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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인사이트] ‘3불’ 약속 지켰다는 한국…‘1한’까지 이행하라는 중국

중앙일보 2019.12.18 00:30 종합 28면 지면보기

사드 보복, 왜 아직 안 풀리나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 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사드 갈등’이 봉합됐다지만 현장에서는 중국의 부당한 제재가 유지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 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사드 갈등’이 봉합됐다지만 현장에서는 중국의 부당한 제재가 유지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내년 상반기 한국 방문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가 최근 말했다. 시 주석의 방한이 성사되면 2014년 이래 7년 만의 방한이 된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이후 수교 이래 최악이란 평가를 듣는 한·중 관계가 시 주석 방한을 계기로 온전히 회복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과연 사드 보복은 시 주석 방한을 계기로 풀릴 수 있을까.  
  

“시진핑 주석은 내년 방한 때 한국에 두 가지 요구를
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아시아에 배치하고자 하는
중거리미사일을 한국이 받아선 안 된다는 게 하나다.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이
동참하지 말라는 것이 다른 하나다.”

1992년 한·중 수교 이래 지금까지 27년간 13명이 주중 대사를 거쳤다. 이 중 최고의 활약을 펼친 이로는 단연 제2대 황병태 대사가 꼽힌다.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등 중국 권력 서열 1~3위의 방한을 모두 성사시켜 한·중을 밀월 관계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외교에서 효과가 좋기론 초청외교가 제일이라 한다. 그래서 정상 초청은 의미가 각별하다. 극진한 대접으로 호감을 사 자국의 국익을 실현할 좋은 기회다. 이와 관련, 재미있는 일화로 김대중 대통령의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 초청 사례를 들 수 있다. 98년 11월 방중한 DJ의 가장 큰 임무는 중국과의 경협 확대로 외환위기를 하루빨리 극복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선 중국 경제의 ‘차르’로 불리던 주 총리의 마음을 사야 했다. 만찬 때 기회가 왔다.
 
주 총리가 DJ의 오랜 수감 생활을 거론하며 “감옥에서 어떻게 견뎠느냐”고 물었다. DJ는 이때다 싶었나 보다. “파리 잡기를 하며 보냈다”고 답했다. 날아다니는 파리를 손으로 잡되 적절한 힘 조절로 파리를 기절시켰다가, 깨어나면 다시 잡기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주룽지가 폭소를 터뜨렸다.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냐”며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DJ는 정색을 하고 “한국에 오면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주 총리는 이때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DJ가 자신을 한국으로 초청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음을 말이다. 주 총리는 2년 후 한국을 찾았다. 물론 빈손이 아니었다. 삼성화재가 중국에서 영업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줬고 현대자동차의 중국 진출 발판도 깔아줬다. 정상 초청외교가 빛을 발한 셈이다.
  
중국은 ‘적절한 처리’ 말하며 미온적
 
현재 한국에선 시진핑 주석의 방한에 대한 기대가 크다. 한·중은 이른바 ‘3불(三不) 협의’로 불리는 2017년 10월의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와 두 달 뒤 이뤄진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등 사드 풍파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한국 내 인식으로는 중국의 사드 보복은 현재 진행형이다. 한류 스타의 중국 공연은 아직 불허 상태이고, 중국인의 한국 관광 역시 제한적이다. 내년 3~4월 시 주석이 방한하게 되면 이런 족쇄가 풀리는 게 아니냐는 희망을 한국측은 갖는다.
 
그런데 그럴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베이징 분위기를 보면 두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하나는 한국이 생각하는 만큼의 사드 보복 철회는 없을 것이란 점이다. 다른 하나는 철회는커녕 제2의 사드 사태를 야기할 화근이 심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우선 중국의 사드 보복 해제 가능성을 보자. 이달 초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장관)이 한국을 다녀갔지만 사드 관련 중국의 입장에 변화가 있다는 조짐은 전혀 없다. 왕이는 “미국이 사드를 한국에 배치해 한·중 관계에 영향을 줬다”며 미국을 비판했다. 미국의 동맹인 한국 대통령 면전에서 미국과 한국을 싸잡아 성토한 격이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같은 시기 “사드 문제의 적절한 처리” 필요성을 강조했다. 뭘 적절하게 처리하자는 걸까.
 
이와 관련한 한·중 인식이 크게 다르다. 한국은 ‘3불 협의’로 사드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냐고 본다. 한국의 주권적 사항을 중국에 약속하는 것으로 논란이 많았지만, 아무튼 그렇게 하는 대가로 중국의 사드 보복 취소를 기대했다. 그러나 보복이 계속되자 한국에선 중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 10월 주중대사관 국감에 나선 국회의원들도 “한국은 3불 약속을 잘 지키는데 중국이 약속을 깼다”며 중국을 성토했다. 이게 한국 내 일반적 시각이다.
 
경북 성주군에 배치된 사드 발사대. [뉴시스]

경북 성주군에 배치된 사드 발사대. [뉴시스]

중국의 생각은 다르다. 약속은 한국이 안 지키고 있다고 본다. 왜? ‘3불 협의’를 보면 “한·중은 양국 군사 당국 간 채널을 통해 중국이 우려하는 사드 문제에 대해 소통해 나가기로 합의했다”는 문구가 있다. 이게 뜻하는 건 차단벽 설치든 뭐든 군사적 조처를 통해 사드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해소하란 것이다. 사드 사용에 제한(制限)을 가하는 셈이다. 그래서 중국에선 ‘3불’이란 말에 그치지 않고 ‘3불1한(三不一限)’이란 말을 쓴다. 한국은 ‘3불’을 지키고 있다고 하는데 중국은 ‘1한’도 지키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사드 운용을 주한 미군이 하는 것이라 한국의 힘이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발목이 잡혀 사드 문제 해결이 더는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은 사드 문제를 당시 수준에서 ‘봉합’한 상태다. 더 묶지도 않지만 풀지도 않는 것이다. 사드 보복을 전면 거둬들이지 않는 이유다. 뭐가 문제였나.
 
‘3불 협의’ 작성을 잘못한 결과다. 당시 문 대통령의 방중 성사를 위해 서두르다 보니 우리가 할 수 없는 걸 중국에 약속하고 만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현재 말하는 ‘적절한 처리’란 바로 사드 운용을 제한하는 ‘1한’도 실행하라는 것이다. 중국이 이런 입장을 고수하는 한 사드 보복 철회는 없어 보인다. 그러긴커녕 시 주석 방한 때 또 다른 불씨가 심어질까 걱정이다.
  
시진핑 방한이 또 다른 불씨 심을 수도
 
사드 문제 관련해 중국의 입장이 바뀌기 어려운 건 시 주석 자신이 직접 사드 배치를 하지 말라고 한국에 요청했기 때문이다. 2014년 7월 초 한국을 찾은 시 주석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사드 배치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후 시 주석의 요구가 거부되자 중국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외교나 국방 분야에서 실무자급 논의로 진행된 사안이라면 지도자가 나서 타협점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시 주석 본인의 입에서 나온 문제라 해결사가 없다는 게 문제다.
 
현재 베이징 외교가 일각에선 시 주석이 내년 방한 때 한국에 두 가지 요구를 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 8월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탈퇴한 미국이 아시아에 배치하고자 하는 중거리미사일을 한국이 받아선 안 된다는 게 하나다.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이 동참하지 말라는 것이 다른 하나다. 중거리미사일이나 인도-태평양 전략 모두 중국을 겨냥한 것이란 이유에서다. 왕이도 이달 초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중거리미사일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시 주석이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 말을 꺼내면 향후 한·중 관계는 이 문제에 대한 한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결정될 운명이다. 중거리미사일을 받거나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하면 제2의 사드 사태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중국의 입장을 수용하는 건 한국의 주권적 결정이 중국의 눈치를 보며 결정되는 것과 같아 말이 되지 않는다. 이게 시 주석의 내년 방한을 ‘기대’만 갖고 바라보기 어려운 이유다.
 
결국 한·중 사이에 핵폭탄 충격을 가져올 민감한 이슈에 대한 양국 정부의 섬세하고 치밀한 사전 조율이 필요하다. 시 주석의 방한이 한·중 관계의 축복이 돼야지 또 다른 불씨를 심는 계기가 돼선 곤란하다. 뼈아픈 사드 교훈은 양국에 한 번으로 족하지 않나.
 
키워드
3불(三不) 협의  
한·중 정부 협의를 통해 한국이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참여하지 않고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으며 ▶한·미·일 3국 군사동맹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것을 말한다. 2017년 10월 31일 발표됐다.


1한(一限)
사드 운용과 관련해 한 가지 사항을 제한한다는 뜻. 2017년 10월의 ‘3불 협의’에 “한·중은 양국 군사당국 간 채널을 통해 중국이 우려하는 사드 문제에 대해 소통해 나가기로 합의했다”는 문구가 있다. 중국은 이에 근거해 한국에 ‘사드 레이더의 중국 방향에 차단벽 설치’나 ‘사드 기지 현지 조사’ 등을 요구 중이다.
 
유상철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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