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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넛 노래는 힙합 아니다" 대법, 키디비 디스에 유죄 확정

중앙일보 2019.12.12 11:47
여성래퍼를 모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래퍼 블랙넛(김대웅)이 지난 7월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여성래퍼를 모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래퍼 블랙넛(김대웅)이 지난 7월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랩퍼 키디비를 노래 가사와 공연 등으로 모욕한 혐의를 받는 블랙넛에게 12일 유죄(징역 6월-집행유예 2년)가 확정됐다. 
 

"힙합이란 이름 빌린 성적 희롱에 불과"
대법, 블랙넛 노래에 예술성 인정 안해
힙합 디스문화 바뀔까 "피해자 특정이 핵심"

블랙넛 유죄, 왜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이날 블랙넛이 키디비를 디스(힙합에서 상대방을 비난하는 행위)한 가사가 "피해자를 성적으로 비하하고 욕구 해소의 도구로 삼아 모욕죄가 성립된다"며 유죄를 선고한 1·2심 판결을 확정했다. 
 
블랙넛의 변호인은 "노래에서 키디비를 특정하지 않았고 욕구 해소 대상으로 삼지 않았으며 디스는 힙합의 관행"이란 주장을 제기했으나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블랙넛(왼쪽)과 래퍼 키디비. 블랙넛은 선정적 가사로 키디비를 모욕한 혐의로 기소됐다. 법정에서 블랙넛은 ’고의성이 없었다“고 항변했다. [연합뉴스]

블랙넛(왼쪽)과 래퍼 키디비. 블랙넛은 선정적 가사로 키디비를 모욕한 혐의로 기소됐다. 법정에서 블랙넛은 ’고의성이 없었다“고 항변했다. [연합뉴스]

법조계와 예술계에선 이날 대법원의 판결이 단순 모욕죄를 넘어 한국 힙합 디스 문화에 영향을 끼칠 판결이라 전망한다. 하재근 문화 평론가는 "과도한 성적 비하와 조롱이 난무하는 한국 힙합계에 경종을 울린 판결"이라 말했다. 
 

"블랙넛 노래 힙합 아냐"

대법원은 이날 블랙넛에게 유죄를 확정하며 키디비를 디스한 블랙넛의 노래 '인디고 차일드''투 리얼''100'의 예술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위 노래들에 대해 "힙합의 형식을 빌렸을 뿐 정당한 원인도 맥락도 없는 성적 희롱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블랙넛의 노래를 예술이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또 "힙합에선 다른 예술 분야와 달리 성적 모욕 행위가 더 용인된다고 볼 합리적 근거도 없다"고 밝혔다. 성적 조롱과 모욕 문제에 있어선 힙합이라 해서 특별히 봐줄 수 없다는 것이다. 
 
Mnet '쇼미더머니4'. 디스랩배틀을 하고 있다. 디스랩을 하는 송민호가 보란 듯 누워서 눈을 감고 있는 '블랙넛'. [사진 Mnet]

Mnet '쇼미더머니4'. 디스랩배틀을 하고 있다. 디스랩을 하는 송민호가 보란 듯 누워서 눈을 감고 있는 '블랙넛'. [사진 Mnet]

오선희 변호사(법무법인 혜명)은 "내가 자유롭게 성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과 그 표현이 다른 성별을 비하하고 특정인을 공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헌법 제11조는 성평등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자유롭게 말하되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줘선 안된다는 것이 이날 대법원 판결의 핵심"이라 말했다. 
 

키디비 특정, 본질과 상관 없다 

블랙넛 판결에서 주목할 또다른 점은 법원이 특정 여성을 성적 욕구의 해소 대상으로 삼은 블랙넛의 가사를 모욕죄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정'과 '성적 도구'란 단어다. 
 
대법원과 1·2심은 블랙넛이 가사에서 '키디비'를 특정했기에 키디비가 피해를 받았다고 봤다. 블랙넛은 노래 가사에서 키디비를 수차례 언급했다. 
 
법원은 "피해자를 특정하는 것은 노래의 전체적인 주제와 전혀 무관하며 특별한 필요성도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법원은 그렇기에 블랙넛의 가사가 키디비를 성적 도구로 삼은 것이라 판단했다. 
 
검찰은 블랙넛이 "피해자(키디비)가 인기를 끌자 블랙넛이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키디비를 조롱하는 가사를 썼다"고도 주장했다. 
 
과거 '즐거운 사라'등 외설 소설을 썼다는 혐의로 검찰이 기소됐던 고 마광수 연세대학교 교수의 모습. [중앙포토]

과거 '즐거운 사라'등 외설 소설을 썼다는 혐의로 검찰이 기소됐던 고 마광수 연세대학교 교수의 모습. [중앙포토]

부장판사 출신인 도진기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특정 여성을 겨냥한 노래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라며 "블랙넛의 가사에 어떤 공적 목적이나 예술 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과거 검찰이 내용이 외설적이라며 기소해 논란이 됐던 고(故)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와 만화작가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사건 등과는 결이 다른 판결이란 것이다. 당시 검찰의 기소에 대해 문화 예술계에선 인간의 근본적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 강력 반발했다.
 
한국 힙합 문화의 새로운 장르를 쓴 것으로 평가받는 쇼미더머니 제작 발표해. [연합뉴스]

한국 힙합 문화의 새로운 장르를 쓴 것으로 평가받는 쇼미더머니 제작 발표해. [연합뉴스]

힙합 문화엔 어떤 영향

이날 대법원의 판결이 한국 힙합의 디스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주목된다. 모욕죄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이날 대법원의 판결이 '이젠 힙합 가수들이 성적 가사는 쓰면 안된다'는 뜻은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특정인을 구체적으로 겨냥해 공개적으로 성적 모욕을 하는 디스 문화에는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양 변호사는 "블랙넛의 유죄 판결에 이견은 없지만 원칙적으로 예술 문화계에서 표현의 자유는 폭넓게 인정되는 것이 맞다"며 "대법원이 어떤 기준에서 힙합 가사의 모욕죄가 적용되는지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지점"이라 지적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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