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장에서] 결국 ‘일하기 좋은 일터’에 답이 있다

중앙일보 2019.12.19 00:06 경제 1면 지면보기
지난달 18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앞에서 삼성전자노조 조합원들이 선전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8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앞에서 삼성전자노조 조합원들이 선전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혐의로 기소된 삼성전자 이상훈 이사회 의장과 강경훈 부사장이 17일 법정 구속됐다. 재판에 넘겨진 32명 중 무려 26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노조 설립을 전(全)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기획해 방해한 혐의다.
 

“노조 인식 국민 눈높이 못 미쳤다”
삼성 사과 … 비노조 방침 폐기 주목

애플·월마트·아마존·MS도 비노조
노조문제 선악 이분법 접근 위험

노조 난립·갈등땐 국가경제 타격
노·사·정 모두 합리적 선택 절실

삼성은 18일 입장문을 내고 사과했다. “과거 회사 내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삼성의 ‘비노조 경영 폐기’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지난달 16일 삼성전자에 한국노총 산하 노조가 공식 출범했다. 이미 비노조 방침 폐기가 시작됐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신속하게 사과문을 들고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사건의 파장을 심각하게 본다는 의미다. 이미 영국 BBC와 월스트리트저널(WSJ)등 외신들은 이번 판결을 주요 기사로 다뤘다. 국내외에서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라는 평을 받아온 삼성으로선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이미지 추락이다.
 
이번 판결의 파장은 삼성에 국한하지 않는다. 재계와 학계에서 논쟁 대상이었던 비노조 경영 화두에 상당한 변화를 몰고올 전망이다. 비노조 경영에 방점을 찍고 있는 기업으로선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당장 지난 9월 말 국정감사 과정에서 부서장 대상 평가지표에 직원의 노조탈퇴율을 넣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비노조 경영을 고수하고 있는 CJ 등이 노심초사하고 있다.
 
일부 학계에선 “비노조 경영에 더 큰 비용이 지출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해왔다. 노조가 생겼을 때 노사관계를 관리하는 비용보다 노조 설립을 막는 데 더 많은 지출이 발생하고, 기업 이미지 추락에 따른 비용까지 더하면 비용 산출이 어려울 정도라는 이유에서다.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지난달 1일 ‘삼성전자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지난달 1일 ‘삼성전자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고 노조 설립이 비용 관리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단정지을 일도 아니다. 갈등 국면이 형성되면 경영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자칫하면 기업의 생존을 좌우할 수 있다. 비노조가 경영상 유리한 사례도 많다.
 
실제로 세계적인 초우량 기업 중엔 비노조인 경우가 여럿이다. 애플·월마트·페이스북·IBM·아마존·버크셔·마이크로소프트 등이다. 포춘지에 매년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된다. 따라서 유노조·비노조 중 어느 것이 경영에 유리한지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노조 문제를 두고 선악이란 이분법으로 접근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삼성의 비노조 방침이 지탄받은 것은 비노조 경영 원칙 자체가 아니라 노조 설립을 막으려 불탈법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노조가 생긴 다음이다. 비노조 경영에 버금가는 그동안의 성과를 이어가려면 노사관계가 원만해야 하는 것은 필수다. 삼성전자의 한국노총 소속 노조의 조합원은 직원 규모에 비해 아주 적다. 회사측은 그동안 “근로조건이 워낙 좋아서 노조의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번 재판을 통해 사측의 불탈법이 상당했음이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선 노사간 신뢰가 깊어지기 어렵다.
 
우려되는 것은 노조가 난립할 경우다. 이 경우 집단적 힘이 동원돼 사업장이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 실제로 50년 만에 정식 노조가 들어선 포스코는 한국노총 계열과 민주노총 계열 노조 간 힘겨루기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삼성전자가 휘청이면 국가 경제에 치명적일 수 있다. “‘일하기 좋은 일터’가 ‘노조하기 좋은 일터’보다 우선해야 한다”(남성일 전 서강대 경제학 교수)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으로선 노사관계와 관련해 뼈를 깍는 개혁이 요구된다. 한편으론 삼성도 바뀌어야 하지만 정제된 정책과 노동계의 합리적 선택이 절실하다는 말이 나온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 교수는 “노조의 순기능은 원활하게 작동하게 하고, 역기능은 제어하는 정책적 배려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개혁 등을 통한 선진형 제도 정비로 합리적 노사관계 형성의 토대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