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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류현진 토론토행...그리고 한화와의 의리

중앙일보 2019.12.23 10:56
"일찍 가셔야 한다고요? 어디 가시는데요?"
 

토론토와 4년 8000만 달러 계약
스물여섯 때부터 한화 복귀 약속
정민철과 김태균도 과거 같은 말

지난 4일 한 시상식장에서 류현진(32)은 정민철(47) 한화 이글스 단장에게 물었다.
 
"새 야구장 투자협약식에 가야 돼. 네가 던질 야구장 말이야."
 
류현진은 "정민철 단장님과 이렇게 사진을 찍으니 한화 입단식을 하는 것 같다. 내가 한화로 돌아올 때 단장님도 꼭 계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시종 기자

류현진은 "정민철 단장님과 이렇게 사진을 찍으니 한화 입단식을 하는 것 같다. 내가 한화로 돌아올 때 단장님도 꼭 계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시종 기자

정 단장은 류현진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2025년 한화의 홈 구장이 될 '베이스볼 드림파크' 마운드에 류현진이 오르는 상상을 하며 즐거워했다. 류현진도 허허 웃었다.
 
한화 이글스에서 뛰다 2013년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한 류현진은 "한화로 꼭 돌아오겠다"는 말을 수십 차례 했다. 그는 7년 전 한화의 승인을 받고 포스팅(비공개 입찰)을 통해 LA 다저스에 입단했다. 국내로 복귀하면 보류권은 한화에 있다. 그렇다 해도 야구인생의 종착지를 미리 못 박는 일은 매우 드물다. 한화에 대한 류현진의 의리, 류현진에 대한 한화의 정성을 읽을 수 있는 장면이다.
 
정 단장과 류현진의 대화를 들으며 18년 전 겨울이 생각났다. 한화 에이스였다가 일본 요미우리에 입단했던 투수 정민철은 2001년 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유계약선수(FA)가 아니었기에 원소속팀 한화와 계약해야 했다. 그러나 연봉과 해외 재진출 조항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그의 트레이드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상황이 복잡해졌다.
 
그의 심경을 듣고 싶어서 수십 차례 전화를 걸었다. 어렵게 통화가 된 그는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대전 사람입니다. 한화와 계약하는 건 틀림없습니다"라고 말했다. 2주쯤 지나 정민철은 프로야구 최고 연봉인 4억원에 계약했다. 그는 2009년 '원클럽맨'으로 은퇴했다. 한화는 그의 등 번호(23번)를 영구결번했다. 한화 투수코치로서 류현진의 성장을 도운 정민철은 올 겨울 한화 이글스 최초로 선수 출신 단장에 올랐다.
 
8년 전 김태균(37)도 떠올랐다. 2001년부터 한화의 간판타자였던 그는 2009년 말 일본 지바 롯데로 이적했다. 2년 후 그가 돌아오자 한화 팬들이 들썩였다. 한 팬이 2011년 8월 7일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김태균 잡아주세요"라고 외쳤다. 김 회장은 "김태균 잡아올게"라고 화답했다.
 
당시 김태균은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FA 신분이어서 어느 팀과도 계약할 수 있었다. 한화 외에 3개 팀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김태균은 "팬들의 마음, 회장님 말씀을 전해 듣고 가슴이 뭉클했다. 나도 한화가 아닌 팀을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해 겨울 한화는 김태균에게 프로야구 사상 최고 연봉(15억원)을 안겼다.
 
2009년 일본 진출을 앞둔 김태균(왼쪽)과 정민철 당시 한화 코치가 인터뷰를 하는 모습. 정민철 코치는 "나중에 태균이가 꼭 한화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중앙포토]

2009년 일본 진출을 앞둔 김태균(왼쪽)과 정민철 당시 한화 코치가 인터뷰를 하는 모습. 정민철 코치는 "나중에 태균이가 꼭 한화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중앙포토]

한 팀에서 오래 뛰면 누구나 실망과 오해를 경험한다. 해외에 진출한 선수는 대부분 원 소속팀으로 돌아오지만, 속내를 보면 협상이 깨질 위기가 꽤 많았다. 한화에는 그런 진통이 거의 없었다.
 
한화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비전략적으로 협상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들은 때로 손해를 봤고, 때로 이익도 얻었다. 길게 보면 한화 구단과 선수가 모두 이기는 방법을 찾았다. 류현진이 스물여섯 살 때부터 "한화에서 은퇴하겠다"고 말하는 이유는 선배들과 구단이 오랫동안 만들어온 신뢰관계 때문이다.
 
류현진이 떠난 뒤 한화에는 트레이드와 FA 계약을 통해 여러 선수들이 드나들었다. 그 과정에서 구단 또는 감독이 베테랑 선수와 갈등하는 일이 터져나왔다. 지난해 한용덕 감독과 송광민(36)의 불화, 올해 이용규(34)의 트레이드 요청 등이 대표적이다.
 
성적이 나빠도 한화는 서로 아끼고 존중하는 전통만큼은 단단하게 지켜왔다. 그러나 한화 구단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 즉 구성원간의 신용와 의리가 깨질 위기가 있었다. 올 겨울 한화는 조금씩 재정비 되는 느낌이다. 정 단장이 선임돼 이글스의 중심을 잡고 있다. 주장 선임 방식이 감독 지명에서 선수단 투표로 바뀌어 이용규가 내년 팀 리더로 뽑혔다.
 
류현진은 지난 달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충남 서산야구장을 찾아 정 단장과 한 감독에게 인사했다. 메이저리그 FA가 된 류현진은 23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4년 8000만 달러(930억원)에 계약했다. 류현진의 빅리그 경력이 언제 끝날지 몰라도 그가 마지막으로 뛸 팀은 모두가 안다. 류현진은 한화에서 마지막 공을 던질 것이다. 정민철이 그랬고, 김태균이 그랬던 것처럼.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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