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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잠수함도 좋지만, 4만원짜리 전투복부터 개선해야

중앙선데이 2019.12.21 00:21 666호 10면 지면보기

[배명복의 사람속으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경기고에 육사 37기.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하는 대표적 ‘미국통’ 장군. 예비역 육군 중장인 전인범(61) 전 특수전 사령관은 2017년 2월,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세간에 이름이 알려졌다. 특전사 사병 출신 대선후보가 특전사령관 출신 장성을 영입했다는 말이 나왔다.  
 

군 장비 부실
미군 15만원 전투복은 불에 안 타
경차 말고 쏘나타 수준 돼야 정예화

훈련도 부족
사고 나면 지휘관들 줄줄이 해임
위험한 훈련 안 해 전투력 못 길러

한국 핵무장
NPT 탈퇴하면 경제에 큰 영향
미국의 확장 억제력 활용이 최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 중책을 맡아 군 개혁을 주도할 거라는 얘기도 돌았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는 문 후보의 안보자문위원 타이틀을 내려놓고 캠프를 떠났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발언과 부인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초급장교 시절 합참의장 전속부관으로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이기백 전 국방장관이 타계한 지난 16일,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에서 그를 만났다.
 
전인범 전 특수전 사령관은 "우리 군인들의 전투 피복과 장비가 경차 수준"이라며 "최소한 쏘나타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전인범 전 특수전 사령관은 "우리 군인들의 전투 피복과 장비가 경차 수준"이라며 "최소한 쏘나타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국방·안보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잘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저와 많은 사람이 기대했던 수준에는 못 미친다고 생각해요. 특히 한·미 군사관계에서 불필요한 갈등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해요. 이러다 큰일 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시려고 저러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한·미 불필요한 갈등 생겨 안타까워
 
진짜로 기대가 컸습니까.
“캠프에 참여하기 전 둘이서 열댓 번 정도 만났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를 직설적으로 다 했는데도 다 받아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분이라면 무슨 얘기든 할 수 있겠구나 싶어 기대를 많이 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소통이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으니 제가 판단을 잘못한 건지 모르겠네요.”
 
대통령만의 책임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랫사람들도 소신껏 할 말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긴 하지만, 소통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윗사람의 문제이지 아랫사람 문제라고 보지 않아요. 윗사람이 먼저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한·미 동맹 위기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한·미 간에는 늘 마찰이 있었어요. 보수 정부 때도 마찰이 있었지만, 진보 정부에서는 작은 마찰도 더 크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진지하게 토의를 해서 진작 해결했어야 하는 문제들을 계속 미룬 탓도 있다고 봐요. 전시작전권 전환 같은 것이 좋은 예입니다. 미국과 사이가 안 좋으면 우리가 더 큰 손해를 봅니다. 미국 사람들을 잘 다뤄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설득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좀 부족한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북·미 비핵화 협상이 결국 실패로 끝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쉽지 않을 거란 건 처음부터 예상했기 때문에 놀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내년에는 분위기가 별로 안 좋을 것 같아요. 과연 미국이 어떤 식으로 나올까가 문제인데, 2년 전처럼 ‘화염과 분노’ 국면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 같습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보는 거죠.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해온 것을 보면, 군사적 옵션을 쉽게 선택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북한이 하와이나 괌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미국을 직접 겨냥하지 않는 한 선제타격이나 코피작전같이 군사적으로 대응하진 않을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예상하는 대로 인공위성 발사로 포장해 장거리로켓을 쏘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에 나서더라도 미국은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제재 강화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 10명 중 7명이 핵무장에 유혹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저도 평생 군 생활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북한이 핵무기 100개를 갖고 있으면 우리는 200개를 갖는 것이 가장 확실한 억지력이라는 생각을 심정적으로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역시 현재로써 최상의 방책은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해서 미국의 확장 억제력을 제공받는 것입니다.”
 
방탄복·방탄헬멧·소총 등 33종의 워리어플랫폼 전투 피복과 장비를 갖춘 장병. [연합뉴스]

방탄복·방탄헬멧·소총 등 33종의 워리어플랫폼 전투 피복과 장비를 갖춘 장병. [연합뉴스]

확장 억제력을 100% 신뢰할 수 없으니 문제 아닙니까.
“신뢰가 깨진다면 우리도 어떻게든 핵을 개발해야겠죠. 그 경우 우리 경제가 완전히 파탄 날 수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설마 그럴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갑자기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면 대학교 연구실이나 병원부터 원전까지 우리 일상생활과 경제 활동이 전부 영향을 받게 됩니다.”
 
북한이 핵을 가져도 우리는 가져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까.
“예컨대 부부싸움을 하는데 부인이 집 절반에 불을 질렀다 칩시다. 그럼 나도 나머지 절반에 불을 질러야 할까요.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거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건 정말 깊이 고민하고, 장시간 토론할 문제입니다. 저도 대령이나 준장 때는 북한이 핵무기를 쏘면 우리도 똑같이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릅니다. 평양 주민 250만 명을 상대로 핵무기를 쓸 게 아니라 김정은을 포함해 북한 지도부만 족집게처럼 타격할 수 있는 재래식 정밀폭탄을 쓰는 게 낫다고 봅니다.”
 
그런 무기가 있나요.
“있어요. 한·미 연합군은 그런 정밀타격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전술핵 재배치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공유는 대안이 될 수 없을까요.
“나토식 핵공유는 핵폭탄을 투하할 때 유럽의 나토 회원국 항공기를 쓴다뿐이지 사용할지 안 할지는 미국이 결정합니다. 미국이 핵폭탄에 코드를 입력하지 않으면 그냥 쇳덩어리나 똑같아요. 핵공유는 유사시 유럽국들이 핵무기를 가진 미국에 조종사와 항공기를 빌려준다는 정도의 의미입니다. 전술핵 재배치도 그래요. 미국의 전략폭격기가 6시간이면 괌에서 날아올 수 있는데 굳이 한반도에 전술핵을 갖다 놔서 표적이 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래도 안심은 되지 않을까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예를 들어 원주에 B61 핵폭탄을 가져다 놨다 칩시다. 그러면 원주에 사는 주민들부터 불안해서 못 삽니다. 가져다 놓는 순간 여기는 때려도 좋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인 거죠.”
  
트럼프, 군사적 옵션 선택 안 할 것
 
한국군과 미군을 비교할 때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십니까.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 중 하나가 우리는 제대로 훈련을 하기가 힘들다는 점입니다. 미국 경우에는 훈련 중 사고가 났다고 지휘관들을 줄줄이 보직 해임하고 그러지 않아요. 그러나 우리는 달라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지휘관들이 위험한 훈련은 안 하려고 해요. 진짜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위험한 훈련을 많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징병제이기 때문에 부모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 않나요.
“부사관급 이상 직업군인이 대부분인 특전사 같은 데서도 안전 위주의 훈련을 하고 있어요. 평소에는 문제가 없지만, 전시에는 문제가 됩니다. 훈련 부족이 전작권 전환과 맞물리면서 미군 없이 우리끼리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겁니다.”
 
군 장비개선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전사령관을 하면서 우리 군인들의 장비가 부실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우리나라 장군들은 국방정책, 안보전략 얘기는 많이 하지만, 장비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어요. 우리 군인들에게 외제 차는 못 사줘도 최소한 쏘나타 정도는 사 주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지금 우리 군인들이 쓰는 장비는 경차 수준입니다. 죽는 날까지 장비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주시죠.
“우리 병사들은 4만원짜리 전투복을 입어요. 불이 붙으면 타고, 녹아내립니다. 녹은 것을 떼어내면 살갗도 같이 떨어집니다. 미군이 입는 15만원짜리 전투복은 잘 안 탑니다. 요새 미군은 총에 맞아도 잘 죽지 않습니다. 성능 좋은 방탄복과 방탄헬멧 덕분이기도 하지만, 응급처치 키트가 좋기 때문입니다. 대략 10만원쯤 합니다. 총력전의 전 단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특전사, 수색·특공부대, 해병대 등 특수·지상 작전 투입 병사들에 대해서만큼은 최고의 화기와 장구, 통신 장비를 갖춰줘야 합니다. 그래야 정예화가 가능합니다.”
 
결국 돈 문제 아닌가요.
“우리가 국방비로 연간 50조원을 씁니다. 거액을 들여 핵 추진 잠수함 만드는 것도 좋지만 불타는 전투복 문제부터 해결하고 하자는 겁니다.”
 
뉴욕서 초등학교 다녀 원어민 수준 영어 구사
1958년 서울 출생. 외교관인 모친을 따라 뉴욕에서 초등학교 과정 4년 반을 보냄. 무시험 1회로 경기고 진학. 55대 1의 경쟁을 뚫고 77년 육사 입교. 입학 성적은 368명 중 367등. 영어는 만점. 박정희 전 대통령 아들인 박지만 EG 회장, 박찬주 전 제2 작전사령관(대장), 신원식 전 합참 차장(중장),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중장) 등이 동기. 2004년 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 선거지원과장. 2007년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건 당시 카불 군사협조단장으로 급파돼 43일 만에 인질 21명 구출. 합참 전략기획 차장, 합참 전작권 전환 추진단장, 27사단장, 한·미 연합사 작전참모차장, 유엔사 군사정전위 수석대표 겸 한·미 연합사 부참모장을 역임하고, 2013년 특전사령관 취임. 2016년 전역.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bae.myungb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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