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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올줄 알면서도 모른척…직장 퇴직은 회색코뿔소

중앙일보 2019.12.15 15:00

[더,오래] 신성진의 돈의 심리학(58)  

지난번 글에서 회색 코뿔소(Gray Rhino)와 검은 백조(Black Swan)이야기에 많이 공감해 주셨습니다. 가정경제 입장에서 볼 때 외부에서 오는 위기, 즉 국가와 세계 경제의 회색 코뿔소, 블랙스완이 아니라 ‘우리 가정 경제의 회색 코뿔소, 블랙스완이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회색 코뿔소처럼 어떤 문제가 있는지 뻔히 알고 있지만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다가 당하는 위기가 있고,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당하는 블랙 스완 같은 위기가 있습니다. 한국 경제나 세계 경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세상이 위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시기에도 개인 혹은 가정경제 차원에서 대비해야 하는 위기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짚어보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회색 코뿔소, 이미 알고 있는 위험

회색 코뿔소처럼 어떤 문제가 있는지 뻔히 알고 있지만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다가 당하는 위기가 있고,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당하는 블랙 스완 같은 위기가 있다. [사진 pixabay]

회색 코뿔소처럼 어떤 문제가 있는지 뻔히 알고 있지만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다가 당하는 위기가 있고,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당하는 블랙 스완 같은 위기가 있다. [사진 pixabay]

 
한국경제와 중국 경제가 가지고 있는 위험 요소들이 다른 것처럼 각 가정 경제들이 다른 가정과 달리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개별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가계가 많이 가진 위험요소들을 살펴보면서 우리 가정의 문제와 비교해 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위험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점점 늘어나는 대출 잔액입니다. 가계대출의 위험에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지만 그 규모도 함께 커지고 있습니다. 2013년 가계부채 1000조를 넘어선 이후 점점 늘어 2015년 1203조, 2017년 1450조, 2019년 3분기에 1573조가 됐습니다. 가계 부채가 늘어날수록 대출 이자와 원금 상환 때문에 소비가 점점 힘들어지고, 소비가 힘들어지면 새로운 부채에 대한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점점 리스크는 커지는 것이지요.
 
원인 파악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택자금대출 외에 마이너스 통장 등 신용대출이나 할부 구매로 인한 대출이 많거나 증가하고 있다면 이것은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소비패턴의 변화나 지출 통제를 통해서 줄여나가지 않으면 신용과 가계자산 운용에 심각한 문제를 겪게 됩니다.
 
소비 측면에서 고정지출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면 그것도 위험합니다. 매월 가계의 현금흐름을 살펴보면 조금도 여유가 없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맞벌이로 가계 연 수입이 2억 정도 되는 가정을 상담해 봐도, 장사 잘되기로 소문난 가게 사장님 가정을 살펴봐도 현금으로 여유가 별로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다들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합니다.
 
보통 직장인들은 더 하지요. 월급은 통장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관리비, 자녀 학원비, 각종 할부금, 보험으로 사라져 버리고 또다시 통장의 잔고는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에 가까워집니다. 예기치 않은 경조사나 집안 대소사가 있으면 현금서비스를 받거나 카드를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매월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금액이 많은 경직된 지출구조는 금리 인상, 물가상승, 일시적인 실직 등 금융위기의 여파가 개인적인 상황으로 연결될 때는 매우 위험해집니다.
 
매월 지금 들어오는 돈만큼 들어오지 않으면 가계를 유지하기 힘든 구조는 매우 불안하다. 자녀 교육비, 부모 용돈, 자동차 할부금 등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찾아서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진 pixabay]

매월 지금 들어오는 돈만큼 들어오지 않으면 가계를 유지하기 힘든 구조는 매우 불안하다. 자녀 교육비, 부모 용돈, 자동차 할부금 등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찾아서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진 pixabay]

 
치열한 경쟁 속에서 힘겹게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 사교육비는 절대 건드릴 수 없고, 부모님 용돈을 중단하는 불효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보험은 계속 유지해야 혹시 있을지 모르는 질병이나 사고에 대비할 수 있고, 자동차 할부금이 부담스럽다고 차를 팔아버릴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No!’라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위험을 줄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매월 지금 들어오는 돈만큼 들어오지 않으면 가계를 유지하기 힘든 구조는 매우 불안합니다. 자녀 교육비, 부모님 용돈, 자동차 할부금 등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찾아서 줄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가오는 은퇴도 회색 코뿔소입니다. 뻔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직장에서 1차 퇴직한 사람들 설문조사를 해 보면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다가 퇴직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위에서 보면 그런 반응은 참 당황스럽습니다. 시기가 정해져 있고 회사의 상황을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시간인데, 모른 척하며 지내왔던 것입니다.
 
‘회색 코뿔소’라고 말할 수 있는 다양한 위기들이 있지만, 문제를 뻔히 알면서도 통제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변화를 만들어내는 고통은 생각보다 큰데 당장은 큰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 경제의 블랙 스완은 어떤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제일 심각한 것이 건강을 잃는 것 같아요. 병이나 사고로 경제력을 잃게 되면 그게 가장 큰 블랙 스완 아닐까요?” 모두가 동의했던 가장 심각한 블랙 스완은 핵심 소득원의 사망, 질병, 사고로 인한 소득 단절입니다. 사망도 위험하지만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질병으로 인한 소득 상실과 의료비 지출이 함께 다가오는 문제가 제일 심각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원하지 않는, 예상하지 못했던 실직도 블랙 스완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 퇴직하는 것과 달리 다니던 회사가 망했다든지, 직장에서 여러 가지 사유로 갑자기 실직하게 되는 경우는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직장인이 아니고 자영업이나 소규모 사업을 영위하던 사업가들은 또 다른 블랙 스완들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삼겹살집을 오픈한 상태에서 맞이하게 되는 구제역이나 돼지열병 발병, 치킨집을 열었는데 조류독감 때문에 난리가 나는 일에서부터 가맹점 본사의 갑질 논란으로 인한 피해 등 예상치도 못했던 위기들이 많습니다. 구체적인 대책과 구조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회색 코뿔소가 다가오고 있는데 블랙 스완이 나타나면 감당할 수 없는 위기에 빠진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위기, 대처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고민하는 위기, 회색 코뿔소라고 불리는 위기 요인들에 대처하지 않고 있다가 블랙 스완이 발생하면 대책이 없습니다. 부채가 늘어나고 고정 지출이 많아 지출이 경직된 상태에서 실직이나 암 같은 위기들이 다가오면 정말 대처하기가 힘듭니다. 이때 견딜 수 있으려면 구조를 조정하고 구체적인 위기는 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조 변화란 대출을 지속해서 줄이고, 고정 지출을 줄여 유연성을 확대하면서, 다가오는 퇴직에 대비해 제2의 직업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대비책이란 ‘사망, 질병, 사고’ 등에 대비해서 보험에 가입하고, 실직이나 갑작스러운 소득 저하에 대비해서 비상 자금을 마련해 놓는 것입니다. 가정마다 안고 있는 문제가 다르고 해결책이 다르겠지만, 우리 가정에 ‘회색 코뿔소’는 무엇이고 대비해야 할 ‘블랙 스완’은 무엇인지 개념을 가지고 생각해 보면 어떤 변화가 필요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자녀들과 배우자의 다양한 경제적 요구들을 종합해서 지출구조를 조정하고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는 가정 경제의 리더십이 아주 중요하다. [사진 pxhere]

자녀들과 배우자의 다양한 경제적 요구들을 종합해서 지출구조를 조정하고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는 가정 경제의 리더십이 아주 중요하다. [사진 pxhere]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할 때, 위기가 다가올 때 가정경제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자녀들과 배우자의 다양한 경제적 요구들을 종합해서 지출구조를 조정하고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는 가정 경제의 리더십이 아주 중요합니다. ‘학원비를 줄이고 이사를 하고 차를 바꾸는 일 등’을 아빠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도 없는 시대이고 결정해서도 안 됩니다. 옛날처럼 아빠가 결정한다고 모든 가족이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내나 자녀들의 요구가 가장이 책임질 수 있는 한계를 넘을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가정 경제에도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리더가 누구이든 현재 가정의 상황을 가족들과 함께 대화하고 고민하고 공감대를 이룰 줄 알고, 필요한 변화를 가족이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리더십이 있을 때 그 가정은 위기를 피하거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아무 걱정, 염려 없이 살아온 가정보다 힘을 모아 어려움을 이겨낸 경험이 있는 가정이 화목하고 서로 도우면서 사는 멋진 가정을 이룹니다. 가장이나 부모가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어려움을 드러내고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습이 가족 간의 결속을 더 강하게 하고 또 다른 어려움이 닥쳐와도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줍니다.
 
한국재무심리센터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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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진 신성진 한국재무심리센터 대표 필진

[신성진의 돈의 심리학] 같은 환경, 같은 조건인데도 누구는 부자가 되고 누구는 가난해진다. 그건 돈을 대하는 마음이 다른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이른바 재무심리다. 오랜 세월 재무상담을 진행하고 강의도 한 필자가 재무심리의 신비한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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