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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장미도 있다, 봉사에 대한 고정관념서 벗어날 때

중앙일보 2019.12.18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38)

어린 시절 동네 골목을 누비며 불렀던 동요가 생각난다. 동요 ‘비행기’의 가사 앞에 장난삼아 만들어 붙인 노래이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게,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그리고는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라는 가사가 이어진다.
 
그 당시에는 진리와도 같았던 가사가 요즘 돌이켜 보면 하나도 맞지 않는 노래이다. 원숭이 똥구멍이 빨간 게 아니라 엉덩이가 빨간 거고, 사과도 파란 사과가 있다. 맛없는 바나나, 한량짜리 기차, 비행기보다 빠른 로켓, 에베레스트는 백두산보다 더 높고.
 
우리가 진리로 받아들이던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과거에 불가능을 얘기할 때 쓰던 'Blue Rose'는 엄연히 파란 장미로 세상에 존재한다. [사진 pxhere]

우리가 진리로 받아들이던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과거에 불가능을 얘기할 때 쓰던 'Blue Rose'는 엄연히 파란 장미로 세상에 존재한다. [사진 pxhere]

 
장난삼아 만들어 부르던 옛 노래에 딴지를 걸고 싶어 그러는 건 아니다. 과거에 우리가 진리로 받아들이던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얘기다. 과거에 불가능을 얘기할 때 쓰던 'Blue Rose'는 엄연히 파란 장미로 세상에 존재하고, 잘 붙어야 한다던 강력접착제는 잘 떨어지는 포스트잇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봉사와 기부에 대한 우리네 사고도 바뀌어 가고는 있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여긴다. 봉사나 기부는 남을 위한 것이고 자기의 손해와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봉사는 자기를 위한 일이다.
 
내가 아는 두 사람의 예를 들어 봉사나 기부가 결국은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걸 얘기해 보자. A라는 사람은 전직 교사다. 그는 퇴직 후 그동안 취미 삼아 배워왔던 악기연주로 노인센터나 아동돌봄센터, 감호소에 음악봉사를 다녔다.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많은 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에 널리 알려지다 보니 지자체의 전속악사(?)가 돼 일정 부분 급여를 받으며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부부가 함께 각종 행사에 초대받아 시간을 쪼개가며 활동하고 있다.
 
전직 교사 A씨는 퇴직 후 그동안 취미 삼아 배운 악기연주로 음악봉사를 다녔다. 많은 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에 널리 알려지다보니 지자체 전속악사(?)가 돼 급여를 받으며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pxhere]

전직 교사 A씨는 퇴직 후 그동안 취미 삼아 배운 악기연주로 음악봉사를 다녔다. 많은 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에 널리 알려지다보니 지자체 전속악사(?)가 돼 급여를 받으며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pxhere]

 
B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아직도 개인택시 기사다. 그는 배우지 못한 한을 이기기 위해 독학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 왔다. 특히 역사에 관심이 많아 한국사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그 결과 문화해설사 자격을 취득했고, 그를 계기로 문화해설 봉사를 시작했다. 정사뿐만 아니라 야사까지 두루 섭렵해서 설명하니 듣는 이들이 매우 좋아해 이제는 최고의 지역 전문 해설사로 활동하며 일정의 활동지원금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의 다른 점은 학력의 차이와 인생전반부 대우에서의 차이다. 그런데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둘 다 봉사와 기부를 통해 과거의 수입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봉사가 인생후반부 생계수단(?)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는 점이다.
 
더 큰 반대급부가 있다. 바로 호칭의 문제다. 호칭이 뭐 중요하냐고 그러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생후반부 호칭은 어떤 면에선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한때 ‘실질숭상’이라는 표어를 내 세우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직장 생활할 때 후배들에게 간혹 “형식이 실질을 좌우할 수도 있다. 그러니 형식을 무시하지 마라”라고 강조하곤 했었다. 인생후반부를 살아가며 형식은 어떤 면에선 실질만큼 중요하기도 하다.
 
호칭은 형식이다. 인생전반부 ‘oo님’이라 불렸던 인사들도 직업을 놓은 인생후반부 듣는 호칭은 ‘아저씨’, ‘아줌마’일 뿐이다. 하긴 누구나 다 아저씨, 아줌마다. 그런데 인생전반부 oo님으로 불리던 사람들은 아저씨, 아줌마라는 호칭에 굉장히 민감해한다. 그 이유는 자존감의 상실과 지위, 명예로부터의 박탈감 때문이다. 호칭은 일종의 현재 상태에 대한 확인인 셈인데 상대적으로 우월적 지위를 누리던 oo님이 어느 날부터 일개 범부에 지나지 않는 아저씨, 아줌마로서 대우받는다는 자격지심과 자존감의 박탈에 괴로워한다.
 
오래전 직장생활에서 인생 환승을 한 나는 오늘도 ‘님’이라는 접미사가 붙은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 그게 뭐 대수냐라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생후반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특히 인생전반부 높은 호칭으로 불렸던 인사들에겐 삶을 유지하는 중요한 가치일 수도 있다.
 
인생후반부 삶을 건강하게, 젊게 이어가는 방법은 경제적 부의 유지가 아니다. 나는 사회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에 대한 확신인 데 그것이 자존감이다. 자존감의 상실은 그 어떤 부와 명예도 대신해 줄 수 없다.[사진 pxhere]

인생후반부 삶을 건강하게, 젊게 이어가는 방법은 경제적 부의 유지가 아니다. 나는 사회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에 대한 확신인 데 그것이 자존감이다. 자존감의 상실은 그 어떤 부와 명예도 대신해 줄 수 없다.[사진 pxhere]

 
그렇다면 인생후반부에도 ‘oo님’으로 불릴 수 있는 비법이 있는가? 있다. 봉사나 기부가 희생과 손해가 아니라 결국은 자신을 위한 일이고 인생후반부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고 이웃과 나보다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기부하는 일이다. 결국 이웃을 위한다는 것은 나를 위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아직도 ‘원숭이 똥구멍은 빨게’라는 우스개 동요 같은 노래로 인생후반부를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언컨대 꿈 깨시라. 오래전 기고문에서 호칭 ‘~놈’과 ‘~님’에 대해 쓴 일이 있다. 놈과 님의 차이는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이냐 아니면 남을 위해 봉사하고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냐의 차이에 있다고 본다. 과거에 ‘~님’이라고 존경받던 직업의 사람들이 오늘날 ‘~놈’이라고 불리는 사례는 무엇을 말해 주는가. 바로 타인을 배려하고 도와준다던 숭고한 직업관을 버리고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산다는 인식을 주기 때문이다.
 
인생후반부 삶을 건강하게, 젊게 이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경제적 부의 유지가 아니다. 바로 나는 무엇인가, 나는 사회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에 대한 확신인 데 그것이 자존감이다. 자존감의 상실은 그 어떤 부와 명예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자존감을 지키는 방법이 봉사와 기부임은 자명한 일이다. 100세를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시는 김형석교수님의 말씀이 또 떠오른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라는 말씀. 인생후반부는 나만을 위해 전력투구했던 인생전반부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나만 잘살겠다던 과거의 가치를 고집한다면 그의 인생후반부의 모습은 명약관화하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라.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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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익종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필진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 봉사는 자기애의 발현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만이 남에게 봉사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연대가 줄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봉사는 나를 필요로 하는 대상을 찾아, 내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다. 내 존재를 확인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봉사다. “봉사하라, 봉사하라! 오래 가려면 함께 하자”고 외치는 필자의 봉사 경험을 통해 봉사가 어렵고 거창한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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