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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구에 휘발유 넣는 순간···'적외선 캠'에 담긴 충격 모습

중앙일보 2019.12.20 01:00 종합 14면 지면보기
인천시 서구의 한 주유소에서 한국환경공단 직원들이 유증기 회수 설비를 검사하고 있다. [사진 왕준열]

인천시 서구의 한 주유소에서 한국환경공단 직원들이 유증기 회수 설비를 검사하고 있다. [사진 왕준열]

4일 인천시 서구의 한 주유소. 기름을 넣는 차들 사이로 헬멧을 쓴 한국환경공단 직원이 주유 노즐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차 대신 휴대용 연료탱크에 휘발유를 넣기 시작했다.
 

[미세랩] 주유소 유증기 얼마나 위험할까
암 유발하는 유해가스 800배 치솟아

“휘발유를 주유할 때 유증기가 얼마나 대기 중으로 새어 나오는지를 측정하는 거예요. 주유소에 설치된 유증기 회수설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죠.”

 
검사를 진행하던 오대식 한국환경공단 대기정책지원부 대리가 주유구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유증기 회수설비는 주유 중에 발생하는 유증기를 회수하는 설비를 말한다. 주유 노즐을 보니 경유와 달리 휘발유는 노즐 주변을 고무 커버가 감싸고 있었다.
 
한국환경공단 직원(왼쪽)이 유증기 회수 설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왕준열]

한국환경공단 직원(왼쪽)이 유증기 회수 설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왕준열]

오 대리는 “경유와 달리 휘발유는 휘발성이 강해 주유 중에 나오는 유증기를 진공펌프로 빨아들여 연료탱크로 다시 보낸다”고 설명했다.
 
이 주유소는 지난 5월 수천만 원을 들여 휘발유 주유기에 유증기 회수설비를 설치했다. 주유소 직원 김 모 씨는 “요즘에는 유증기 회수설비가 없으면 손님들이 기름 냄새가 심하게 난다며 민원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증기 회수설비를 끄고 휘발유를 넣었더니 매캐한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유증기는 기름방울이 안개 형태로 공기 중에 분포된 걸 말한다. 유증기 속에는 인체에 해로운 벤젠 등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포함돼 있다. 벤젠은 암을 일으키는 1급 발암물질로 규정돼 있다. 유증기가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이유다.
 

주유시 나오는 유증기 측정해보니 

유증기 회수 설비 가동 유무에 따라 발생되는 유증기 속 VOCs의 양을 측정했더니 800배가량 차이가 났다. [사진 왕준열]

유증기 회수 설비 가동 유무에 따라 발생되는 유증기 속 VOCs의 양을 측정했더니 800배가량 차이가 났다. [사진 왕준열]

그렇다면 실제 휘발유를 넣을 때 유증기는 얼마나 발생할까. 중앙일보 먼지알지팀은 주유할 때 발생하는 유증기 속 VOCs의 양을 측정했다.

 
유증기 회수 설비를 끈 상태로 주유구에서 50㎝ 정도 떨어진 곳에 측정기를 대고 휘발유를 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름 냄새와 함께 0ppm이었던 VOCs 수치가 급격히 상승했다. 1분도 안 돼 측정기 수치는 최고 2만7979ppm을 찍었다.
 
같은 주유기로 유증기 회수 설비를 작동하고 다시 측정해보니 VOCs 수치는 최고 35ppm으로 뚝 떨어졌다. 유증기 회수 설비 여부에 따라 VOCs 발생량에도 800배가량 차이가 났다.
  

건강 위협하고 오존·미세먼지 만들어  

유증기 회수 설비를 켰을 때(왼쪽)와 달리 유증기 회수 설비를 끄자 유증기가 연기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다. [사진 왕준열]

유증기 회수 설비를 켰을 때(왼쪽)와 달리 유증기 회수 설비를 끄자 유증기가 연기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다. [사진 왕준열]

유증기를 감지할 수 있는 적외선 카메라로 주유 과정을 촬영했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연기가 주유구 틈새를 통해 공기 중으로 뿜어져 나왔다. 유증기 회수 설비를 켰을 때와 비교해보니 둘 간의 차이가 더 명확하게 드러났다.   
  
송지현 세종대학교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자동차 탱크 안에는 평소 2~3만ppm 수준의 VOCs를 포함한 유증기가 차 있는데, 휘발유를 넣으면 탱크 안에 있던 유증기가 밖으로 빠져나오게 된다”며 “이런 유증기는 악취를 유발할 뿐 아니라 건강에 유해한 독성물질을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위험한 건 종일 기름을 넣는 주유원들이다. 주유소에서 배출되는 벤젠을 지속해서 흡입하는 주유원들은 일반인보다 암 발생과 유전자 변형 가능성이 두 배 이상 높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다. 
 
최근에는 셀프 주유소들이 늘어나면서 운전자들도 유증기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유증기는 도시 대기오염을 유발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주유소가 주로 인구 밀집도가 높은 도심권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유증기에 포함된 VOCs는 오존을 만드는 주요 물질이다. 또, 2차 미세먼지 생성을 유발하기도 한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전체 VOCs 배출량 85만 1593t(톤) 중에서 주유소에서 배출되는 양은 3만 2956t으로 3.9%를 차지한다.  
 
이에 정부는 주유소를 생활 주변 오염원으로 보고 대규모 도시를 중심으로 유증기 회수설비 설치를 의무화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서울 등 수도권과, 부산·대구·광양만 권역의 3229개 주유소에 회수설비를 설치했다. 환경공단은 이를 통해 VOCs를 줄이고, 휘발유를 재활용하는 등 연간 115억 원의 경제적 이익을 거둔 것으로 추산했다.
 

유증기 회수설비 주유소 40% 불과

유증기 회수 설비의 원리. [한국환경공단 제공]

유증기 회수 설비의 원리. [한국환경공단 제공]

하지만 현재까지 유증기 회수설비를 설치한 주유소는 전체의 40%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는 대전과 광주, 울산광역시 등 인구 50만 명 이상 10개 도시를 VOCs 배출규제 추가지역으로 설정하고 내년 말까지 대상 지역 주유소에 회수설비 1700여 개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환경공단은 유증기 회수설비를 가동할 경우 주유원의 발암 가능성이 100만명당 381명에서 8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조강희 한국환경공단 기후대기본부장은 “주유소들이 경영난 등의 이유로 기존에 주유원이 주유하던 형태에서 고객이 직접 주유하는 셀프 주유소로 전환하고 있다”며 “유증기는 근로자뿐만 아니라 직접 주유하는 국민의 건강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유증기 회수설비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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