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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많은 장모의 모습? 밤의 여왕 아리아 들어보세요

중앙일보 2019.12.12 08:00

[더,오래]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10)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왔던 드라마 'SKY캐슬' 초반부에 영재 어머니의 선택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영재가 우여곡절 끝에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순간에 가족 간 절연을 선언함으로써 엄마는 자살하고 그 가족은 파탄 납니다. 정상에 오르는 순간에 절명의 나락으로 떨어진 영재 엄마를 보며 우리는 한탄과 동정을 쏟아냈었지요. 인생이란 매 순간이 빛과 그림자의 공존임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1791년 모차르트가 죽기 몇 개월 전에 초연된 '마술피리'는, 동화 같은 스토리 속에 삶과 죽음, 빛과 그림자 등 동전의 양면을 품고 있는 인생의 심오한 철학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녹여낸 오페라입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사진 Wikimedia Commons]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사진 Wikimedia Commons]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는 '마술피리'는 사실 깊은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허나 그것 말고도 재미있게 즐길 거리가 많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잔소리하는 장모의 모습을 교차시켜 익살스럽게 표현했던 밤의 여왕의 아리아가 대표적입니다. 그 같은 휘황찬란한 기교를 뽐내는 아리아와 흥겹게 재롱떠는 파파게노의 연기, 그리고 용과 사자들이 등장하는 동화 같은 장면 등 볼거리까지 풍성하지요.
 
막이 열리면, 숲속에서 길을 헤매던 왕자 타미노앞에 시녀들이 나타나 파미나의 초상화를 보여주니 왕자는 첫눈에 반했답니다. 그런데 공주가 악당인 자라스트로에게 납치되었다는 말을 듣고 구출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밤의 여왕. [사진 Wikimedia Commons]

밤의 여왕. [사진 Wikimedia Commons]

 
이때 밤의 여왕이 나타나 왕자에게 딸을 구해달라고 부탁하며 신비한 힘을 지닌 마술피리를 줍니다. 새잡이 파파게노도 왕자와 동행하도록 지시하고, 공주가 갇힌 자라스트로의 성까지 안내해주지요. 자라스트로는 산 자의 여신 이시스(Isis)와 죽은 자의 남신인 오시리스(Osiris)를 모시는 태양계를 대표하는 제사장입니다.
 
타미노 왕자는 성에서 파미나 공주를 만났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자라스트로는 밤의 여왕이 악행을 일삼았으며, 그녀로부터 공주를 지키기 위해 납치를 했다고 하는군요. 왕자와 공주는 혼란스럽답니다. 그들에게 선은 악이 되고, 어둠은 빛이 되는 순간입니다. 특히 믿고 따랐던 어머니의 본 모습을 전해 듣게 된 공주는 정체성에 혼돈이 일게 되지요. 자라스트로가 공주를 지켜준다면서 납치하고 감금한 것이 정당한지도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라스트로는 왕자에게 어둠의 장막을 걷고 신성한 빛을 보기 위해 시험을 거치도록 요구합니다. 그가 시련을 이겨내도록 지혜를 달라는 기도까지 해주는 겁니다. 시험을 돌파하기 위해 떠나려는 타미노는 이별을 두려워 하는 공주에게 사랑을 다짐하며 다독입니다.
 
공주에게 자라스트로를 제거하라고 명하는 밤의 여왕. [사진 Flickr]

공주에게 자라스트로를 제거하라고 명하는 밤의 여왕. [사진 Flickr]

 
자라스트로를 제거하고 공주를 구할 것으로 믿었던 왕자가 도리어 자라스트로의 시험에 들게 되자, 파미나 앞에 밤의 여왕이 나타납니다. 공주에게 칼을 주면서 자라스트로를 죽이라고 합니다. 이때 부르는 아리아가 그 유명한 ‘지옥의 복수심이 불타오른다’이지요. 

 
 
허나 아직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없는 공주는 어머니의 명을 따를 수 없어 괴로워합니다. 이때 왕자가 마술피리를 부는 소리를 듣고 왕자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왕자는 첫 번째 시험인 ‘침묵’ 수행 중입니다. 여자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는 시험이지요. 왕자와 파파게노 앞에 미녀들이 나타나 유혹하며 말을 걸었지만 그들은 굳건히 견뎌내는 중이에요.
 
공주는 왕자를 반가워하지만 왕자는 말없이 수행을 엄수합니다. 자신에게 한 마디도 않는 왕자에게 실망한 공주는 여왕이 준 칼로 자신을 해치려고까지 하지요. 다행히 천사의 도움으로 왕자가 자신과의 사랑을 위하여 고통을 견디고 있음을 알게 된답니다.
 
왕자의 본심을 알게 된 공주는 “사랑이 나를 이끌고 나는 당신을 이끌어요”라며 함께 시련을 이겨내기로 합니다. 남은 두 가지 시험인 불의 시련과 물의 시련을 모두 사랑의 힘으로 통과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어려운 단계마다 밤의 여왕이 준 마술피리가 왕자와 공주를 지켜주었답니다.
 
왕자와 같이 수행 중인 새잡이 파파게노는 어여쁜 색시와 함께 알콩달콩 살아가기를 바라는 평범한 우리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그런 자신의 소원을 담아 부르는 노래가 ‘소녀나 여인을 원해’라는 아리아인데요, 이 노래에서 그는 소녀와의 달콤한 키스를 꿈꾸고 자신만의 소박한 낙원을 소망한답니다.
 
 
그때 이전에 만난 적이 있던 한 노파가 나타나 자신에게 영원히 성실할 것을 약속한다면 예쁜 사랑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파파게노가 서약하자 노파는 갑자기 젊은 여인으로 변하지요. 두 사람은 서로 반갑고 놀라운 마음을 담아 빠르고 경쾌한 2중창을 부르고 결혼해서 예쁜 아기 많이 낳자며 행복해합니다.

 
소망하던 자신의 피앙세를 만난 파파게노. [사진 Flickr]

소망하던 자신의 피앙세를 만난 파파게노. [사진 Flickr]

 
태양계에서 죄를 짓고 도망쳐 밤의 여왕에게 의탁한 장수를 거느리고 여왕이 나타나 자라스트로에게 복수를 외치지만, 번개가 내려치면서 모두가 쓰러집니다. 천둥이 친 후에 찬란한 태양계가 드러나고 시련을 이겨낸 타미노와 파미나가 손을 잡고 서 있습니다. 자라스트로는 신의 은총에 감사하고, 장엄한 합창이 두 사람의 승리를 축복하면서 막을 내린답니다.
 
윤동주의 시 ‘길’에서 그는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다’고 했습니다. 시인은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한 구도자의 삶을 읊조리면서, 동시에 무엇을 어디에서 잃은 지도 모르고 하루하루를 사는 우리의 모습을 그의 성찰을 통하여 보여주려 합니다. 또한 오페라 '마술피리'에서와 같이 선과 악, 빛과 어둠 그리고 시작과 끝은 통한다는 삶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지요.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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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철 한형철 오페라 해설가 필진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 평생 다닌 직장을 명퇴하고, 100세 시대에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 또 고민했다. 기술을 배우고 자격증을 따는 등 좌충우돌하다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지금은 취미였던 오페라를 해설하며 제2의 인생을 행복하게 산다. 종합예술인 오페라에는 우리네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일체의 편견 없이 청바지 입고 오페라 산책에 나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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