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년중앙] 매일 8시간 피아노 치며 음대 간 삼수생…'음악이 내 길' 믿고 내 작품 만들었죠

중앙일보 2019.12.16 09:30
뮤지컬 음악감독 손윤아씨는 "자신이 연주자나 작곡가가 되고 싶은지, 음악 관련 일만 해도 좋은지 스스로에게 묻고 확신을 가져야 구체적인 진로 비전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뮤지컬 음악감독 손윤아씨는 "자신이 연주자나 작곡가가 되고 싶은지, 음악 관련 일만 해도 좋은지 스스로에게 묻고 확신을 가져야 구체적인 진로 비전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너 음악 평생 하려던 것 아니었니? 평생 해야 할 음악을 대학 가기 전에 2년 더 한다고 생각해.”
 
재수 끝에 음악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그를 아버지가 말렸습니다. 5년 전에는 ‘우리 형편으로 뒷바라지는 힘들다’며 오히려 음악 전공을 말렸던 아버지였어요.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12년 2개의 창작 뮤지컬 공모전에서 잇따라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뮤지컬 음악감독의 길을 걷게 된 손윤아(35) ㈜뮤직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의 이야기입니다.
 
㈜뮤직홈오케스트라는 2000년 서동범 대표가 설립한 국내 첫 뮤직마케팅 기업이에요. 악기를 무료로 빌려주고 레슨을 통해 음악인을 양성하는 ‘우리동네오케스트라(전국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만들기)’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죠. 국내에선 불모지나 다름없는 분야에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양성해왔고, 현재는 전국에 150개 지점을 갖춘 매출 150억원의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했어요.
 
윤아씨는 ‘우리동네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전체 악기별 편곡 작업과 MR(Music Recorded·반주 음악) 제작을 맡고 있어요. 2017년부터는 ‘우리동네뮤지컬’이라는 별도 브랜드를 만들어 전국의 청소년들이 브로드웨이 라이선스 뮤지컬을 배우고 직접 공연까지 올릴 수 있도록 하고 있죠.
 
2012년 영국의 런던 웨스트엔드(극장밀집지역)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손윤아씨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수십 편의 공연을 보았지만 여전히 최고의 작품은 '라이언킹'이라고 말했다.

2012년 영국의 런던 웨스트엔드(극장밀집지역)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손윤아씨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수십 편의 공연을 보았지만 여전히 최고의 작품은 '라이언킹'이라고 말했다.

유년시절 피아노는 윤아씨의 친구이자 장난감이었습니다. 10대 때는 가수 이적·김동률·토이(유희열)의 음악을 들으며 뮤지션의 꿈을 키웠어요.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던 KBS 음악토크쇼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볼 때도 눈길은 무대 뒤편 하우스밴드에 머물렀죠. 밴드를 바라보며 ‘저 자리에 내가 앉아 있으면 좋겠다’ 또는 ‘평생 저런 일만 해도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나는 앞으로 음악의 길을 가야겠구나’ 생각했다고 해요.
 
“스스로가 확신이 없으면 어느 누구도 나를 안 믿어줘요. 제가 남보다 늦게 음악 공부를 시작했던 건 결국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의 문제였어요. 부모님이 허락을 안 해서 또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라는 건 핑계에 불과해요. 10대 때 하루라도 빨리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가진다면 좀 더 일찍 그 길에 서 있을 겁니다.”
 
실력을 쌓는 데 1년으로는 부족했다 생각하고 삼수에 도전했어요. 최상위권 대학에 반드시 갈 거라며 호언장담했기 때문에 약해질 수 없었죠. 1년 10개월 동안 5시간 이상은 잠을 자지 않았고, 하루 8시간씩 경련이 올 정도로 피아노를 쳤습니다. 지하철에서 코피를 쏟는 일도 부지기수였어요. 스스로가 후회하지 않도록 모든 걸 쏟아부었죠. 서울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이화여대에 지원했고 최종 합격한 곳은 이화여대 작곡과였습니다.
 
.2013년 미국 뉴욕에서 당시 같이 일하던 제작사 대표와 스태프, 배우들과 함께 공연관람에 나섰다. CJ ENM이 한국 최초로 브로드웨이 공연에 프로듀서로 참여한 뮤지컬 '킹키부츠' 초연을 봤다.

.2013년 미국 뉴욕에서 당시 같이 일하던 제작사 대표와 스태프, 배우들과 함께 공연관람에 나섰다. CJ ENM이 한국 최초로 브로드웨이 공연에 프로듀서로 참여한 뮤지컬 '킹키부츠' 초연을 봤다.

“작곡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가수 유희열씨 때문이었어요. 유희열씨가 인터뷰에서 고3 때 1년 공부하고 서울대 작곡과를 갔다고 하더라고요. 선망의 대상이던 사람의 진로 이야기를 접하고는 무조건 작곡과를 가겠다고 결심했어요. 또 피아노 전공은 실기시험에서 단 30초 만에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작곡은 시험 과목이 여러 개여서 저의 능력을 다각도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도 좋았어요.”
 
 2014년 작업한 뮤지컬 '내 심장의 전성기' 포스터. 손병호 배우가 출연했다.

2014년 작업한 뮤지컬 '내 심장의 전성기' 포스터. 손병호 배우가 출연했다.

원하던 음대에 입학했지만 끝이 아니었습니다.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클래식 연주자의 길 외에는 다른 진로를 고려하지 않았어요. 많은 학생들의 목표가 '예술의전당' 무대에 서는 것이지만 그 자리는 매우 한정적이죠. 윤아씨는 일찌감치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어요. 작곡은 응용할 수 있는 분야가 많았죠.
 
“사실 어릴 적에 하고자 했던 건 대중음악이었어요. 락이나 재즈 음반을 열심히 사 모으다 엄마한테 혼나기도 하고 고등학생 때는 밴드 활동을 한 적도 있었고요. 일종의 ‘덕질’이었죠. 둘러보니 작곡과 학생 중에서는 그나마 제가 클래식 외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해봤더라고요. 작곡을 전공한 많은 학생이 꿈꾸는 게 영화음악인데 그건 클래식 바탕만으로는 안 되고 재즈 같은 대중음악도 알아야 해요. 이 부분에서는 예중·예고를 나와 10년 이상 클래식 음악을 한 친구들보다 제가 경쟁력이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막연히 영화음악 진로를 생각하던 윤아씨에게 당시 지도교수는 색다른 조언을 해줬어요. 윤아씨가 작곡한 곡들은 주된 선율이 있다는 게 특징이고, 이는 보컬이 주가 되는 뮤지컬에 잘 맞을 거라는 설명이었죠. 마침 친구가 대학로 뮤지컬 ‘김종욱 찾기’의 감독을 맡은 선배에게 윤아씨를 소개해줬어요.
 
손윤아씨가 작업했던 작품 중 포스터가 가장 마음에 든다는 뮤지컬 '특수병동'.

손윤아씨가 작업했던 작품 중 포스터가 가장 마음에 든다는 뮤지컬 '특수병동'.

대학 4학년 여름방학부터 음악 조감독 일을 시작했습니다. 연습은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졌어요. 윤아씨는 12시간 동안 계속 피아노를 쳐야 했죠. 본공연에서는 씬(scene)마다 MR이 나오지만, 연습 때는 MR 템포와 똑같이 피아노로 반주를 맞춰줘야 했어요. 배우와 스텝들이 숨도 못 쉬고 집중하는 상황, 피아노 반주가 실수를 하면 일순간 흐름이 깨지고 말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이겨내야 했어요.
 
보통 창작뮤지컬은 라이선스 작품보다 해야 할 일은 훨씬 많은 데 비해 임금은 현저히 낮은 것이 현실입니다. 몇 개월씩 고생해도 대가를 못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죠. 2~3개월 동안 매진해 무대에 작품을 올려도 조감독의 보수는 150만원선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쉬는 날에도 언제든 부르면 일하러 가야 할 때가 많았어요.
 
열정만으로 견뎌낸 3년의 세월이 흐른 뒤 윤아씨는 '이젠 내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실력이 입증 안 된 조감독에게 선뜻 일을 맡길 사람은 없었죠. 스물여섯 살의 윤아씨는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공모전에 도전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2012년 여름과 가을, 두 곳의 공모전에서 연달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죠. 첫 작품 ‘내 인생의 특종’으로 대구뮤지컬페스티벌에서, 두 번째 ‘특수병동’이라는 작품으로 CJ문화재단 스테이지업 뮤지컬부문에서 수상했습니다.
 
올해 뮤지컬 '슈렉 주니어'(Shrek the Musical Junior) 한국어 OST 녹음을 마치고 녹음실에서.

올해 뮤지컬 '슈렉 주니어'(Shrek the Musical Junior) 한국어 OST 녹음을 마치고 녹음실에서.

그 이후로 다시 ‘버티기’가 시작됐어요. 생계를 위해 다시 음악감독 일과 작곡을 병행했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도 했어요. 어린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거나 작곡 전공 수험생에게 입시 레슨을 하기도 했죠.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는 뮤지컬 음악감독이라는 직업의 현실 세계는 냉정했습니다.
 
그렇게 스물아홉 살이 된 윤아씨는 결혼 후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로 떠났어요. 하지만 그곳에서도 작곡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했죠. '내 작품 5개만 무대에 올리면 여한 없이 아부다비로 다시 돌아가자'라고 마음먹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기회가 찾아왔죠. 마치 기다렸다는 듯 기획사로부터 작품 의뢰가 쏟아졌고, 마음먹은 대로 5개 작품의 곡을 직접 쓰고 무대에 올릴 수 있었어요.
 
“2010~2011년 사이 뉴욕에 머물 기회가 많았어요. 수요일 낮 제일 한가한 시간대에 극장에 갔는데 3층 꼭대기 자리에 어떤 할머니가 혼자 공연을 보러왔더라고요. 1920년대 스타일로 쫙 빼입으시고 중국 관광객에게 공연 에티켓을 요구하시는 그 할머니를 지켜보는 것이 공연보다 더 재미있었어요. 극장에 대한 예의, 작품을 대하는 태도, 문화적 우월함, 그리고 우아함까지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죠. 그분이 나이 들어서도 뮤지컬을 즐길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어릴 때부터 경험했기 때문이겠죠.”
 
지난해 뮤지컬 '싱잉 인 더 레인 주니어'(Singin' in the Rain Junior) 공연 후 배우·스태프들과 함께.

지난해 뮤지컬 '싱잉 인 더 레인 주니어'(Singin' in the Rain Junior) 공연 후 배우·스태프들과 함께.

윤아씨는 그때 한국 뮤지컬 산업이 왜 악순환을 겪을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어요.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뮤지컬 공연을 접하거나 직접 무대에 오르는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성인이 돼서도 뮤지컬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죠. 그는 ㈜뮤직홈오케스트라의 대표를 설득해 ‘우리동네뮤지컬’ 사업을 시작했어요. ‘싱잉 인 더 레인’(2018년), ‘슈렉’(2019년)의 주니어버전 라이선스를 따와서 전국 100여 곳에 뮤지컬팀을 만들어 공연할 수 있도록 지원했죠. 그것이 우리나라의 창작뮤지컬을 살리는 선순환의 물꼬를 트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는 음악을 전공하거나 음악 관련 산업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청소년들에게도 조언을 잊지 않았습니다.
 
“내가 연주자로서 직접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음악에 관련된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건지를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저도 음악감독을 하면서 끊임없이 ‘내 곡을 써야만 해’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직접 음악을 연주 또는 작곡하고 싶은 사람은 음악 주변의 일만 해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굶어 죽어도 자신의 음악을 직접 해야 돼요. 하지만 나는 그저 음악 언저리에서 일해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음악방송 PD를 비롯해 뮤지컬 제작사에서 기획·홍보·마케팅 등 여러 가지 길이 있습니다. 굳이 전공을 안 해도 되고요. 결국 자신의 마음의 문제입니다.”
 
글=김은혜 꿈트리 에디터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행하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dreamtree.or.kr)’의 주요 콘텐트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되겠다(what to be)는 결과 지향적인 진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겠다(how to live)는 과정 중심의 진로 개척 사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틀에 박힌 진로가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성공 여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고, 남들이 뭐라 하든 스스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길’을 점검해 보시기 희망합니다. 꿈트리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소년중앙과 협업합니다.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