설득해서라도 반드시 발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민간기업 페이스북 주도
중국은 중앙은행 직접 뛰어들어
‘디지털 기축통화’ 선점 경쟁에
암호화폐 기술 경쟁까지 불붙어

이에 비해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이다.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페이스북이 리브라 개발 계획을 발표한 직후인 7월 초 ‘인민은행 디지털 화폐’(CBDC) 출시 계획을 내놓았다. 지폐가 아닌 ‘디지털 위안화’를 내놓겠다는 얘기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디지털 화폐의 기반 인프라인 블록체인 굴기에 방점을 찍어주면서 가속도가 붙고 있다.
 
개발 주체는 민간과 정부로 엇갈리지만, 미·중 양국은 결과적으로 디지털 화폐 전쟁에 나서고 있다. 페이스북은 우선 20억 회원의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사업자라서 디지털 화폐는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의 잠재력이 막강하다. 세계 총인구의 35%가 환전 없이 쓸 수 있는 디지털 화폐를 갖게 되면 그 폭발성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더구나 다른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 업체와 달리 미래 핵심기술(인공지능·빅데이터·클라우드·블록체인) 확보가 취약한 점도 페이스북이 디지털 화폐 발행을 서두르는 요인이다. 이미 구글·아마존·알리바바·텐센트 할 것 없이 인공지능·빅데이터·클라우드를 선점하기 위해 무차별 경쟁에 나서고 있다. 페이스북으로선 영향력이 엄청난 디지털 화폐 발행을 통해 최고의 블록체인 기술을 자체 또는 인수·합병(M&A)을 통해 확보하려는 목적도 깔고 있다.
 
인민은행의 디지털 화폐 발행은 페이스북 리브라 발행 계획이 크게 자극했다. 리브라는 중국을 뺀 전 세계 디지털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중국의 강력한 경쟁 상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리브라가 미 의회 등으로부터 시달리는 동안 선수를 치겠다는 의도다. 나아가 디지털 통화 발행을 선점함으로써 디지털 기축통화 논의가 본격화할 때 입지를 확보하려는 목적도 있다.
  
미 달러에 도전하는 디지털 화폐
 
이미 적지 않은 중앙은행 총재가 장기적으로 미국 달러를 디지털 화폐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국가 차원의 디지털 통화를 선제적으로 발행하면 디지털 기축통화 바스켓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또 자금세탁이나 탈세를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 인민은행 디지털 통화는 개인이 중앙은행에 계좌를 트고 중앙은행이 직접 청산하는 구조로 돼 있다.  
 
중앙은행이 거래 흐름을 다 볼 수 있고, 데이터도 한데 모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금세탁 또는 탈세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비화할 경우 거래 흐름을 투명하게 볼 수 있다면 그만큼 자본유출 위험도 줄일 수 있다.
 
향후 어떻게 될까. 계획 발표는 페이스북이 먼저 했지만, 발행은 중국 인민은행이 빠를 것으로 보인다. 중국으로선 미국의 지속적인 압박으로 중국의 무역흑자가 계속 감소할 것이라고 보면, 이런 관점에서도 블록체인과 디지털 화폐 준비는 시급한 과제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특히 전 세계 20억 고객을 가진 페이스북의 리브라가 먼저 발행되면 알리바바의 알리페이와 텐센트의 위챗페이도 타격을 받고, 중국의 디지털 화폐 국제화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은 페이스북의 리브라 발행이 미국·유럽 의회에서 난타당하고 있는 현시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할 만하다. 시장에선 이르면 내년 상반기 시범지구(선전·쑤저우)에서의 디지털 화폐 발행을 점치고 있다. 이런 논의가 진행되면서 각국 중앙은행의 디지털 화폐 발행을 자극해 디지털 기축통화 논의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디지털 화폐의 핵심 인프라인 블록체인 상황은 어떤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최근 발표한 ‘디지털 경제 2019’에 따르면, 세계 전체 블록체인 기술 특허의 75%가 미·중 두 나라에서 나오고 있다.  
 
중국은 2017년부터 블록체인 기술 육성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2018년 기준 특허출원 건수로만 보면 중국이 세계 전체의 48%로 압도적이다. 알리바바 1위, 인민은행 5위 등 상위 20개 중 15개가 중국이다. 투자도 건수는 세계 전체의 59%(266건), 금액은 46%(2조5000억원)로 각각 미국의 18%(80건), 42%(2조3000억원)를 앞지르고 있다.
  
미국, 기술 앞서지만 정부는 미온적
 
미국은 민간주도로 산업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인력·표준화에서 강하다. 실제로 세계 블록체인 프로젝트 상위 100개 중 절반 이상이 미국 기업 프로젝트다. 미국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세계 전체의 32.5%(379개), 우수 인력도 25%로 각각 19%, 3~4%인 중국보다 훨씬 높다. 또 무료로 공개되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도 중국의 약 3배인 1728개로 글로벌 표준화에 유리한 입장이다.
 
시장에선 어떻게 전망하나. 지금까진 대체로 무승부다. 그러나 앞으론 시 주석까지 나서서 진두지휘하고 있는 중국이 블록체인 기술개발을 주도하면서 미국뿐 아니라 유럽 등 세계 각국과의 진검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경우 지금까지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처리 용량과 속도의 한계를 극복해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이 전 산업으로 퍼졌던 상황이 블록체인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물론 그렇게 되면 가상화폐의 기술적 문제가 꽤 해소돼 리브라 같은 ‘실물화폐 연동형’ 암호화폐에 대해서도 체계적인 규제 틀이 마련될 수 있다.
 
최근 세계 최대 디지털 플랫폼 업체인 구글이 미국·유럽연합으로부터 데이터 독점 문제로 조사를 받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향후 디지털 가속화에 따라 데이터가 더욱 집중된다고 보면, 구글만이 정보를 독점하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인터넷 세상을 예견했던 미래학자 조지 길더(George Gilder)가 『구글의 종말』에서 정보독점 대신 정보 분산, 즉 블록체인의 세상을 말하고 있는 것도 일맥상통한다. 이같이 미·중 양국 간 경쟁이 디지털 화폐로 확산하면서 내년엔 블록체인 기술의 급진전과 함께 디지털 기축통화, 암호화폐 논의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20세기가 인터넷이라면 21세기는 블록체인
블록체인을 강력히 지지하는 의견들은 “20세기가 인터넷이라면 21세기는 블록체인이며, 블록체인은 인터넷을 뛰어넘는 혁명이 될 것”이라고 한다. 실제 구글·아마존·알리바바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회사와 여러 국가가 블록체인 생태계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블록체인에 경제와 시장 구조를 통째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핵심은 블록체인 위·변조 보안 능력이다.
 
물론 회의적 시각도 있다. 블록체인을 상용화하기 위한 기술 완성도는 10~15% 수준으로 여전히 낮다. 모든 정보를 참여자가 공유한다는 특성 때문에 중앙 집중식 전산시스템보다 거래처리 속도(TPS)나 용량 면에서 우수할 수 없다는 관점이다.
 
이런 논란에도 블록체인의 장래는 밝아 보인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가속화와 사물인터넷(IoT) 기반 거래 급증을 미래 소비 트렌드로 꼽는다. 그렇게 될수록 소비자는 비대면 거래 증가에 따른 개인 정보 유출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거래마다 다른 보안 프로그램을 쓰기엔 큰 비용이 부담이다. 결국 모든 거래에 적용할 수 있는 공통 보안 시스템을 구하게 되는데 그 해법이 블록체인이 될 수 있다. 더구나 미래는 IoT 시대를 맞아 사물 간 거래가 늘어나기 때문에 거래 비용을 축소해야 한다.  
 
현재 세계에 깔려 있는 사물 또는 기기 수는 무려 150억개에 이른다. 사람들이 스마트폰만 이용하는 지금의 생활형 인터넷(IoH, Internet of Human) 단계와는 거래 규모가 수십, 수백 배로 차원이 달라진다. 이럴 때 블록체인이 탈중앙화로 중개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만큼 블록체인 상용화 가능성도 커진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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