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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8차 화성사건, 경찰·국과수 조작 정황 포착"

중앙일보 2019.12.12 17:25
검찰이 8차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됐던 윤모씨(52)가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 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체모 조작'으로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섰다. 당시 윤씨가 범인으로 몰린 결정적 증거는 변사체에서 발견된 체모와 윤씨의 체모가 동일하다는 국과수의 감정 결과였다. 하지만 검찰은 국과수의 1차 분석 당시 윤씨의 체모가 처음부터 포함돼 있지 않았던 정황을 포착하고 경찰과 국과수가 감정 결과를 조작했는지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檢 "경찰·국과수 사건 조작"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 온 윤모(52) 씨가 재심청구서를 들고 지난달 1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 온 윤모(52) 씨가 재심청구서를 들고 지난달 1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8차 화성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의 한 가정집에서 A양(당시 13세)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범인으로 지목된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을 복역하다 2009년 가석방됐다. 윤씨는 2·3심 재판에서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춘재가 "8차 화성 사건도 내가 저질렀다"고 자백함에 따라 윤씨는 지난달 13일 수원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8차 화성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수원지검은 최근 국과수로부터 사건 당시 경찰의 감정의뢰서와 국과수가 만든 감정 결과서 등을 임의로 제출받아 분석 중이다.
 
당시 경찰의 수사기록에 따르면 경찰은 1989년 6월 말 윤씨를 포함해 수사 선상에 오른 11명의 체모에 대한 방사성동위원소 분석을 국과수에 1차 의뢰했다. 보름가량 뒤 국과수가 윤씨의 체모와 변사체에서 발견된 체모가 동일하다는 결과를 구두로 통보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감정 결과를 받은 경찰은 다시 윤씨의 체모만 따로 국과수에 보내 재감정의뢰를 했고, 2차 감정 결과 역시 "동일하다"는 취지의 답변이 왔다고 한다.
 

윤씨 체모 분석 의뢰 안 했는데…경찰 "분석 결과 동일"

황성연 수원지검 전문공보관이 11일 수원지검 브리핑실에서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과 관련해 검찰이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황성연 수원지검 전문공보관이 11일 수원지검 브리핑실에서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과 관련해 검찰이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검찰이 확인한 경찰의 1차 분석의뢰서엔 윤씨의 이름이 펜으로 줄이 그어져 삭제된 채 10명의 분석 의뢰만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과수가 윤씨의 체모를 분석하지 않았는데도 변사체에서 발견된 체모와 윤씨의 체모가 동일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것이다. 검찰이 입수한 국과수의 1차 감정 결과서엔 "의뢰한 10명 모두 일치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내용도 담겼다고 한다. 검찰은 윤씨의 체모에 대한 분석의뢰가 없었는데도 경찰이 수사 기록에 동일한 분석 결과를 얻은 것처럼 허위 내용을 기재한 뒤 재감정의뢰를 신청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국과수의 1·2차 감정 당시 변사체에서 발견된 체모의 성분 분석 결과가 각기 다르다는 점도 포착하고 이 역시 조작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윤씨의 변호인인 박준영 변호사도 검찰에 보낸 의견서에 "(변사체 발견 체모의) 감정 결과 차이가 큰 이유는 두 음모가 동일인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두 개의 상이한 감정 결과가 나온 과정 및 이유를 확인해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춘재가 자백한 14건의 연쇄살인 사건. 그래픽=신재민 기자

이춘재가 자백한 14건의 연쇄살인 사건. 그래픽=신재민 기자

당시 국과수의 감정 결과는 윤씨가 8차 화성사건의 범인으로 특정된 결정적 근거가 됐다. 경찰은 국과수의 2차 감정 결과를 회신받은 다음 날인 1989년 7월 25일 윤씨를 임의동행했고 그로부터 사흘 뒤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윤씨가 경찰로부터 폭행과 가혹 행위 등을 받아 허위 자백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할 방침이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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