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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트럼프 vs 反트럼프만 남은 정치…미국이 둘로 갈라졌다

중앙일보 2019.12.20 00:03 종합 5면 지면보기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18일(현지시간) 미시간에서 열린 선거유세에서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18일(현지시간) 미시간에서 열린 선거유세에서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당했다. 정확히는 민주당 주도의 미국 하원에 의해 탄핵 소추되었다. 1868년 앤드루 존슨,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이어 미국 역사상 탄핵 기소된 세 번째 대통령이 되었다. 단 한 명의 공화당 하원 의원도 탄핵에 찬성하지 않은 글자 그대로 당파적 탄핵이었다. 내년 1월 열릴 상원의 탄핵 심판을 통해 트럼프는 무죄 방면될 것이라고 해도 그 정치적·역사적 무게감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서정건 교수가 본 미 대통령 탄핵
공화당 의원 단 1명도 찬성 안해
민주, 탄핵안 상원 송부 안할 수도
트럼프 핵심 지지층 흔들림 없어
중립지대 공백…탄핵역풍도 미미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염려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탄핵 명목으로 반역·뇌물수수·중범죄·비행 등 네 가지를 헌법 조문에 명시해 놓았다. 특히 중범죄와 비행에 대한 해석이 모호함에 따라 의회 주도의 탄핵은 선거가 아닌 인위적 방식으로 현직 대통령을 몰아내려는 시도라고 종종 비판받기도 한다.
 
하지만 하원이 표결해 온 탄핵 소추안들(존슨 11건, 클린턴 4건, 트럼프 2건)은 예외 없이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막고 헌법을 수호한다는 내용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하원에서 탄핵 조사가 일단 시작되면 다른 모든 입법 활동보다 우선적으로 다루어져야 하고 탄핵을 반대하는 상원일지라도 표결 자체를 회피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선거유세장 밖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는 시민들. [AP=연합뉴스]

선거유세장 밖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는 시민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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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트럼프는 하원에서 탄핵당했을까? 지난 7월 25일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 내역이 문제였다. 대통령 역할을 종종 하던 코미디언 출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선출된 후 이루어진 정상 간 전화에서 트럼프는 자신의 유력한 대선 경쟁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일가의 비리 혐의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미국 의회가 일찌감치 승인했던 4억 달러 규모의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 집행을 트럼프가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사실을 젤렌스키는 알고 있었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방미 초청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사실을 트럼프는 알고 있었다. 탄핵 관련 핵심 쟁점은 대가성(quid pro quo) 여부였다. 경쟁자 수사와 군사 원조를 맞바꿈으로써 대통령이 그 직위를 남용했다는 탄핵 소추안은 의회 방해 조항과 더불어 하원에서 통과되었다.
  
“통화내역 똑바로 읽어보라” 티셔츠의 의미
 
서정건

서정건

물론 트럼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평소에도 즐겨 쓰던 “마녀사냥” 문구를 거의 매일 동원했고 바이든 아들 조사 여부와 상관없이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가 집행되었으니 결국 대가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트럼프 지지 세력이 “(문제 될 것이 없는) 통화 내역을 똑바로 읽어보라”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대대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보수 편향이자 시청률 1위인 폭스뉴스는 매일 저녁 8시부터 세 시간 동안 세 명의 진행자가 집중해 이를 맞장구치느라 바쁜 몇 달을 보냈다.  
 
우리와 달리 탄핵 소추에도 불구하고 직무 정지가 없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평소 앙숙으로 유명했던 밋 롬니 상원의원(유타주·공화당)이나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메인주·공화당) 등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지역구 현안을 챙겨 주고 있다.
 
트럼프 탄핵은 양극화된 미국 정치 현실의 결정판이 아닐 수 없다. 경제 위기와 대외 전쟁을 거치며 커져 온 미국 대통령의 권력을 좀처럼 견제하기 어렵다는 점도 여실히 보여준다. 트럼프에 시비를 걸었다가는 후보 경선에 나서지도 못한다는 사실에 몸을 사린 공화당 의원 중 누구도 외국 지도자에게 국내 정치 개입을 요청한 자기 당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했다.
 
트럼프와 전쟁 중인 CNN·뉴욕타임스 등은 대통령 통화 내역이 탄핵감인 범죄 행위라고 처음부터 기사를 쏟아내었다. 대통령의 권한 범위와 그 한계에 대해 미국 국민의 전통적 합의 의견은 더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현재 미국에는 오직 친(親)트럼프 세력과 반(反)트럼프 세력만이 존재할 뿐이다.
  
포스트 탄핵 정국, 변수는 북한 카드
 
중립 지역이 없는 현재 미국에서 탄핵 역풍도 그다지 거세지 않을 전망이다. 내년 1월 공화당 상원 지도부는 하원의 소추 내용과 백악관의 반박 주장을 2주 정도 듣고 난 후 전체 표결을 강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동시에 매년 1월 말에 개최되어 온 대통령 연두교서 행사를 통해 자신을 탄핵한 의회에 걸어 들어와 당당하게 국정 현안을 제시하는 트럼프 이미지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이는 중이다. 물론 공정한 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이 탄핵 소추안을 상원에 송부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다.
 
민주당 전략 탓에 이번 탄핵 소추는 역사상 최단 기간 내에 마무리되었다. 만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 올린다면 트럼프의 외교 실패에 대한 비판이 급증하겠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위기 시 결집하는 나라가 미국이고 무엇보다 민주당에도 대안이 없다. 북한 발(發) 안보 긴장이 올라갈수록 향후 극적 타결의 정치적 가치도 올라가리라 생각하고도 남을 인물이 트럼프다. 온전히 트럼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미국 정치의 현실과 한계가 우리의 안보와 경제에 맞물려 있다는 사실이 피곤하지만 피할 수는 없다. 포스트 탄핵 시기에도 트럼프는 여전히 최대 변수다. 
  
서정건 교수
미국 정치와 외교정책 전문가다. 미국 텍사스대(오스틴)에서 미국 의회 정치와 외교 정책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 『미국 정치가 국제 이슈를 만날 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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