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은수의 퍼스펙티브] 문학 없으면 공감 능력 떨어져 시민 사회 위기 온다

중앙일보 2019.12.23 00:17 종합 28면 지면보기

문학 왜 읽어야 하나

서울 송파구 신천유수지 창고를 리모델링한 초대형 공공 헌책방 ‘서울책보고’에서 책을 고르는 한 시민. [뉴시스]

서울 송파구 신천유수지 창고를 리모델링한 초대형 공공 헌책방 ‘서울책보고’에서 책을 고르는 한 시민. [뉴시스]

“문학을 왜 읽어야 하나요?”
 

전문가만 있고 문학 읽는 시민 없을 때
사회는 사익 추구의 검투장으로 전락해
문학은 인간을 이타적 존재로 바꿀 수 있어
문학 없다면 시민 사회는 실패할 운명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지식과 정보를 얻으려고 책을 읽는 사람들은 문학의 ‘쓸모없음’에 경악한다. 할 일이 이토록 끝없이 쏟아지고 볼거리가 이토록 넘쳐나는 세상에서 문학을 읽어야 할 까닭을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문학의 쓸모’를 증명하려는 과학적 접근이 요즘 활발하다. 진화심리학·신경미학·행동과학 등 인간 마음에 접근하는 과학적 연구 방법이 정립되면서, ‘인간에게 은유 같은 문학적 표현이 존재하는 진화적 이유는 무엇인가’ ‘문학을 읽을 때 인간 마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문학은 정보를 어떻게 전달하는가’ 등의 질문에 대한 답들이 시도되는 중이다.
 
독일의 문예학자 카를 아이블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은유가 어떠한 역할을 수행했는지 보여 준다. 한마디로 은유란 한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꾸어 말하는 것이다. “마음이 평온하다” 대신 “마음이 호수다”라고 할 때 은유가 성립한다. 정보의 부정확한 전달은, 소통을 불편하게 하고 오해의 위험도를 높이는데, 인류는 왜 은유와 함께 공진화했을까.
 
인류는 낯선 것을 익숙한 것과 연결해 이해하려는 속성이 있다.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이 많은 불확실한 상황일수록 인간은 은유를 통해 낯선 것을 수용하려 한다. 위험한 낯선 것은 ‘사자 같다’, 달콤한 낯선 것은 ‘사탕 같다’고 함으로써, 별도 언어를 마련하는 힘든 작업을 회피하면서 신속하고 유연하게 사태에 대처하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은유의 사용은 새로운 환경에서 인류의 생존 확률을 높여준다.
  
소설 읽으면 남의 이야기 쉽게 공명
 
문학을 읽는 것은 또 인간 마음에 실제 영향을 미친다. 세계관에 변화를 가져오고,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며, 타자에 대한 감수성을 바꾼다. 인지심리학자 레이먼드 마와 키스 오틀리의 연구에 따르면 소설을 자주 읽는 사람은 남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남의 이야기에 쉽게 공명하며 남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줄 안다. 소설 읽기가 공감 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야기를 많이 읽은 아이일수록 남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등 사회성이 좋아진다. 반대로 문학이 마음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도 한다. 아동 살해 장면이 들어간 작품을 읽은 사람들은 예상보다 세상이 더 나쁘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소설을 통해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특히,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일 때 학습 효과가 더 높다. 데보라 프렌티스 등의 연구에 따르면 프린스턴대 학생들은 이야기의 무대가 프린스턴대가 아니라 예일대일 때 더 많은 것을 기억했다. 일상과 직접 연관이 없을수록 새로운 정보에 민감하다. 이야기는 사람들이 익숙지 않은 정보를 손쉽게 받아들이게 하는 통로이다. 비유와 유추의 힘까지 생각하면,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세상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쉽게 적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정 캐릭터나 비슷한 환경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반복되는 시리즈물 작품의 경우, 특정 분야의 학습에 도움이 된다. 미국 카이저재단 연구에 따르면 의학 드라마 ‘ER’를 꾸준히 시청한 사람들은 의료 정보에 대한 지식이 높아졌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어린이 책에서 같은 주인공이 여러 시공간을 옮겨 다니면서 모험을 겪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지식을 익히도록 하는 이야기 물은 정보 학습에 큰 도움이 된다. 어린이의 경우, 뇌의 인지능력이 성인보다 떨어지므로 인물·사건·배경 등의 이야기 요소를 책마다 새로 익히는 쪽보다, 인물이나 배경 중 하나만 줄여 주어도 사건에 집중하기 쉬우므로 더 많은 정보의 수용이 가능하다.
  
문학이 종교 역할 대신하기도
 
그러나 수많은 연구가 누적되는 중이지만,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실험실에서 다 찾아낼 순 없다. 문학은 무엇보다 직접적 효용이 아니라 의미를 위한 언어다. 독일의 작가 페터 비에리에 따르면 문학은 언어의 힘을 빌려 ‘우연이 지배하는 맹목적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사건들의 차원’으로 바꾼다. 한 사람의 지리멸렬한 인생을 이야기로 꿰어주고, 한 사회의 무분별한 욕망에 미학적 질서를 마련한다.
 
하루하루 닥치는 대로 살면 인생은 길을 잃는다. 재미를 좇아 모두가 멋대로 살면 사회는 붕괴한다. 인생엔 확실한 길이 없고 사회엔 정해진 모양이 없지만,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더 좋은 사회가 있다고 내기를 건 사람만이 나날의 허무와 싸울 수 있다. 나중에 환멸이 찾아올지라도 멀리 보는 새만이 아무도 닿지 못한 곳까지 날아간다. ‘위대한’ 이카루스 이야기가 남긴 것은 무모함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꿈이다. 추락하는 이카루스의 등을 딛고 인간은 또다시 날아오르기를 꿈꾼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의미를 찾는 인간의 행동을 촉진한다.
 
사회적 이유도 있다. 미국의 법학자 마사 누스바움에 따르면 자유와 정의가 조화를 이루는 사회이려면 시민 개개인이 ‘사랑의 역량’을 갖춰야 한다. 개인적 자유가 무분별한 방종으로 타락하지 않고 보편적 정의가 억압적 의무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둘을 적절히 이어주는 ‘공적 감정의 계발’이 필수다. 신이 사라져 버린 현대사회에서는 종교를 대신해 문학이 ‘시민종교’로서 그 역할을 떠맡는다.
 
플로베르의 소설 제목 ‘감정 교육’은 이런 뜻에서 의미심장하다. 철학이 외적 권위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촉발한다면, 문학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느끼면서 살아가는지를 알려준다. 같은 일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므로 문학이 감정에 관심을 기울일수록 감정들은 무한히 새롭게 발견되고 표현은 저절로 풍부해진다. 소외된 주체들은 익숙한 언어에서 자기 느낌을 전달할 언어를 찾기 어렵기에 새로운 말을 끝없이 찾아 나선다. 새로운 문학은 다수한테 익숙한 삶을 낯설게 느끼는 소수로부터 흔히 탄생한다.
  
문학이 없다면 시민도 없어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낯선 언어를 수용하고, 낯선 감정을 습득하는 일이다. 미국의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의 말처럼 문학을 읽을 때 우리는 “비자발적으로 다른 사람의 피부, 다른 사람의 목소리, 다른 사람의 영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작품을 천천히 깊게 읽으면 뇌는 현실 세계에서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 때와 동일한 영역을 활성화한다. 이 때문에 문학을 읽는 사람은 작중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들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으로 데려올 수 있다. 『다시, 책으로』에 나오는 연구다.
 
문학은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자기 소멸을 통해 소수자 언어를 수용하게 함으로써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다수의 공통 감각(common sense)을 매만진다. 문학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자기 안에 더 많은 이질성을 공존시키고, 자신을 더 많은 것에 공감하는 존재로 다듬는다. 자신의 공통 감각을 타자에 열어 둔 채 끝없이 단련하는 개인들의 집합일 때, 자유와 민주의 공동체는 공화와 공존의 공동체로 성숙할 수 있다.
 
요컨대 문학은 시민을 만든다. 정보에 능숙한 전문가만 있고 문학을 읽는 시민이 없을 때, 사회는 사익 추구의 검투장이 된다. 볼테르·디드로·루소 등은 모두 문학에 뛰어들었다.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 공동체에 반드시 우애, 즉 공적 감정이 필요함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을 읽음으로써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의 기쁨과 슬픔을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따라 시민 사회의 성패는 갈린다. 이기의 존재인 인간을 이타의 존재로 바꾸는 힘이 문학에 있다. 문학이 없다면 시민도 없다.
 
키워드
시민종교(civil religion)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정치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사랑하도록 하기 위해 사회계약을 존중하고 자연종교의 일반적 교의와 관용을 받아들이는 ‘사회성의 감정’이라고 정의했다. 미국 종교사회학자 로버트 벨라는 이 개념을 현대사회의 공공성을 지지하는 심정·습관이라고 확장했다.


책 '다시, 책으로', 매리언 울프 지음.

책 '다시, 책으로', 매리언 울프 지음.

『다시, 책으로』
읽는 뇌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 매리언 울프의 책. 이 책은 쉴 새 없이 디지털 기기에 접속하며 ‘순간 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뇌가 인류의 가장 기적적인 발명품인 읽기(독서), 그중에서도 특히 ‘깊이 읽기’ 능력을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리셋 코리아 문화분과 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