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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파도가 사는 해변, 나자레의 절벽언덕에 서다

중앙일보 2019.12.13 10:00

[더,오래] 권지애의 리스본 골목여행(5)

 
넓고 긴 모래사장, 반달 모양의 웅장하고 하얀 모래가 눈부신 해변 나자레. [사진 권지애]

넓고 긴 모래사장, 반달 모양의 웅장하고 하얀 모래가 눈부신 해변 나자레. [사진 권지애]

 
서퍼들과 순례자들의  나자레
나자레(Nazare) 방향으로 가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 전부터 잔뜩 들떠 있었다. 여전히 초보딱지를 떼지 못해도 서핑을 배우고 난 후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 바로 포르투갈의 나자레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 15미터 높이의 파도가 서퍼를 삼켰지만 다행히 안전하게 구출되었다는 뉴스까지 접한 탓인지 거대한 괴물 파도에 대한 기대감이 극에 달한 채 세계적인 서퍼들의 성지 나자레에 도착했다.
 
높이 110m, 크기 318m 규모의 시티우(Sitio) 절벽언덕.

높이 110m, 크기 318m 규모의 시티우(Sitio) 절벽언덕.

성지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 도시. 독특하고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이 카메라 앞에서 멋지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지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 도시. 독특하고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이 카메라 앞에서 멋지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수기가 지나서일까 차에서 내려 만난 첫인상은 한적했던 포르투갈의 여느 동네와 비슷한 폼새였다. 굳이 다른 걸 얘기 하자면 수 많은 바닷새들이 하늘을 유영 하듯 빙빙 돌고 있었고 땅콩과 말린 과일 등을 판매하고 있는, 굉장히 독특하고도 화려한 의상을 입은 여인들을 꽤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여인들이 입은 의상은 7개의 패티코트를 겹쳐 입는 나자레 전통 의상이었다. 카메라를 들자 포즈를 취해준 빨간 스커트를 입은 나이 지긋하신 할머님에게서 땅콩 한 봉지를 사 들고 지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무리에 섞여 걸어가 만난 장면은…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땅에서부터 110m 높이, 318m 크기의 시티우(Sitio) 절벽언덕(내가 그렇게 높은 곳에 서 있는지도 몰랐다!)에서 바라본 나자레는 숨을 참은 채 물살을 가르며 나아간 곳에서 거대한 고래를 만난 느낌이랄까. 숨까지 멎게 하는 마술을 부리며 그 흔한 감탄사 조차 뱉지 못한 채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입장료 1유로를 내면 들어 갈 수 있는 서핑 전시장. 파도를 타며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서퍼 누노 산토스의 바이올린과 보드를 만날 수 있다.

입장료 1유로를 내면 들어 갈 수 있는 서핑 전시장. 파도를 타며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서퍼 누노 산토스의 바이올린과 보드를 만날 수 있다.

 
다시는 못볼 사람처럼 그렇게 오랫동안 보고 또 보고 사진을 수 십장 찍은 후에야 정신이 들었고 이내 바로 옆에 위치한 상 미구엘 요새(São Miguel Arcanjo) 안으로 들어 갔다. 입장료 1유로를 내고 들어 갈 수 있는 이 곳에는 서핑과 관련된 전시가 항시 진행중으로 유명 서핑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서퍼의 서핑 보드에서부터 최초 여성 포르투기 보드까지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는데 가장 흥미를 끌었던 것은 파도를 타며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서퍼 누노 산토스(Nuno Santos)의 바이올린과 보드였다. 40피트, 즉 12미터 높이의 파도를 타며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그의 모습,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또한 왜 나자레 북쪽 해변에서 세상 높은 파도가 형성 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역시나 지형이 중요 포인트였다. 북쪽 해변 앞 바다에는 5,000m 깊이의 유럽에서 가장 큰 바다 협곡이 파도의 높이를 증폭시켜 엄청난 괴물 파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와이안 서퍼 개렛 맥나마라가 2011년 이곳에서 약 30m 높이의 파도를 타고난 후 그는 빅웨이브 어워드에서 우승은 물론 기네스 북에 오르기까지 했다. 내가 방문했던 날에는 큰 파도는 없었지만 언젠가 포효할지 모르는 잔잔한 대서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자레에 대한 나의 기대감을 훨씬 넘어섰다.
 
겨울이지만 1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적당한 온도라 페네이로(Peneiro)라고 부르는 고기 건조대에서 고등어와 대구를 말리고 있다.

겨울이지만 1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적당한 온도라 페네이로(Peneiro)라고 부르는 고기 건조대에서 고등어와 대구를 말리고 있다.

 
윗마을에 속하는 시티우 절벽 언덕과 아래 해안가 마을인 페데르네이라(Pederneira)를 연결하는, 전차에 해당되는 푸니쿨라가 운행 중인데 난 쉽게 내려가기 보다는 힘들게 내려가는 계단을 택했다. 급할 것 없으니 천천히, 중간 중간에 놓여진 벤치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며 내려간 마을에는 넓고 긴 모래 반달 모양의 웅장하고 하얀 모래 해변이 눈부신 오후를 장식하고 있었다. 겨울 우기였지만 1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은 온도 덕분에 걷기 딱 좋은 해안가, 우리나라 동해안과 비슷해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낯익은 풍경에 걸음을 멈춰본다. 페네이로(Peneiro)라고 부르는 고기 건조대에서 고등어와 대구를 말리고 있는 할머니는 연신 포르투갈 말로 뭐라 하시는데 아무래도 생선을 사라고 하는 얘기 인 듯. 그러다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려 하니 버럭 화를 내시곤 뒤돌아 서는 것 마저 훈훈하게 느껴지는 그날의 순간.
 
전 세계에서 서핑을 사랑하는, 파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성지인 동시에 이 곳은 순례자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나자레 성모, 바로 직접 보고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바로 그 검은 성모상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 이곳은 4세기 경에 이스라엘의 나자렛(Nazareth)에서 가져왔다는 마리아상이 있었으나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하다가 8세기 경에 발견되면서 성지 순례지가 되었다. 무동력 운동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서퍼들과 그런 서퍼들의 파도타기를 보기 위한 관광객 그리고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순례자들로 나자레는 파도처럼 넘실대듯 넘쳐 흐른다.
 
콘텐트 크리에이터·여행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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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애 권지애 콘텐트 크리에이터 필진

[권지애의 리스본 골목 여행] 대항해시대 찬란한 부귀영화를 누렸던 포르투갈, 수도인 리스본은 화려한 과거의 향기와 현재의 아름다운 격동이 끊임없이 물결치는 곳이다. 유럽의 서쪽, 서쪽의 끝에서 대서양을 향해 부르던 서글펐던 파두의 선율은 이제 이방인들에겐 매혹적인 선물로 다가온다. 하지만 와인과 에그타르트, 해산물 그리고 가성비 좋은 물가만으로 표현되기에 리스본 속에 펼쳐진 역사의 흔적들은 여행의 가치를 높여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거 향기로 가득한, 프라이빗한 골목 속으로 함께 거닐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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