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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장관 지명에 미국 농장도 사들여...식량 확보에 '오일머니' 쏟아붇는 중동

중앙일보 2019.12.22 05:00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시알 식품 비즈니스 전시장 내부 풍경. 아부다비를 포함한 아랍에미리트는 최근 식량 스타트업을 유치하는 등 식량안보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아부다비=강기헌 기자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시알 식품 비즈니스 전시장 내부 풍경. 아부다비를 포함한 아랍에미리트는 최근 식량 스타트업을 유치하는 등 식량안보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아부다비=강기헌 기자

검은색 청소 로봇은 사람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모래 먼지를 삼켰다. 토브(중동 전통 복장)를 입은 관람객의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들어왔다. 
 
지난 10일(현지시각) 들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 국립 전시회장 풍경이다. QR코드가 찍힌 출입증을 받아 시알(SIAL) 식품 비즈니스 전시회에 입장했다. 성경에 등장하는 중동 대표 특산물 대추야자가 부스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메인 전시장은 대추야자를 비롯한 지역 특산품이 차지했지만 관람객의 이목을 끌었던 건 스마트팜 등을 전시한 공간이었다. 현지에서 만난 한 교민은 “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소위 돈 있는 중동 국가를 중심으로 미국과 러시아 등에서 농지나 농업 관련 기업을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사정에 밝은 이 교민은 UAE 국영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에미리트 에어라인과 미국 스타트업 크랍 원이 스마트팜 조성 계약을 맺고 있다. [사진 에미리트 에어라인]

에미리트 에어라인과 미국 스타트업 크랍 원이 스마트팜 조성 계약을 맺고 있다. [사진 에미리트 에어라인]

식량 안보는 최근 중동 지역 국가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풍족한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아프리카를 비롯한 해외 농지를 사들이거나 스마트팜 회사에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중에서도 식량 안보에 가장 적극적인 건 UAE다. 7개 토후국이 연합해 만든 UAE는 2017년 식량안보부를 신설했다. 
 
식량안보부 장관으로는 여성인 마리암 알-무하리를 지명했다. 남성 중심 문화가 강한 중동 국가에서 정부를 대표하는 행정 기관장에 여성을 임명한 건 매우 이례적이란 평가가 현지에서 나온다. 황준혁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두바이무역관 과장은 “그만큼 식량안보에 대한 중앙 정부의 관심이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사막 위에 세워진 UAE는 작물 재배에 적합하지 않다. 두바이 도심에서 차로 10분만 달려도 모래지대가 펼쳐진다. 강우량 통계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다. UAE의 혹서기는 최고기온이 48℃까지 치솟는다. 평균 기온은 35℃에 달한다. 노지 재배가 사실상 불가능한 기후다. 연평균 강수량도 42㎜에 불과하다. (※한국의 연평균 강수량은 1234㎜다.) 이런 이유로 식량 대부분은 유럽·터키·러시아에서 수입한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는 식량 안보에 속도를 내는 동력이 되고 있다. 지난 5월 돌출한 미국과 이란의 핵 합의 무산이 대표적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한 관람객은 “최근 곡식을 저장하는 대규모 저장 시설을 각국 정부가 나서 짓고 있다”며 “미국과 유럽이 언제 식량을 끊을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스마트팜 스타트업 크랍 원의 수직 농장. [사진 크랍 원]

미국 스마트팜 스타트업 크랍 원의 수직 농장. [사진 크랍 원]

 
풍족한 오일머니로 스마트팜에 투자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UAE 최대 항공사 에미리트 에어라인은 지난해 7월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 농업 스타트업 크랍 원(Crop One)과 4000만 달러(약 465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에미리트 에어라인은 알-막툼 국제공항 인근에 1만2000㎡ 규모의 스마트팜을 조성할 예정이다. 스마트팜으로선 세계 최대 규모다. 스마트팜에선 매일 채소 2.7t을 생산할 수 있는데 에미리트 에어라인은 이를 기내식으로 공급할 예정이다. 2017년 UAE 국부펀드는 미국 팜테크 스타트업 인디고 애그리컬처에 2억 달러(약 2300억원)를 투자했다.
 
 아랍에미리트 식량안보부 마리암 알-무하리 장관.

아랍에미리트 식량안보부 마리암 알-무하리 장관.

UAE는 식량안보 전략을 세워 시행하고 있다. 핵심은 2051년까지 세계식량안보지수를 1위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식량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만,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한 식량 수입 다변화를 통해 지난해 식량안보지수 31위(전체 113개국)를 기록했다. 
 
이를 위해 식량 분야 외국인 투자를 확 풀었다.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막툼 두바이 총리는 지난 7월 주재한 각료회의에서 외국인 지분 보유를 최대 49%로 제한하던 122개 산업 분야에 대해 외국인 100% 지분 보유를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농업도 규제 철폐 분야에 포함됐다. 스마트팜과 수직 농장 등을 앞세워 한국을 비롯한 세계 스타트업에 농업 문호도 열어뒀다.
 
아부다비=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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