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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세상을 바꿀까, 내 마음을 바꿀까

중앙일보 2019.12.18 00:34 종합 32면 지면보기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세상을 바꿀 것인가? 아니면 내 마음을 바꿀 것인가? 인간의 행동은 이 두 가지 욕구 사이의 충돌과 균형의 산물이다.
 

세상을 자신의 욕망에 맞출까
자신의 마음을 세상에 맞출까
둘 사이의 균형이 행복의 기술

세상을 바꾸려는 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세상을 자신에게 맞춘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세상 속으로 향한다. 도중에 진로를 바꾸기도 하고,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하며, 퇴근 후에는 자기계발에 몰두한다. 필요하다면 법적 투쟁도 불사하며, 관행이라는 세상의 벽에 용감하게 맞선다.
 
마음을 바꾸려는 자는 자신을 세상에 맞추려고 한다. 인생에는 어차피 이룰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깨달음을 따라 자신의 마음속으로 향한다.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기 위해 참는 법을 배운다. 거짓 욕망을 제거하여 마음을 정화하며,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을 키우려고 노력한다.
  
세상을 바꿀까 VS 내면의 평화를 지킬까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기 시작한다. 어린아이는 주로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통해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울음과 응석으로, 때로는 저항할 수 없는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으로, 원하는 것을 집요하게 얻어낸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과 어른들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웃음소리는, 세상으로부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도록 신이 내려주신 최고의 무기다. 그러나 울음과 응석과 귀여움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에 진입하면서부터 아이들은 때로는 자신을 세상에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양한 마음의 무기들을 장착한다.
 
성인이 되는 과정은 세상을 바꾸려는 힘과 내면의 평화를 지키려는 힘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원하는 외모를 얻기 위해 인위적인 노력도 하지만, 미인박명이라는 속설을 믿기로 결정한다. 탁월함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우리의 평범함을 위로하기 위해 천재는 미친 자들이라는 고정관념도 동시에 받아들인다. 성공을 지향하지만, 실패로부터 배우려는 마음의 준비도 한다.
 
급기야 중년이 되면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다는 생각에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하기보다는 더 나은 과거를 만들기 위해 지나온 날들을 음미하고 재해석한다. 해석과 재해석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이 보유한 최고의 무기다.
  
세상 속으로와 마음속으로의 균형
 
이처럼 삶은 세상을 바꾸려는 욕망과 자신의 마음을 바꾸려는 욕망 사이의 선택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 둘이 늘 갈등관계인 것은 아니다. 마음을 바꾸는 전략이 소극적인 자기보호나 방어기제만도 아니다.
 
때로는 마음을 바꾸는 것이 최선의 전략일 때도 있다. 마음을 바꾸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전략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문제는 균형이다. 삶의 천재들은 자신의 나이와 상황에 맞는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낸다. 가장 아이다운 아이는 마음을 바꿔서 세상을 견디기보다는 세상을 바꿔서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다섯 살 꼬마가 ‘인생이 다 그렇지’라고 말한다면 대견하기보다는 안타깝지 않겠는가?
 
어른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유한함과 한계를 인식하고 마음의 힘을 키운 사람이 어른답지 않을까?
 
행복 연구에 따르면 두 가지 전략 모두 행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상을 바꾸는 전략이 순간순간의 기분에 중요하다면, 마음을 바꾸는 전략은 자기 삶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에 기여한다.
  
2019년을 돌아보며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에서 2019년의 삶을 되돌아본다.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만 지나치게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세상을 비난하고 상대를 적대시하면서 정작 자신의 내면을 관리하는 노력은 등한시하지 않았는지 자문해본다. 투쟁에는 열심이었지만 자기성찰에는 게으르지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마찬가지로 세상을 바꾸는 일에 너무 무관심하지 않았는지 자문해본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생각으로 젊은이들에게 부담을 준 적은 없는지 반성해본다. 세상을 향한 치열함은 사라지고 마음속 평온함만 가득한 삶은 아니었는지 반성해본다.
 
한 기도문의 간구처럼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꾸려는 용기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잠잠하게 받아들이는 평온함이 동시에 가득한 한 해였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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