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규제 꺼리는 정부
제도권 금융으로 인정하지 않아
법·제도 가이드라인 안 만들어
보험사, 거래소의 상품 가입 꺼려
파산해도 한 푼도 배상 못 받아
가상자산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해킹을 비롯한 사고도 증가해 고객 피해도 늘고 있다.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 3월까지 거래소 해킹 사건은 총 8건, 피해 규모는 12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정부는 가상자산 투자광풍이 불었던 2017년 말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설립하고 소비자 보호를 위해 법·제도 등을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가상자산 투기·처벌 강화를 위해 당시 가상자산 TF 주무부처를 금융위원회에서 그해 12월 법무부로 이관했지만 지금껏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도 지난해 초 ‘가상통화 거래 실명제’를 실시하고 ‘자금세탁방지업무 가이드라인’을 도입했을 뿐 실질적인 가상자산 가이드라인이나 피해 보장에 대한 대안은 없는 상태다. 정부가 이렇게 소극적으로 나오는 배경은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를 정식으로 규제하면 가상자산을 제도권 금융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관련 규제 도입을 꺼리고 있다.
현재 가상자산 규제 법안으로는 지난 3월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전부다. 개정안은 11월 말 정무위원회를 통과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의결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특금법 개정안이 정무위 문턱은 넘었지만 거래소를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법은 아니다. 특금법 개정안은 암호화폐를 가상자산으로 정의하고,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실명 확인 입출금 계좌 사용, 고객 확인 의무 등 정보통신서비스 사업자의 자금세탁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요건을 담았을 뿐이다.
현행법상 가상자산 거래소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로 분류된다. 해킹·횡령 등으로 투자자에게 피해가 발생하거나 거래소가 파산해도 거래소가 배상할 책임을 규정한 법은 없다. 지난 6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일정 기준 이상의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관련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손해배상책임 이행을 보장하는 데 한정돼 있다.
“세금 부과 전에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거래소 관계자들은 “투자자 보호책을 마련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A가상자산 거래소 대표는 “규제 테두리 안에 들어가야 안전장치를 마련할수 있는데 현재의 법 테두리에서는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가상자산에 대한 가이드라인부터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거래소가 투자자 보호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거래소 보안을 강화하거나 가상자산 피해 보험상품에 가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보험사들이 까다로운 가입 요건을 내세웠고 보상범위도 좁아 가입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B거래소 대표는 “여러 보험사에 해킹 등에 따른 피해 보험 가입을 문의했지만 보험사들도 사고가 나면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가상자산 거래 수익에 대한 과세 방안에 나서기로 하면서 이를 둘러싼 불만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내년 안으로 가상자산에 소득세를 물리는 세법 개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원칙 아래 가상자산 관련 과세 방안을 논의해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가이드라인도 없는 가상자산에 세금을 부과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며 “가상자산 산업을 키우는 정책을 먼저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