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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수도 네피도에 지난 14일 모인 아웅산 수지 환영 인파가 든 초상화.  [AP=연합뉴스]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 지난 14일 모인 아웅산 수지 환영 인파가 든 초상화. [AP=연합뉴스]

 
지난 11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ICJ) 법정에 선 아웅산 수지(74) 미얀마 국가고문 겸 외교부 장관의 표정은 단호했다. 국제 사회가 ‘인종 청소’로 규탄하고 있는 미얀마 군의 로힝야족에 대한 탄압이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을 하면서다. 이 장면은 국제사회에선 ‘아웅산 수지의 변절’의 상징처럼 됐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상징에서 야만성의 변호인이 됐다”(뉴욕타임스)거나 “수지의 몰락”(CNN) “수지의 도덕성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사라졌다”(가디언)는 평가가 나왔다.  

 

수지는 군부 탄압에 맞서 15년간 가택 연금을 당하면서 민주화 시위를 주도한 공로로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랬던 그가 미얀마군이 주도하는 로힝야족 탄압을 변호하고 나서자 국제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ICJ 법정에 자진 출석한 아웅산 수지. [AFP=연합뉴스]

ICJ 법정에 자진 출석한 아웅산 수지. [AFP=연합뉴스]

 
ICJ 변호는 수지 본인이 직접 나서야만 하는 일도 아니었다. 제소당한 건 미얀마 군부였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법정에 선 건 국제사회는 물론 미얀마 내부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결심이었다고 국제정세 전문지인 더 디플로맷은 전했다. 정면돌파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국내 지지 얻고 국제 신뢰 잃다  

 
수지는 11일 약 27분간 이어진 변호인 영어 연설에서 “집단 학살 의도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만약 미얀마의 방어 인력들이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ICJ가 아닌) 미얀마의 군 법정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 여론은 로힝야족의 편이다. 미얀마군이 로힝야 난민을 쫓아내고 살해 및 강간을 했다는 증언과 르포 기사가 나오고 관련 모금 활동도 활발하다. 그러나 수지는 이런 국제사회의 인식에 대해서도 “오도됐다(misleading)”는 주장을 했다.  

 
국제사회의 비난은 거세다. 노벨평화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인권 단체 국제 앰네스티는 그에게 부여했던 ‘양심 대사’ 타이틀을 거둬들였고, 영국 에딘버러시는 ‘에딘버러 인권상’을, 한국의 5ㆍ18기념재단도 광주인권상을 박탈했다. 인권 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의 아시아 담당 부국장 필 로버트슨은 트위터에 “아웅산 수지가 또다시 군의 공모자로서의 면모를 인증하면서 아이콘에서 왕따로 추락했다”고 썼다.  

 
미얀마 국내 상황은 그러나 180도 달랐다. 수지가 귀국하던 14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엔 수천 명의 인파가 그의 대형 사진과 환영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를 메웠다. “국가의 참된 지도자”라거나 “책임 있는 모습”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비교적 중립성을 견지한다고 평가받는 미얀마 타임스도 ‘더 레이디(수지에 대한 애칭)가 직접 변호에 나섰다’는 헤드라인을 달았다. ICJ에선 줄곧 딱딱한 표정이었던 수지도 환호하는 시민들에겐 활짝 웃어 보였다. 

 
아웅산 수지가 14일 자신을 마중나온 환영인파를 향해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아웅산 수지가 14일 자신을 마중나온 환영인파를 향해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불교국가 미얀마 vs 무슬림 로힝야  

 
수지의 직접 변호 승부수에 숨은 의도는 뭘까. 일단 그가 내년의 선거를 의식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내년 선거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국제사회의 비난은 감수하겠다는 계산이다. 수지의 절박함은 여당 지지율 하락에서 비롯됐다. 그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DL)은 2015년 11월 선거에선 압승했으나 지난해 보궐선거에선 13개 의석 중 6석을 얻는 데 그쳤다. 수지가 위기감을 느꼈을 대목이다.  

 
수지와 NDL을 위협하는 제1야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은 군부와 미얀마 국민의 약 30%를 차지하는 소수민족의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의 미얀마 전문가인 헌터 마슨은 CNBC에 “제1야당의 지지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수지와 NDL이 이기긴 하겠지만 불안한 승리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이런 점에서 수지가 군부와 제1야당 지지층을 끌어안기 위해 로힝야족 문제에 적극 나서겠다는 결심을 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로힝야족과 미얀마의 오랜 갈등을 이해해야 퍼즐은 풀린다. 둘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려운 사이기 때문이다.  
 
로힝야 난민촌의 모습. 로힝야 족은 불교국가인 미얀마에 살고 있는 무슬림이다. [AP=연합뉴스]

로힝야 난민촌의 모습. 로힝야 족은 불교국가인 미얀마에 살고 있는 무슬림이다. [AP=연합뉴스]

 
우선 종교 문제가 건널 수 없는 강이다. 미얀마 국민 대다수는 독실한 불교 신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방문했을 때도 미얀마 정부는 불교 성지인 쉐다곤 파고다로 안내했다. 로힝야족은 강경한 수니파 무슬림으로, 영국이 미얀마를 식민 지배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강제이주 당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한때 영국과 손을 잡고 미얀마의 불교 사찰을 불태우고 승려를 학살했으며 미얀마의 농장을 자신들 소유로 삼았다는 설도 전해진다. 1942년엔 로힝야족이 미얀마의 다른 소수민족인 아라칸족 2만 명을 살해했다는 기록도 있다. 미얀마 국민에게는 잊기 어려운 아픈 기억이다. 로힝야족 사태를 단순한 소수민족 탄압으로만 볼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로힝야족은 수지의 아킬레스 건 

 
수지에게도 로힝야족은 정치적 계산을 넘어 받아들이기 힘든 존재다. 그가 2013년 방한했을 당시 4박 5일 동행 취재 중 그의 표정이 유일하게 싸늘했던 때가 있다. 교민 간담회에서 로힝야족 등 소수민족 관련 언급이 나왔던 때다. 한결같이 미소 짓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가 집권 후 로힝야족에 대한 군부의 탄압을 묵인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힝야족은 이래저래 수지에게 아킬레스건이다. 이번 ICJ는 시작에 불과하다. 무슬림 국가들이 똘똘 뭉쳐 로힝야족 옹호에 나서고 있다. 이번 ICJ 제소 역시 감비아가 이슬람협력기구(OIC)를 대표해 이뤄졌다. 수지는 별도 국제 재판소인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수사도 받을 처지다. ICC가 로힝야족 수십만명 강제 추방 혐의로 미얀마 지도자들을 수사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가 ICJ 법정에서 직접 변호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앞으로 이어질 국면에서 기선을 선제적으로 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15년간 가택연금도 견뎌낸 그가 로힝야족 문제에서도 특유의 투지를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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