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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노·사 책임감 갖고 기업의 미래 협의…그게 발렌베리 방식”

중앙일보 2019.12.20 05:00 경제 4면 지면보기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이 1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동현 기자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이 1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동현 기자

“장기적 안목(long term perspective)을 갖고 투자하는 게 우리의 미션(임무)입니다. 가문 경영이 좋은지, 전문경영인 체제가 좋은 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스웨덴 최대 기업가 가문 발렌베리가(家)의 5대 후계자인 마르쿠스 발렌베리(63)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 회장은 ‘어떤 지배구조가 더 바람직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수익을 연구·개발(R&D)에 재투자하며, 사회에 환원하는 게 우리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최대기업 발렌베리 회장
오너 가문이 재단 통해 경영 참여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하는게 초점
“이재용 부회장과는 오랜 친구”

 
발렌베리 회장은 사촌인 야콥 발렌베리(63) 인베스터AB 회장과 함께 발렌베리 가문을 이끄는 리더다.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와 함께 경제사절단 자격으로 한국을 찾은 그를 19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존재하지만 드러내지 않는’ 발렌베리 가문의 경영방식은 기업 지배구조의 롤 모델로 여겨진다.
 
하하. 우린 북쪽 끝에 있는 작은 나라일 뿐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우리의 경영모델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투자하는 것, 그리고 재단을 통해 기업 경영에 참여하고 산업 생태계(eco system)를 만드는 것이다. 또 사회에 환원해 교육 등에 투자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다. 정부와 팀(team)의 일원으로 협력한다. 지주회사는 각 회사의 이사회와 우리의 가치를 공유하며 협력한다.
 
가문경영의 원칙이 있다면.  
 
발렌베리 가문은 재단과 지주회사인 인베스터AB 이사회를 통해 경영에 참여하지만 다른 이사회 멤버와 같은 권한을 갖는다. 세대를 거치면서도 변하지 않는 건 수익의 80%는 R&D에 투자하고 장기적으로 기업의 가치를 올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은 중앙일보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장기적 안목을 갖고 투자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게 발렌베리 가문의 미션(임무)"이라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은 중앙일보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장기적 안목을 갖고 투자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게 발렌베리 가문의 미션(임무)"이라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스웨덴 기업을 방문했을 때 노조가 이사회에 참여해 함께 경영책임을 지고, 사측과 협력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오랜 신뢰관계가 기반이다. 노조 가입률이 높지만 사회민주당 정부와 협력하고 급진적(radical) 노선을 취하진 않는다. 노사 관계에 정부는 개입하지 않고, 노사는 무엇이 기업의 미래에 최선인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경영진은 가능한 많은 정보를 노조에 제공하고, 노조는 이사회를 통해 경영에 참여하며, 사용자와 노동자는 열린 소통을 해 오고 있다.
 
1938년 사회적 대타협인 ‘살트셰바덴 협약’은 아직도 의미가 있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협약이 아직도 작동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일종의 ‘신사 협정’으로 우리 사고방식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양쪽 다 전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번 방문에서 어떤 성과가 있었나.
 
5G(세대) 이동통신, 스마트시티, 스마트 팩토리, 미래 금융 등 한국과 스웨덴은 비슷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 지속가능성이라는 과제도 해결해야 한다. 한국과 스웨덴은 많은 분야에서 서로 협력하고 공동의 이해를 관철할 수 있다. 다양한 가능성을 봤고 한국 카운터 파트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1938년 12월 20일 스웨덴 스톡홀름 동쪽의 휴양지 살트셰바덴에서 어거스트 린드베리 스웨덴 전국생산직노조(LO) 위원장과 지그프리트 에드스트룀 사용자대표(SAF)측 대표가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1938년 12월 20일 스웨덴 스톡홀름 동쪽의 휴양지 살트셰바덴에서 어거스트 린드베리 스웨덴 전국생산직노조(LO) 위원장과 지그프리트 에드스트룀 사용자대표(SAF)측 대표가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구체적으로 어떤 협력이 가능한가.  
 
뱅커(은행가) 입장에서 24시간 주7일 가동되는 모바일 뱅킹의 요구가 많은데 5G 이동통신은 많은 가능성을 열어준다. 차량 공유나 항공분야, 생명과학 등 수많은 영역에서 한국과 스웨덴은 상호보완적인 부분이 있다. 우리 회사는 아니지만 이번 비즈니스 서밋에서 현대자동차가 스웨덴 스타트업인 ‘임팩트 코팅’과 양해각서(MOU)를 맺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눴나.(두 사람은 18일 회동했다)  
 
우리는 오랜 친구다. 이번에는 짧게 만나 개인적인 대화밖에 나누지 못했다. 비즈니스 관련 대화는 하지 않았다.
 
발렌베리 회장과 이 부회장은 15년 넘게 친분을 유지해 온 사이다. 삼성그룹은 2003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발렌베리 가문의 지배구조와 사회공헌 활동을 연구하기도 했다. 발렌베리식 지배구조를 바로 도입할 순 없어도 삼성이 가고자 하는 지향점을 엿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사회에선 대기업에 대해 부정적·긍정적 평가가 엇갈린다.
 
한국 기업의 발전 속도는 놀랍다. 한국 기업이 만들어낸 수많은 산업 플랫폼과 상품에 대해 한국 국민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한국에서의 기업 경영에 대한 인식이나 배경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지만 무엇이 최선인지를 서로 논의하고 신뢰 관계를 쌓아나가면 기업을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다고 생각한다.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은 중앙일보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가문경영과 전문경영인 중에 어느 걳이 옳은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우리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동현 기자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은 중앙일보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가문경영과 전문경영인 중에 어느 걳이 옳은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우리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동현 기자

 
유럽식 가문경영과 영·미식의 전문경영인 제도 가운데 어떤 것이 바람직할까.
 
공공의 이익을 위한 장기적인 판단과 고객을 중심에 놓는 것이 우리의 접근 방법이고 좋은 결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많은 지배구조 모델이 있을 수 있고 우리도 받아들일 수 있다. 명백하게 어떤 시스템이 더 낫다고 말하진 않겠다.
 
장기적 투자에 초점을 맞추면 빠른 경영 판단에 방해가 되진 않나. 
 
장기적으로 투자한다는 게 느리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산업은 끊임없이 바뀌어야 하고, 어떤 산업은 그렇지 않다. 어떤 결정이 미래에 가장 바람직한지를 판단하는 게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다.
 
이동현·박성우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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