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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돌’ 이긴 이세돌 “허무하다”…이번에도 ‘78수’에서 갈렸다

중앙일보 2019.12.18 16:09
이세돌 9단이 18일 서울 강남구 바디프랜드 사옥에서 열린 은퇴대국에서 '한국형 알파고' NHN '한돌'과 맞대결 제1국에서 92수 만에 불계승을 거둔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오른쪽은 '한돌' 개발자인 이창율 NHN 팀장. [뉴스1]

이세돌 9단이 18일 서울 강남구 바디프랜드 사옥에서 열린 은퇴대국에서 '한국형 알파고' NHN '한돌'과 맞대결 제1국에서 92수 만에 불계승을 거둔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오른쪽은 '한돌' 개발자인 이창율 NHN 팀장. [뉴스1]

인공지능(AI) 한돌을 꺾은 이세돌 9단의 표정은 밝았다. 그러나 연신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돌과의 첫 번째 대국에서 한돌의 실수로 승리한 이세돌 9단은 “제가 지금 이기고 기분이 좋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돌 개발자는 “당혹스럽다”고 했다.
 
이세돌 9단은 18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바디프랜드 사옥에서 열린 NHN의 바둑 인공지능 한돌과 ‘바디프랜드브레인마사지배 이세돌 vs 한돌’ 치수 고치기 3번기 제1국에서 92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불계승은 바둑에서 계가를 하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상대가 기권했을 경우에 이뤄진다.
 
이세돌 9단은 자신이 두 점을 먼저 두는 접바둑으로 첫 대국이 진행된 것과 관련해 “핸디캡 매치라는 건 맞다”며 “이걸 통해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를 확실히 좀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떻게 대국을 준비했느냐’는 물음에 “제가 5개월 정도 바둑 시합이 없었다. 연습도 하지 않았다”면서도 “근래 10일 정도는 바둑만 생각하고 연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가 지금 이기고 기분이 좋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준비를 많이 했는데 허무하다. 여기 계신 분들도 그렇게 많이 느끼셨을 것 같다”며 “2·3국에서는 한돌이 시간은 없겠지만 조금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 NHN 제공]

[사진 NHN 제공]

 
한돌 개발자인 이창률 NHN 팀장은 “솔직히 말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이세돌 9단의 78수를 한돌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세돌 9단이) 너무 대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실 저희가 학습을 시키면서 프로기사분들과 테스트를 했다. 결과가 많이 달라서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의 78수는 결정적 한 수로 꼽혔다. 2점을 깐 상태로 불리한 형국에서 시작한 한돌은 대국 초반 예상 승률이 10% 안팎에서 출발했으나 우변 흑돌을 공격하면서 30%대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의 78수째 이후 한돌의 예상 승률은 14%대로 급격히 떨어졌다. 알파고와 호선으로 맞붙었던 2016년 인공지능과 대국 상황을 약 3년 만에 재현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이세돌 9단은 “알파고 대국과는 다른 게 당시 78수는 받으면 안 되는 수였다. 반면 오늘 한돌과의 대국에서 78수는 당연한 한 수였는데 한돌이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의아하다”고 답했다.
 
치열한 전투가 예상됐던 승부는 한순간에 싱겁게 끝났다. 한돌이 ‘축버그’를 일으키며 기초적인 실수를 범했다. 바둑에서 ‘축’이란 계속해 단수를 쳐서 상대의 돌을 잡는 기술이다. 축은 바둑의 매우 기본적인 기술 중 하나로 꼽히는데, AI가 알 수 없는 계산 착오를 일으켜 이 축을 간과하는 경우 ‘축 버그’가 발생했다고 한다.  
 
송태곤 해설위원은 “한돌의 1.0 버전과는 인터넷상에서 몇 번 둬봤다. 그때 진 적도 있고 이긴 적도 있다. 버그나 끝내기에서 약점이 있었지만 올해 2.0 버전을 내놓으면서 국내 초일류 기사들을 모두 이겼다”며 “아무리 잘두는 선수라도 이기기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엔 그보다 위인 3.0 버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축머리 수읽기를 잘못 봐 버그를 일으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NHN 관계자는 “버그는 아니고 이세돌이 대처를 잘했다는 것이 개발진의 평가”라며 “이세돌이 ‘신의 한 수’를 뒀다”고 말했다. 
 
이로써 이세돌 9단에겐 알파고에게 승리를 거둔 유일한 인간이란 타이틀에 은퇴 경기에서도 AI를 이겼다는 기록이 더해졌다. 이세돌 9단이 1국을 잡아 2국에서는 서로 동등(호선)하게 대결을 하게 된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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