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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요걸 살다 가려고···내가 아등바등했구나”

중앙일보 2019.12.22 07:00

[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27)

한해가 다 저물어가고 며칠 남지 않았다. 중앙일보 [더,오래] 필진으로 글을 쓴 지도 만 1년이 지났다. 그간 참 다사다난했던 이야기들을 거쳐왔다.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모퉁이에서 그간 올렸던 연재 글을 돌아보니 ‘희망’에 대한 글보다 ‘절망’에 대한 어둡고 슬픈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 것 같아 마음이 쓸쓸하다. 내게 분명, 희망찬 이야기도 있었을 터인데 왜 슬프거나 무거운 이야기를 많이 쓴 것일까.
 
내게 희망차고 행복 가득한 이야기들은 정말 없었던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과거의 그늘진 이야기들에 많은 부분이 머물러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다시는 행복하게 바꿔놓을 수 없는 내 아버지 불행했던 삶에 대한 연민일 것이다.
 
한 해를 보내며 그간 올렸던 연재 글을 돌아보니 ‘희망’에 대한 글보다 ‘절망’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 것 같아 마음이 쓸쓸하다. [사진 pexels]

한 해를 보내며 그간 올렸던 연재 글을 돌아보니 ‘희망’에 대한 글보다 ‘절망’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 것 같아 마음이 쓸쓸하다. [사진 pexels]

 
인터넷 검색창에 ‘안 좋은 기억이 오래가는 이유’라고 검색해 보았다. 자이가르닉 효과라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인간은 단순한 기쁨과 행복으로 완결된 일은 잠시의 희열은 크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시간이 매우 짧다고 한다. 반대로 슬픔과 안타까움 속에 머문 일들은 기억이 더 오래간다고 한다. 인간은, 완결되지 않은 지난 문제들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정신적 아픔을 겪는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내 경우도 일종의 자이가르닉 효과가 아닌가 싶다.
 
또한 이 지면을 빌려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지난날 내 아버지와 나의 불행과 애증에 대한 감정에서 벗어난 지 이미 오래되었다. 더구나 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나는 아버지에게 늘 감사와 용서에 대한 편지를 써서 주머니에 넣어드렸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내 편지를 거부하셨지만 몇 년을 계속하자 아버지는 어떤 날은 내게 ‘뭐 잊은 거 없냐?’ 하시면서 내 편지를 기다리셨다.
 
다행히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나는 아버지로 인한 내 과거의 불행들을 모두 용서했고 아프셨던 아버지를 이해했다. 아버지도 내게 그동안 고맙고 미안했다며 그것은 아버지의 본심이 아니었다고 힘겹게 고백을 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은 나아진 부녀간으로 몇 년을 더 살았다. 그러다 아버지는 저세상으로 가셨다. 나는, 아버지 생전에 내가 고백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편지로 다 말씀드렸고 표현했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내 아버지가 나를 건강하게 낳아주신 것 그 하나만으로도 감사하며 산다. 그런 세세한 고백을 편지에 담아 아버지께 여러 해를 드렸다. 그래서 막상 아버지가 하늘로 떠나시던 날, 아직 못한 말이 있어 슬프다거나 불효자로서 후회가 남았다거나 아버지가 죽도록 밉거나 하는 감정은 전혀 없었다.
 
아버지는 내게 그동안 고맙고 미안했다며 힘겹게 고백하셨다. 우리는 조금은 나아진 부녀간으로 몇 년을 더 살았고, 아버지는 저세상으로 가셨다. [사진 pexels]

아버지는 내게 그동안 고맙고 미안했다며 힘겹게 고백하셨다. 우리는 조금은 나아진 부녀간으로 몇 년을 더 살았고, 아버지는 저세상으로 가셨다. [사진 pexels]

 
다만, 아버지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 가장으로 우리와 함께 슬픔보다 좋은 추억을 더 많이 남기며 오래 사셨었더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는 아쉬움은 많이 남는다. 그러나 생로병사가 어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든가? 생로병사에 대한 우리의 선택과 개입은 늘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생이 쉽지 않은 것이리라.
 
내가 아버지와 정신적 앙금이 없음에도 아버지 이야기를 가끔 다시 꺼냈던 이유는 하나였다. 타인들에게 어떤 중요한 삶의 메시지를 주기 위한 소품으로 사용한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나를, 아버지를 미워하는 딸로 오해하는 분은 없길 진심으로 바란다.
 
오늘 나의 글은 올해 마지막 글이다. 한 해를 보내면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다시 아버지 이야기를 쓰고 있다. 내 안에 그만큼 많은 경험과 연관이 된 분이 바로 내 아버지이기 때문이리라.
 
아버지가 오랜 병고에 시달리다 돌아가시면서 하신 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중환자실에서 집으로 퇴원해서였다. 사실 퇴원해도 좋을 만큼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죽더라도 집에서 죽고 싶다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억지로 퇴원을 감행했다. 그렇게 해서 산소호흡기를 달고 집으로 오셨다.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는 집을 한바퀴 천천히 돌아보셨다. 그리고는 나지막히 말씀하셨다. "겨우 요거 살다 가려고 내가 가족들 힘들게 하고 아등바등했구나" [사진 pexels]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는 집을 한바퀴 천천히 돌아보셨다. 그리고는 나지막히 말씀하셨다. "겨우 요거 살다 가려고 내가 가족들 힘들게 하고 아등바등했구나" [사진 pexels]

 
돌아가시기 사흘 전쯤이었을 것이다. 그날 퇴원을 고집하고 집에 와 누우신 아버지는 당신이 평생 누워 살았던 그 집을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보셨다. 그러고는 혼자 독백하시듯 이런 말씀을 하셨다.
 
“겨우… 겨우…요걸 살다 가려고. 겨우, 요거 살다 가는 것을 그렇게 내가 가족들 힘들게 하고 아등바등했구나….”
 
이것이, 내가 마지막 들은 아버지 육성이었다. 우리는 너나없이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시한부 삶을 살아간다. 이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 딸아이의 핸드폰 속으로 부음 하나가 날아들었다. 딸 친구의 아버지가 간밤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고인의 나이 대략 오십 초반일 터였다. 평소 건강하셨다는데 갑작스러운 고인의 사인이 무엇인지 딸은 걱정이 많았다. 오늘 밤 동료들과 문상을 가야 한다며 ‘친구가 아직 어린데, 아빠를 잃은 아픔이 너무 크겠다며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다’ 는 말과 함께 딸은 출근했다. 검은 정장을 입고 집을 나서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나를 본다. 나 역시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그때 내가 세상에 놓고 갈 마지막 말은 어떤 것일까? 물론 지금은 나도 모른다. 다만, 오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고 사랑하고 표현하며 살다 가려고 노력할 뿐이다.
 
오래전 공포의 대상이었던 아버지를 보러 갈 때마다 차마 면전에서 고백 못 할 멋쩍은 내용을 편지로 써서 아버지 주머니에 몇 년간 넣어드렸던 그 화해와 용서의 편지처럼. 지금도 후회를 줄이는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올 한해 남은 며칠 동안 여러분 모두 용서할 분은 용서하고 가족에게 칭찬과 좋은 고백을 한가지씩 더 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고백과 표현에 인색하다. 고백과 칭찬은 돈이 들지 않는다. 미련과 후회를 줄이는 남은 한해이길 바란다. 나도 내년에는 좀 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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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김명희 시인·소설가 필진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 희망과 절망은 한 몸이고, 동전의 양면이다. 누구는 절망의 조건이 많아도 끝까지 희망을 바라보고, 누구는 희망의 조건이 많아도 절망에 빠져 세상을 산다. 그대 마음은 지금 어느 쪽을 향해 있는가? 우리는 매 순간 무의식 속에 희망과 절망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은 눈금 하나 차이지만, 뒤따라오는 삶의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희망도 습관이다. 절망을 극복하게 만드는 희망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최대 원동력이다. 그동안 길 위에서 본 무수한 절망과 희망을 들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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