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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레 중·러 타박만 들었다···대북 '유엔 제재' 카드 잃은 트럼프

중앙일보 2019.12.12 14:03
북한의 인공위성 또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 징후 때문에 11일 긴급 소집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 러시아의 반대로 추가 제재 카드를 잃었다.[로이터=연합뉴스]

북한의 인공위성 또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 징후 때문에 11일 긴급 소집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 러시아의 반대로 추가 제재 카드를 잃었다.[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북한 비핵화 게임에서 안보리 추가 제재 카드를 잃었다. 북한의 연말 도발을 막기 위해 소집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중국·러시아로부터 거꾸로 "제재 완화를 제안하라"는 타박을 들었다. 김 위원장의 연말 시한론에 동조한 북·중·러 연대 전선만 확인했다. 북한이 인공위성 형태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해도 안보리 추가 제재를 통한 최대한 압박(maximum pressure)으로 복귀할 수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중·러의 요구대로 대북 제재 완화 카드를 쓸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안보리 미사일 회의서 美 "안보리가 행동해야"
중·러 대사 "제재 완화로 북한 진전 유도해야"
전문가 "金, 1단계로 위성 발사해 반응 잴 것"
"대선 앞둔 트럼프 양보도 힘들어 말 폭탄 뿐"

트럼프 대통령과 켈리 크래프트 미국 유엔대사는 이날 안보리 상임이사국 '빅5'의 지지를 확보하려고 5일 백악관 초청 오찬까지 마련하면서 공을 들였지만,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크래프트 대사는 2016년 대선 때 트럼프에 200만 달러 이상 기부한 뒤 캐나다 대사에 이어 장관급 유엔대사로 승진한 사실상 트럼프의 분신에 가깝다.
 
1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북한 미사일 회의에서 12월 의장인 켈리 크래프트 미국 대사가 의사봉을 들고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AFP=연합뉴스]

1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북한 미사일 회의에서 12월 의장인 켈리 크래프트 미국 대사가 의사봉을 들고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AFP=연합뉴스]

12월 안보리 의장국으로 사회까지 맡은 미국은 이날 회의에서 북한을 향해 강도 높게 경고했다. 크래프트 대사는 "올해 20여발에 이르는 미사일 발사는 사거리와 관계없이 명백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며 "공개 성명을 통해 우주 발사체(인공위성)이나 미 본토 타격용 ICBM 발사 같은 심각한 도발을 재개할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럴 경우 안보리는 그에 맞춰 행동할 모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며 강조했다. 올해 트럼프 행정부의 금기어였던 안보리 결의 위반이란 말까지 쓰면서 인공위성이든 ICBM이든 북한이 도발을 강행할 경우 안보리가 추가 제재에 나서야 한다고 쐐기를 박은 셈이다.
 
장쥔 중국 유엔대사가 11일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최고 우선과제는 북미 대화 재개와 긴장 완화"라며 "안보리가 '가역 조항'을 발동시키는 방식으로 대북 제재를 수정해 북한의 비핵화 진전을 유인해야 한다"고 말했다.[유엔]

장쥔 중국 유엔대사가 11일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최고 우선과제는 북미 대화 재개와 긴장 완화"라며 "안보리가 '가역 조항'을 발동시키는 방식으로 대북 제재를 수정해 북한의 비핵화 진전을 유인해야 한다"고 말했다.[유엔]

하지만 미국의 안보리 추가 제재 추진은 곧바로 중국·러시아에 가로막혔다. 이들은 추가 제재가 아니라 오히려 제재 완화 카드로 북한을 협상으로 유인해야 한다며 북한 편에 섰기 때문이다.
 
장쥔(張軍) 중국 대사는 "북한도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을 오랫동안 중단하며 많은 노력을 했다"고 인정한 뒤 "안보리가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대화에 유익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대북 제재를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제재를 완화한 뒤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되돌리도록 '가역 조항'(reversible clause·스냅백)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조건부로 제재를 완화해 북한이 비핵화를 진전하도록 유인해야 한다고 했다. 바실리네반자 러시아 대사도 "비핵화 대가로 아무것도 제안하지 않고선 어떤 합의도 이룰 수 없다"며 거들었다.

 
이날 안보리 회의 이후에 대해 전문가들은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수전 손튼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은 이날 중앙일보에 "예전에도 그랬듯 운전석에 앉아 있는 북한이 모두가 북한이 무얼 할지 초조하게 기다리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며 "미국 쪽 대화의 문은 닫히지 않았지만, 북한은 자기 쪽 문을 열 의향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북한은 당장 ICBM 발사보다 1단계로 인공위성을 발사해 미국과 국제 사회의 대응 수위를 재보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위성 발사에 어떻게 반응을 할지 알 수 없지만, 미국은 비핵화 대화 재개를 위한 문을 계속 열어둘 것"이라고 말했다.
 
켄 고스 해군분석센터(CNA) 적성국 분석국장도 "북한은 중·장거리를 건너뛰고 위성 발사를 명분으로 내세워 ICBM을 발사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댛 제재를 강화할 수도, 국내 정치 여건상 제재 완화 카드를 쓰기도 힘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스 국장은 "내년 상황은 2017년과 같은 '말 폭탄' 갈등 상황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면서 "미국은 효과 없는 압박에 매달리는 대신 북한 비핵화라는 협소한 전략에서 벗어나 중국을 겨냥한 더 큰 지역 전략으로 전환해 북·중을 떨어뜨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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