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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초강경 모드'에 한국당 내 ‘자성론’…"검사동일체같다"

중앙일보 2019.12.22 16:56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열린 '공수처법 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 시민들이 참석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열린 '공수처법 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 시민들이 참석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마치 검사동일체 조직처럼 당이 굴러가고 있다. 극우화된 모습만으로 한 표라도 가지고 올 수 있단 말인가.”
 
최근 자유한국당 사무처의 팀장급 당직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당 안팎에 글이 급속도로 퍼지며 당 일각에선 “진작 나와야 했을 말이 드디어 나왔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국당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당이 공세의 칼자루를 쥔 사안은 즐비하지만, 정작 여론을 끌어오지 못하는 데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어서다. 지금도 하명수사 및 선거개입 의혹, 감찰 무마 의혹, 우리들병원 특혜대출 의혹 등 청와대가 연루된 굵직한 의혹이 줄줄이 불거지며 한국당이 손에 쥐는 ‘맹공 카드’는 날로 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래서 한국당 지지율이 올랐느냐”는 반문이 의문부호처럼 따라붙는다. 그간 한국당에서 쉬쉬하던 ‘내부 자성론’이 서서히 고개를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①강경 행보에 대한 ‘반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7일 국회 밖에서 열린 공수처법 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7일 국회 밖에서 열린 공수처법 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의원총회(오후 1시 30분)→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오후 2시)’
지난주 한국당의 주요 일정은 대부분 ‘규탄’에 초점이 맞춰 있었다. 의원총회도 다양한 의견이 기탄없이 오가기보다는 대부분 규탄의 결의를 다지는 식으로 진행됐다. 당내에선 “바람직한 제1야당의 일정으로 보이지 않는다. 민생 챙기기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투쟁의 명분과 공감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것 아니냐”(재선 의원)는 말이 나왔다.
 
한국당은 황교안 대표를 필두로 연일 초강경 모드다. 당 지도부는 규탄대회 참가자들의 선두에 섰고, 황 대표는 문희상 국회의장을 호명할 때 직함을 빼고 “문희상”으로 부르고 있다. 한국당은 ‘편파·왜곡 언론사 삼진 아웃제’를 발표했다가 ‘대(對)언론 인식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일자 3일 만인 22일 철회하기도 했다.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중인 황 대표는 보수 유튜버들에게 상주 실시간 중계를 허용하고 “입법보조원 자격을 유튜버에게 주어 국회출입 기자와 비슷한 자격을 부여하자”고 제안해 ‘보수 유튜버 챙기기가 과하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한국당 한 당직자는 “최근 국회 시위대들의 돌발 행동을 사무처에서 통제하기가 불가능했다. 당 지도부에게 직언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 무력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 중진 의원은 “연말이고 크리스마스도 다가오는데, 당에 따뜻함이 사라졌다. 보수 유튜버들을 챙길 게 아니라 삶이 어려운 서민들을 챙기는 행보를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②“연이은 기회 못 살린다”…‘위기감과 피로감’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가 열린 12일 오전 국회 로텐더홀에 전날 철야 농성을 한 한국당 의원들의 침구가 쌓여져있다. 김경록 기자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가 열린 12일 오전 국회 로텐더홀에 전날 철야 농성을 한 한국당 의원들의 침구가 쌓여져있다. 김경록 기자

강경 모드에 대한 반감 못지않게 한국당 내에 팽배한 게 위기감과 피로감이다. 국면을 바꿀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위기감을 내비치는 인사들이 부쩍 늘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퇴 직후 당 안팎에서 “한국당이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는 기대감이 흘러나오던 것과는 달라진 분위기다. “축구로 치면 하프라인에서 개인기(의혹 제기)는 잘하는 데, 골(지지율 상승)을 못 넣고 있다”(당직자)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연일 이어지는 ‘투쟁 모드’에 누적되는 피로감도 외면하기 힘든 문제다. 지역구와 국회를 수시로 오가야 하는 의원들 사이에선 “총선 전까지만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초선 의원)는 푸념도 나온다. 하지만 한국당 앞에는 당장 눈앞의 선거법ㆍ공수처법 개정 저지 외에도 여당의 ‘원포인트 본회의’ 제안에 대한 대응, 국무총리ㆍ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등 넘어야 할 게 첩첩산중이다. 한 보좌관은 “뭐니뭐니해도 결판은 총선에서 날텐데 그 전에 힘을 다 빼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했다.  
 

③‘총선 지면 끝난다’는 불안감

횡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는 모습. 김경록 기자

횡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는 모습. 김경록 기자

다양한 내부 자성론의 저변에는 ‘총선 불안감’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한 한국당 중진 의원은 “정부·여당이든 한국당이든 모두 이번 총선에서 심판대에 오르는 것”이라며 “결국 누가 심판 당하느냐의 문제인데 지금 당이 어떤 전략을 가졌는지 속시원히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했다.
 
한국당의 공천 준비가 민주당보다 ‘한발 느리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부담이다. 김용태 한국당 의원은 “수도권에선 벌써 ‘어떻게 총선을 치를 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흘러나온다. 하루 빨리 총선 체제를 갖춰야 당에 동력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교안 대표는 21일 울산 규탄대회 집회 일정을 취소했다. 중앙당 차원의 일정이 아니라는 게 표면적 이유였고, 황 대표의 체력 상태를 고려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최근 심상치 않은 당 분위기를 수습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박완수 한국당 사무총장은 “황 대표가 국회에 머물며 중심을 잡고 당을 독려하려는 의중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향후 공천 준비가 착실히 진행되고 본격적인 총선 모드에 돌입하면 당내 불만도 점차 수그러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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