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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눈높이 못미쳐" 삼성의 반성···50년 무노조 원칙 버리나

중앙일보 2019.12.18 16:31

삼성전자·삼성물산, 노조 와해 사건 공식 사과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노동조합 와해 사건과 관련 공식 사과문을 내놨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18일 공동명의의입장문에서 “노사 문제로 인해 많은 분께 걱정과 실망을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두 회사는 또 “과거 회사 내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했다. 삼성 측은 입장문 말미에 “앞으로는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삼성, 노조 판결 관련 공식 입장문 발표
"노조 보는 시각 국민 눈높이 못 미쳐"
"미래지향적 건강한 노사문화 정립할 것"
"노조 탄압 중단, 새로운 노사관계 만들 것"

 
삼성은 그동안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이번 노조 와해 사건에 공식 입장문을 통해 사과까지 하면서 앞으로 무노조 경영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법원은 지난 17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와해 사건의 1심 공판에서 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 13개 혐의로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을 법정구속하는 등 임직원 26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이에 앞서 법원은 지난 13일에도 에버랜드 노조의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과 이우석 전 에버랜드 전무 등 임직원 10여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삼성은 창업 초기부터 무노조 경영 원칙 고수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은 1938년 삼성의 창업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 이병철 회장은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창립한 이후 줄곧 무노조 경영 원칙을 이어왔다. 삼성 내에서 노조 설립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0년 설립된 제일모직 노조, 1977년 결성된 제일제당 미풍 공장 노조는 결성 직후 내외부 압력에 의해 해산됐다. 또 1980년대에는 삼성중공업에서 노조 설립 움직임이 있었지만 삼성은 어용노조를 먼저 설립하는 방식으로 노조 설립을 무산시켰다. 당시에는 복수노조가 허용되지 않아 1사 1노조만 허용되던 때였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조원들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1심 판결 선고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조원들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1심 판결 선고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현재 삼성그룹에는 우선 삼성전자 안에 4개의 복수 노조가 설립돼 있다. 또 민주노총 산하에 삼성전자서비스 노조가 있고, 삼성SDI·삼성생명·삼성증권·에버랜드·에스원 등 계열사에 노조가 설립됐다. 하지만 노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삼성이 ‘노조를 노조로 인정하지 않는’ 비노조 경영을 고집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그동안 “비노조 경영은 노조가 필요하지 않은 업무 환경을 조성하자는 것이고, 많은 글로벌 기업이 채택하고 있는 기업 경영방식의 하나”라고 맞서 왔다. 
 

삼성, 노조 탄압 중단하고 새로운 노사문화 만들 것  

하지만 삼성은 이번 법원 판결을 계기로 공식 입장문까지 발표하고 특히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입장문에서 '노조를 인정한다'는 식의 명확한 표현도 없다. 이에 대해 익명을 원한 한 대학의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의 말보다는 발을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50년 넘게 굳어져 온 무노조·비노조 경영 원칙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입장문이 아니라 앞으로 삼성이 어떤 노사 정책을 펴고 실행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공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공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번 판결과 상관없이 노조의 합법적 활동 허용을 표방하는 등 이미 오래전부터 노조를 인정하는 쪽으로 내부 기조가 바뀌어 왔다”고 말했다. 그는 “건강한 노사문화 정립을 위한 로드맵과 실행 계획 등을 마련해 갈 것”이라고도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노조를 탄압하는 무노조·반노조 행위는 당연히 중단해야 하고 아울러 새로운 노사 문화를 만들어갈 것”이라면서도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노조가 없어도 될 만큼 최고의 환경을 만들겠다는 큰 원칙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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