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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장애인 성폭행 목사…법원 "힘 안썼다"며 형량 깎았다

중앙일보 2019.12.16 12:03
대법원이 지적장애인을 성폭행한 50대 목회자에게 대법원이 징역 4년 6개월을 확정했다. [중앙포토·연합뉴스]

대법원이 지적장애인을 성폭행한 50대 목회자에게 대법원이 징역 4년 6개월을 확정했다. [중앙포토·연합뉴스]

법원이 17세 지적장애인 여성을 "하기 싫다"는 저항에도 성폭행한 50대 목사에게 법정형(5년)은 물론 대법원 권고형 하한선(6년)보다 낮은 징역 4년 6월을 선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法, 성폭행 목사에 하한형보다 낮은 4년 6개월 선고
"하지말라, 싫다"해도 "강압적 폭행 없었다"며 감형

어떤 목사인가

목사는 과거 성추행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전력이 있고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하며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은 "성폭행 과정에서 유형력(폭력) 행사가 크지 않다"며 감형을 해줬다. 
 
검찰과 피해자 측은 "형량이 너무 낮다"고 반발했지만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지난달 28일 "양형부당을 사유로 한 상고는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만 적용된다"며 별도의 법리판단을 하지 않은 채 상고 기각했다. 
 
장애인권법센터장인 김예원 변호사는 "지적장애인 여성을 겨냥한 성폭력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 비판했다. 
 
대법원 3부(사진)는 형법상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이 아닌 경우 양형이유는 상고 사유가 될 수 없다며 지적장애인 여성을 성폭행한 목사 A씨의 4년 6개월형을 지난달 확정판결했다. 왼쪽부터 민유숙, 조희대, 김재형, 이동관 대법관.[뉴스1]

대법원 3부(사진)는 형법상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이 아닌 경우 양형이유는 상고 사유가 될 수 없다며 지적장애인 여성을 성폭행한 목사 A씨의 4년 6개월형을 지난달 확정판결했다. 왼쪽부터 민유숙, 조희대, 김재형, 이동관 대법관.[뉴스1]

어떤 사건인가 

2018년 6월 17세 지적장애인 A양은 신도가 5명인 가정형 교회의 목사 B씨를 만났다. 피해자는 지능(IQ)이 46으로 정신연령이 만 4~8세가량에 해당하는 중등 지적장애인이다. A씨는 사회생활 전부를 교회에서 해 목사란 직업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있었다. 
 
A씨를 만난 지 4일이 되던 날 B목사는 아내가 떠난 사이 A씨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B목사는 A씨가 장애인이란 사실을 인식한 듯 A씨에게 지하철을 타고 오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한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재판에서 이 메시지는 B목사가 A씨가 장애인이란 사실을 알았다는 증거가 됐다.
 
목사는 집에 도착한 A씨를 만지기 시작했고 "싫다, 하지말라"는 거부에도 성폭행을 했다. 성관계가 끝난 뒤 B목사는 A씨에게 안수기도를 해주었다. 
 

목사의 범죄 목사가 밝혀내  

아이러니하게도 B목사의 범죄는 A씨가 신뢰하는 또다른 목사인 C목사를 통해 밝혀졌다. A씨의 행동이 이상하단 사실을 알게 된 A씨의 아버지와 C목사의 추궁에 A씨가 성폭행 피해사실을 털어놓은 것이다. 
 
A씨는 성폭행을 당한 뒤 수사 기관에서 상세하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A씨는 B목사가 "발목을 묵었다""성폭행 뒤 짜장면을 사주었다""아팠다"고 진술했다. 진술전문가들은 A씨가 지적장애를 가졌음에도 진술의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반면 피고인인 B목사는 수사 때부터 진술이 흔들렸다. "신체를 만진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다"→"단순 신체접촉이었다"→"내가 만졌는지 모르겠다"로 말을 바꿨다. 
 
여성 신도들을 수십년 동안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이재록 만민중앙성결교회 목사가 지난해 4월 28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경찰청에서 두 번째 소환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고 있다. 이 목사 사건도 전형적인 그루밍 성폭력 사건의 하나로 꼽힌다. 이 사진은 기사와 상관 없음. [연합뉴스]

여성 신도들을 수십년 동안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이재록 만민중앙성결교회 목사가 지난해 4월 28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경찰청에서 두 번째 소환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고 있다. 이 목사 사건도 전형적인 그루밍 성폭력 사건의 하나로 꼽힌다. 이 사진은 기사와 상관 없음. [연합뉴스]

일관된 피해자, 말바꾼 목사  

법원은 A씨의 음부에서 B목사의 DNA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A씨가 성폭행을 당한 뒤 음부를 물로 씻은 점, A씨의 진술이 일관된 반면 B목사의 진술은 그렇지 않은 점을 이유로 B목사의 성폭행 혐의를 인정했다. 
 
B목사는 A씨가 자신에게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런 내용의 문자가 성관계의 동의를 뜻하진 않는다고 판시했다.
 
문제는 형량이었다. B목사는 성폭력 특례법 '장애인 위계 등 간음' 혐의로 기소됐다. 위계는 속임수, 간음은 삽입을 뜻한다. 위 법령의 법정형은 최소 5년 이상이다. 장애인 강간죄의 경우 법정형이 7년 이상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강간죄 성립의 주요 요소인 유형적 폭력이 드러나지 않은 지금과 같은 사건에선 강간죄로 가해자가 기소될 경우 무죄가 날 수도 있다. 김예원 변호사는 "지적장애인에 대한 강간죄의 경우 폭력 수반이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가 나온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형량 계산 어떻게 했나
B목사에게 적용될 최소 법정형은 5년이었다. 하지만 B목사에겐 성추행 전과가 있었고 A씨를 무고죄로 고소하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A씨가 장애인인 줄 몰랐다"고까지 주장했다. 

 
주영글 변호사(법무법인 숭인)는 "이는 모두 B목사에 대한 형량 가중 사유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B목사에 대한 법원의 권고형은 6~9년형이 나왔다. 하지만 1·2심은 권고형의 하한형은 물론 법정형보다 낮은 4년 6월을 선고하며 B목사를 감형했다. 사유는 "성폭력 과정의 폭력 행사의 정도가 크지 않았고 목사의 가정 형편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10월 인천의 한 교회 목사가 10대 여신도들을 상대로 그루밍 성범죄를 저질렀다면서 처벌을 촉구하는 청원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중앙포토]

지난해 10월 인천의 한 교회 목사가 10대 여신도들을 상대로 그루밍 성범죄를 저질렀다면서 처벌을 촉구하는 청원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중앙포토]

"납득 어려운 감형"

이런 법원의 감형 사유에 법원 내부에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 재경지법의 한 현직 판사는 "감형 사유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라며 "최소 법정형보다는 높은 형을 선고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오선희 변호사(법무법인 혜명)는 "지적장애인 여성은 거절이나 성폭행에 대한 저항 자체가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다"며 "유형력의 행사가 가중 사유가 될 순 있어도 감형 사유가 된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목사가 지적장애 여성을 성폭행하는 과정에서 직위를 이용한 '그루밍 성폭력'이 이뤄졌는데 물리적 유형력 행사 여부를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법원 일각에선 "과거 성폭행 형량과 비교해 4년 6월도 형량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며 "판사가 6년(권고형 하한선)은 전례에 비춰 형량이 높다고 판단해 감형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무형의 유형력=폭력 

장애인 성폭력 사건을 다수 맡아왔던 김예원 변호사는 "이미 대법원 판례에선 유형력의 행사를 물리적 폭력을 넘어 직위와 친밀도 등 무형의 유형력도 그 대상으로 보고 있다"며 "지적장애인 사건의 경우 이 문제가 더 면밀히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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