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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서로 으르렁거리며 진짜 프레지던츠컵이 시작된다

중앙일보 2019.12.17 00:04 경제 7면 지면보기
미국의 패트릭 리드(왼쪽)와 그의 처남이자 캐디 케슬러 캐래인. 리드는 삽질 시늉으로 관중과 신경전을 벌였고, 캐디는 관중과 몸싸움을 해 출전 금지 징계를 받았다. [AP=연합뉴스]

미국의 패트릭 리드(왼쪽)와 그의 처남이자 캐디 케슬러 캐래인. 리드는 삽질 시늉으로 관중과 신경전을 벌였고, 캐디는 관중과 몸싸움을 해 출전 금지 징계를 받았다. [AP=연합뉴스]

2015년 한국에서 프레지던츠컵이 열렸을 당시 갤러리들은 어리둥절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브랜든 그레이스, 호주에서 온 스티븐 보디치, 인도에서 온 아니르반 라히리가 우리 편이었다. 왜 우리가 그들과 같은 팀인가, 무슨 공통점이 있는가. 혹시 6·25 참전국 모임인가. 아니다. 인도는 중립국이라서 참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전쟁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나라는 미국이다. 그렇다면 뭔가.

각국 선수들 모인 인터내셔널팀
상대팀과 감정 싸움하며 동료애
한일전 같은 라이벌전으로 진화

 
인터내셔널 팀의 정의는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나머지다. 억지로 만든 경계다. 냉정히 말하면 잡탕밥이다. 함께 겪은 역사가 없다. 그들과는 공유하는 감정이 없다. 말도 잘 안 통한다. 유기적인 소통이 필요한 포섬(공 하나로 두 선수가 번갈아 치는 경기)에서 인터내셔널 팀이 약한 건 그 이유 때문이다. 영어를 할 줄 안다고 해도 문화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의미 있는 소통이 쉽지는 않다.

 
2015년 대회 당시, 한국 갤러리는 잘 모르는 우리 편보다 더스틴 존슨이나 조던 스피스, 필 미켈슨 같은 미국 팀 스타 선수에게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기자도 그랬다. 우리 팀을 응원해야 할 이유를 잘 몰랐다. 그래서 승패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게임이나 즐기자는 쪽이었다. 마지막에 배상문이 승패가 걸린 경기를 할 때만 좀 짜릿했다.

 
15일 호주에서 막을 내린 프레지던츠컵은 접전이었고 난투였다. 결과적으로 미국 팀이 이겼지만, 첫날 인터내셔널 팀이 4-1로 크게 앞서면서 감정싸움까지 있었다. 인터내셔널 팀이 먼저 도발했다. 최근 연습스윙 하는 척하면서 모래를 치우다 발각된 미국의 패트릭 리드를 공격하라고 호주 선수들이 홈 팬들에게 노골적으로 요청했다. 팬들은 호응했다. 장난감 삽을 가지고 나와 리드를 놀렸다. 리드는 경기 중 삽질하는 포즈를 취하며 갤러리에 맞섰다. 야유는 더 커졌다. 리드의 캐디는 “리드는 개XX”라고 한 갤러리와 드잡이를 했다가 출전정지를 당했다. ‘캡틴 아메리카’로 불린 리드는 사흘간 3경기에 나와 모두 졌다.

 
미국 팀 캡틴 타이거 우즈는 화가 났다. 그는 공식 인터뷰에서 얼굴이 벌게진 채 “술 취한 관중이 도를 넘는 행동을 했다. 최소한의 존중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인터내셔널 팀 캡틴 어니 엘스가 “우리가 미국에서 경기할 때 당한 것에 비하면 양반이다. 프로라면 입 다물고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받아쳤다. 불꽃이 튀었다. 미국 저스틴 토머스는 퍼터로 홀까지 거리를 재는 시늉을 했다. 컨시드를 주지 않는다고 노골적으로 항의한 것이다. 인터내셔널 팀 캐머런 스미스는 역전승한 후 캐디와 한참 축하한 후에야 토머스와 악수했다. 에티켓에 어긋난다.

 
이런 난투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라이더컵에서 미국과 유럽이 늘 하던 거다. 1999년 미국 팀이 대역전승을 거둘 때, 상대 퍼트가 남았는데도 선수들은 그린에 뛰어 올라가 춤을 추는 등 추태를 부렸다. 그런 일들로 인해 앙숙이 됐고, 라이더컵은 한일전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이겨야 하는 대회가 됐다. 미국 골프계는 프레지던츠컵을 라이더컵의 테스트 무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라이더컵에서 이기기 위해 선수, 작전, 조 편성 등을 테스트하는 무대로 여긴다는 의미다.

 
이제 프레지던츠컵도 서서히 앙금이 쌓여간다. 싸움이 라이벌과 유산(legacy)을 만든다. 한국은 머나먼 지구 반대편 남아공과 조금이나마 동질성이 생겼다. 이제야 비로소 프레지던츠컵이 시작됐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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