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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겹 유리천장 깬 워킹맘…“여성이 임원 된 게 뉴스 안되면 좋겠다”

중앙일보 2019.12.23 00:03 경제 3면 지면보기
이미숙 한화생명 상무

이미숙 한화생명 상무

“여성이 임원이 된 게 뉴스가 안 됐으면 좋겠네요.” 한화생명에서 입사 36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한 이미숙(55·사진) 상무의 인터뷰 첫마디다. 이 상무는 한화생명의 세 번째 여성 임원이자 첫 고졸 여성 임원이다. 고교 졸업 후 19세였던 1983년 사무직으로 입사해 12년 만에 영업관리자로 직종을 전환했다. 그동안 어려운 지점을 도맡아 이끌며 ‘구원투수’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미숙 한화생명 상무 인터뷰
사무보조 하다 영업관리로 옮겨
힘든 지점 살려내 구원투수 별명
탁월한 성과로 성·학력 편견 극복

과거 영업관리자로 직종을 바꿨던 이유에 대해 이 상무는 “누군가 아이들에게 ‘엄마는 무슨 일 하시냐’고 물어봤을 때 이왕이면 더 자랑스럽게 답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6개월은 사직서를 늘 다이어리(업무수첩)에 넣고 다녔다”며 “몸무게가 20㎏이나 빠졌지만 그래도 누구 엄마가 6개월만 하고 때려치웠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다”고 전했다.
 
‘엄마의 짐’도 있었다. 그는 “둘째 낳는 날 오전까지도 업무를 봤다”며 “90일 법정 출산휴가를 다 쓰면 소속 지점이 바뀔까 봐 회사에 ‘45일만 쉬고 출근하겠다’는 각서를 썼다”고 말했다. ‘악바리’ 근성으로 자리를 지켜낸 그는 그해에 사내 우수직원에 주는 ‘연도대상’을 놓치지 않았다. 2년 가까이 서울과 경기도 안양에 흩어진 친정과 언니 집을 오가며 아이들을 길러낸 힘겨운 시간도 있었다. 이 상무는 자녀들에게 “엄마가 일해서 얻는 부분도 있지만 잃는 부분도 있다”는 말을 계속 반복해야 했다.
 
여성과 고졸이라는 ‘유리벽’은 투명했지만 두꺼웠다. 입사는 한참 아래인데 나이는 많은 남성 직원들이 은연중에 무시하기도 했다. 그는 “고졸에 대한 편견도 확연했다.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영업을 잘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간혹 영업을 나갔다가 돌아온 여성 보험설계사의 스타킹 올이 나간 걸 발견하면 새 스타킹을 몰래 건네줬다. 실적 압박보다는 공감과 소통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섬세함을 발휘했다는 게 본인의 설명이다.
 
승부욕에선 남성 직원들보다 더 악착같았다. 그는 “어려움을 극복할 힘은 오직 영업성과였다”고 강조했다. 여성 후배들에겐 “‘여성이라서’라고 말하는 대신 증여·상속 같은 업무 관련 지식을 많이 쌓아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내 좌우명은 가화만사성(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 대신 사화만사성(회사가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이라고 전했다. 사내 우수사원 시상식에서 아홉 번이나 단상에 오른 동력이었다.
 
국내 기업에서 여성 임원은 아직도 소수다. 30대 그룹 상근임원 중 여성의 비율은 지난해 4분기 3.2%(중앙SUNDAY 분석)에 그쳤다. 지난 10월 청와대 국민청원에선 “500대 기업 등에 여성 임원 50%를 의무할당하라”는 주장이 20만 명 이상 동의를 받기도 했다.
 
한화생명도 2017년까지 여성 임원은 한 명도 없었다. 이후 3년 연속 신규 여성 임원을 배출하고 있다. 그중 경력직이 아닌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임원까지 오른 건 이 상무가 유일하다. 그는 “임원이란 이름만큼 회사에 책임을 다해 더 높은 직급까지 승진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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