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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23일)부터 북한 노동자 '외화벌이' 못 한다

중앙일보 2019.12.22 05:00
20일 오후 러시아 극동 관문 공항인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평양행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후 러시아 극동 관문 공항인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평양행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11월 말 여행 차 러시아 모스크바를 찾았던 정 모(42) 씨는 모스크바 브투코보 공항에서 100여 명의 북한 사람들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다부진 체격의 중년 남성들은 대부분 무채색 옷을 입고 있었다. 정 씨는 “짐도 한 보따리여서 비행기 짐칸이 가득 찼다”며 “해외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들이라고 그쪽 일행 중 한 명이 귀띔했다”고 전했다.

유엔제재 결의안 성과, 약 23%로 '저조'
중국 송환 규모 '깜깜이'…편법 취업 성행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2017년 12월 22일 채택한 마지막 대북제재 결의안 2397호에 따라 전 세계 각지에 파견된 북한 ‘외화벌이’ 노동자들이 북한으로 속속 돌아가고 있다. 2397호 8항은 채택일로부터 24개월 이내, 즉 2019년 12월 22일까지 유엔 193개 회원국 내 북한 노동자들의 본국 송환을 의무화했다. 북한 해외 노동자들이 벌어들이는 연간 약 5억 달러(약 5800여억 원)의 외화가 북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연구개발에 유용된다는 점에 착안한 제재였다.
 

‘외화벌이’ 북 노동자 송환 이행률 약 23%

그렇다면 2397호의 ‘데드라인’인 22일 현재 세계 각국의 북한 노동자 송환 실태는 어떨까.
 
정부 당국자는 22일 “각국이 유엔에 제출한 2397호 이행 중간보고서를 취합한 결과, 지난 16일 현재 46개국에서 2만3267명이 북한으로 돌아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2017년 말 기준 추산되는 북한 해외 노동자 10만 명을 놓고 보면 이행률이 23.2%에 불과한 것이다. 2397호 8항은 지난 3월 22일 송환 중간보고서, 내년 3월 22일 송환 최종보고서를 각각 제출하도록 했다. 석 달 뒤 최종 송환 이행 결과를 봐야 하겠지만 제재 효과가 신통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에 따르면 북한 해외 노동자 수는 2017년 말 기준 7만~10만여명으로 추산된다. 북한이 파견 인원을 공개하지 않아 각 국가가 북한에 발급한 노동허가증·취업비자 등을 토대로 한 추정치다. 통일연구원·세종연구소 등 다수의 연구기관이 북한 해외 노동자를 10만여명으로 보는데, 이들 중 80%는 중국(약 5만명)과 러시아(약 3만명)가 차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중앙포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중앙포토]

 

러시아, 의외로 제재 이행 ‘모범생’ 

송환된 2만3267명 중 1만8533명이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돌아간 노동자였다. 중국과 함께 북한의 ‘오랜 우방’임에도 유엔 제재 이행에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한 모양새다. 러시아는 결의 2397호 채택 뒤 1년 사이에 자국 북한 노동자를 3만23명에서 1만1490명으로 절반 이상 줄였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가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모두 송환되면 평양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항공편도 더 이상 운영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동남아시아 우방국도 송환 움직임이 활발하다. 캄보디아는 지난달 말 북한 식당 6곳을 일제히 폐쇄했다. 미얀마도 지난해 양곤 북한 식당을 폐쇄하면서 종업원 21명을 전원 출국시켰다. 인도네시아도 지난 4월까지 25명을 내보냈고, 베트남도 2017년 말 93명에서 지난 6월까지 51명을 보냈다. 다만 하노이 현지교민에 따르면 ‘평양관’ 등 북한 식당 2곳은 계속 영업 중이라고 한다. 라오스 내 북한 식당 5곳도 마찬가지다. 이 밖에 카타르(2471명), 쿠웨이트(904명), 아랍에미리트(823명) 등 걸프 지역 미국 동맹국들의 송환 실적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유럽에선 폴란드가 414명을 송환한 것을 제외하고 스웨덴 8명, 스위스 3명에 그쳤다. 특히 독일은 유엔 제출 중간보고서에서 “자국 내 862명의 북한 사람들이 체류하고 있다”면서도 “유학이나 국제회의 참석, 인도주의 목적이 대부분으로 노동자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는 2397호의 예외규정을 근거로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국적자라 하더라도 국제난민법과 인권법 등에 따라 송환 대상인지 결정한다’는 규정이다. 정은숙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송환 중간보고서를 제출한 국가들은 이미 50% 이상을 송환했음을 강조했다”며 “다만 유럽 다수 국가는 인권, 인도주의 문제로 고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 해외 노동자 송환 시한을 하루 앞둔 21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 북한 노동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짐보따리를 가득 든채 귀국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해외 노동자 송환 시한을 하루 앞둔 21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 북한 노동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짐보따리를 가득 든채 귀국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이 결의 '2397호' 성패 좌우할 듯 

가장 많은 약 5만명의 북한 노동자가 체류하고 있는 중국은 비공개 조건으로 중간보고서를 제출해 현재 송환 현황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정 수석연구위원은 “이달 초부터 북경·상해·선양·단둥 등을 중심으로 북한 노동자 인력 브로커가 성업 중”이라며 “안보리 제재로 노동비자는 불허됐지만, 친인척 방문, 여행, 연수 등 다른 비자를 받아 입국과 철수를 반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도 “전방위 제재에도 북한 경제가 나름 견조한 것은 중국이 밀무역 등을 눈감아 주고 있기 때문”이라며 “북한 노동자 제재도 중국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엔?안보리?대북제재결의안?2397호 8항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유엔?안보리?대북제재결의안?2397호 8항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외화벌이’ 노동자 제재 왜 나왔나  

유엔 안보리는 북한이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한 이래로 추가 핵실험, 미사일 발사 때마다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해 왔다. 특히 2016년 이후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 개발에 몰두하며 제재 영역이 전례없이 확대됐다.
 
2017년 9월 6차 핵실험에 이어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을 발사하자 제재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유엔 안보리는 그해 8월, 9월, 12월 연속 채택한 결의안을 통해 외화벌이 노동자까지 제재하고 나섰다. ‘북한 해외 노동자 총인원을 현 숫자에서 동결’(결의안 2371호)→‘북한 노동자 노동허가증 갱신 및 신규 허가 금지’(결의안 2375호)→‘북한 노동자와 이들을 감시하는 북한당국 안전관리원 2019년 12월 22일까지 모두 본국 송환’(결의안 2397호) 등으로 강도가 점점 세졌다.
  
지난 5일(현지시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크릴로바 거리에 있는 '금강산' 식당의 한 종업원이 안보리 제재에 따른 식당 폐쇄 가능성을 묻자 웃기만 할 뿐 답변을 회피했다. 사진은 정상 영업중인 금강산 식당 전경 모습. [연합뉴스]

지난 5일(현지시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크릴로바 거리에 있는 '금강산' 식당의 한 종업원이 안보리 제재에 따른 식당 폐쇄 가능성을 묻자 웃기만 할 뿐 답변을 회피했다. 사진은 정상 영업중인 금강산 식당 전경 모습. [연합뉴스]

 

해외서 북한 사람 아예 못 보나…결의안 허점은  

2397호 결의안이 북한 해외 노동자 본국 송환을 의무화한 만큼 해외에 나간 모든 북한 사람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당국 지침에 따라 자금을 들고나와 단독투자 방식으로 돈을 버는 사업자는 본국 송환 의무가 없다”고 말했다. 예컨대 북한 식당을 계속 운영할 순 있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송환돼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중국, 러시아 등에서 북한 식당이 변함없이 운영될 가능성도 작지 않다. 한 외교 소식통은 “2397호 8항이 규정한 북한 노동자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며 “미국은 북한 노동자를 광범위하게 보지만, 중국·러시아는 단기 비자를 받은 북한 노동자는 (제재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종업원으로 고용할 수 있다고 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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