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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의 시선] “청와대 선거 개입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

중앙일보 2019.12.20 00:27 종합 32면 지면보기
박재현 논설위원

박재현 논설위원

지난달 초 대검찰청의 한 간부는 경찰청에서 보내온 문건 내용을 보고 적이 당황했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기현 울산시장에 대한 수사를 하게 된 이유를 묻는 검찰의 공식 질의에 “청와대 첩보에서 비롯됐다”고 회신을 해 온 것이다.
 

반헌법적인 울산시장 선거 부정
수사기관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꼼수로 역사 흐름을 바꿀 수 없어

“청와대 첩보라니!”
 
그동안 6차례나 계속된 질의에 묵묵부답으로 대응해오던 경찰이 불쑥 청와대를 앞세워 밀고 들어온 것이다. 수사기관의 생리상 청와대를 거명하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그것도 공식 문건에 청와대라고 분명히 적시를 하다니….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롯한 대검 수뇌부들은 숙의에 들어갔다.
 
먼저 검찰의 대응 방법이었다. “청와대의 문건 작성 배경과 이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를 수사할 수밖에 없다”는 데는 참모진들의 의견이 거의 일치했다. 이 정부 들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된 직권남용죄 때문이었다.
 
윤 총장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참모들의 의견에 십분 동의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경찰이 공개적으로 밝힌 수사 착수 이유는 범죄 혐의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 사건은 재수사는 물론 특검까지 갈 가능성이 크다” “이왕 수사를 하려면 서울중앙지검에서 맡아서 깔끔하게 처리해야 한다” 이후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고소 사건은 울산지검에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부로 옮겨졌다.
 
경찰은 왜 청와대를 끌어들이는 ‘물귀신 작전’을 썼을까. 검찰은 크게 세 가지 가능성을 놓고 추론에 들어갔다.
 
첫째, 경찰이 아무 생각 없이 사실을 적어 보냈을 가능성이다. 하지만 모두 6차례에 걸친 검찰의 독촉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볼 때 “뭔가 찜찜한 구석은 있었던 것 같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별생각이 없었다는 가설은 성립하지 않았다.
 
두 번째, 청와대를 내세우면 더 이상 검찰이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공산이다. 이 또한 검찰의 수사 의지를 고려할 때 가능성이 크지는 않아 보였다. 경찰도 윤 총장 체제의 검찰이 있는 그대로 수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세 번째, 경찰이 이간계(離間計)를 쓴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으로 간극이 생긴 청와대와 검찰의 사이를 최대한 벌려놓아 수사권 조정 논의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이 그러하듯, 경찰도 정권보다는 조직 논리가 더 우선한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경찰의 반응은 다르다. 경찰 측은 “오히려 검찰이 경찰을 앞세워 수사 논리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경찰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의 설명. “검찰이 올 하반기부터 집요하게 자료를 요구했다. 경찰의 입장에선 계속해 회신을 거부하면 수사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압박감까지 느꼈다.” 경찰은 수사기록서에 경찰청에서 받은 첩보 기록이 첨부돼 있고, 기록을 유심히 보면 청와대까지 이어진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기관의 논쟁은 국민의 입장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사 착수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청와대가 지난해 울산시장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정권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윤 총장이나 민갑룡 경찰청장에게 섭섭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지만 선거부정 행위는 반(反) 헌법적이다. 헌법주의자를 자처하는 윤 총장에겐 눈감고 지나갈 수 없는 중요한 범죄 의혹이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청와대의 개입 행태가 구체화되고 있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나서 송철호 울산시장에게 출마를 권유하고, 민정실은 송 시장 경쟁자에게 자리를 보장하거나 약점으로 회유를 한 의심을 사고 있다. 송병기 울산부시장은 청와대에서 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보이는 업무일지를 압수당했다.
 
조국 사건에 이어 연달아 유재수 감찰 무마,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들이 불거져 나오면서 이 정권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울산 사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권을 무너뜨렸던 선거부정 의혹이라는 점에서 그 성격을 차별화할 수 있다. 변호사 수임료를 둘러싼 사소한 폭행이 시발점이 됐던 전 정부의 몰락이 데칼코마니처럼 서초동 법조타운을 떠돌고 있다.
 
“사실 앞에선 겸손해져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니겠습니까?” 정권의 운명이 또 다시 검찰의 손에 쥐어지는 불행이 되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정의를 위한 또 한번의 진통에 불과하다. 검찰과 대화를 하고, 수사의 문제점도 지적한다고 역사의 흐름까지 바꿀 수 있겠는가.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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