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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전기 도살은 잔인” 유죄 판결

중앙일보 2019.12.20 00:04 종합 16면 지면보기
동물단체 회원들이 말복인 지난 8월11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동물 불법도살 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동물단체 회원들이 말복인 지난 8월11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동물 불법도살 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19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303호 법정에선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형두 부장판사(서울고법 형사5부)가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개 사육업자 이모(67) 씨의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유죄 판결을 내려서다. 김 부장판사는 원심인 무죄를 파기하고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2년간 유예했다. 재판부는 “이씨 행위는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인 것”이라며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이 돼 유죄로 인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법, 60대 개농장주 파기환송심
“잔인 개념, 시대·사회 따라 변해”
동물보호법 위반…벌금은 유예

이씨는 2011년부터 5년간 경기 김포에서 개 농장을 하면서 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를 개의 주둥이에 대서 감전시키는 방법(전살법)으로 매년 30여 마리를 도살한 혐의로 기소됐다. 구 동물보호법 제8조는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에선 전기로 개를 도살하는 게 ‘잔인한 방법’인지가 쟁점이었다. 검찰은 이씨의 도살방식이 동물보호법 제8조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씨 측은 축산물위생관리법에서 정한 전살법은 잔인한 방법이 아니라고 맞섰다. 이 법에선 돼지·닭·오리 등 가축을 대상으로 전살법을 허용한다. 그러나 개는 가축으로 분류되지 않아 빠져 있다. 이씨 측은 비록 법에 개가 가축으로 명시돼 있지 않지만 개를 먹는 현실을 감안하면 전기도살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1·2심은 이씨 손을 들어줬다. 그가 사용한 전살법은 개를 즉시 실신시켜 죽이는 방법이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다른 동물 도살 방법과 비교해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는 등 비인도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깨뜨렸다. 대법원 2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원심은 이씨의 도살 방식이 잔인한 방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섣불리 단정했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다시 1년간 심리가 진행됐다. 재판부는 검찰에 전기도살이 잔인한 방식임을 증명하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지난 8월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를 증인으로 내세웠다.
 
우 교수는 “개의 뇌에 직접 전류를 흘려보낸 게 아니라면 움직이진 못해도 고통을 느낄 정도의 의식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의식을 유발하지 않고 동물을 전기적으로 마비시키는 건 극도로 혐오적이고 수용해선 안 된다”고 증언했다.  
 
이날 동물보호단체 회원들과 육견협회 회원들로 가득 찬 법정은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재판장은 “‘잔인’은 사전적으로 ‘인정이 없고 아주 모짊’을 뜻하는데, 그에 관한 논의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변동하는 상대적, 유동적인 것”이라 설명했다. 이어 “특정 동물에 대한 그 시대, 사회의 인식은 해당 동물을 죽이는 행위 자체 및 그 방법에 대한 평가에도 영향을 준다”고 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가 “이씨가 사용한 도살방법은 사회 통념상 동물보호법 위반”이라고 선고를 내리자 방청석은 희비가 엇갈렸다. 다만 재판장은 100만원의 벌금형 선고를 2년간 유예했다. 이씨가 생계 유지를 위해 개 도축을 하게 된 사정과 앞으로 개를 도살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점이 참작됐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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