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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잘해라' 韓 응원하는 日···자체 '방위비 카드' 없어 끙끙

중앙일보 2019.12.12 05:00
일본이 내년부터 미국과 벌일 주일미군 주둔경비(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앞두고 이미 줄다리기에 돌입한 한·미 간 교섭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이 어느 정도 선방을 하느냐에 따라 일본의 대응 수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유효기간이 일정하지 않은 한국과 달리 일본의 경우 5년 치를 한꺼번에 결정하는 만큼 미국의 압박이 더욱 거셀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고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은 11일 전했다.  
 

내년 말까지 협상…2021년부터 5년간 적용
트럼프, 11월 미 대선 기간 내내 압박할 듯
고노 "다른 나라 비해 日 분담금 매우 높아"
日 차세대 전투기 공동개발 카드 만지작

먼저 협상 시점 자체가 일본엔 난관이다. 내년 여름부터 본격 협상에 들어가 12월에 합의하면 2021년부터 5년간 적용된다. 그런데 내년 11월에 미국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어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기간 내내 일본을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예상해서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유세장에서 동맹들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치적으로 내세우곤 했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과 회담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분담금 관련 논의 내용을 공개 거론했다. 그는 “일본은 우리를 돕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은 돈을 갖고 있다. 유복한 나라다”라고 아베 총리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왼쪽)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 두번째) 부부와 함께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인 가가함에 승선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5월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왼쪽)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 두번째) 부부와 함께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인 가가함에 승선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얼마나 증액을 요청할지도 관건이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닛케이에 “지난 7월 당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방일했을 때, 일본 측에 (구체적인 금액을 밝히지 않고) 대폭 증액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한때 일본 내에선 일말의 낙관론도 있었다. 미 정부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방위비 분담 비율은 다른 동맹국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2004년 미 국방부는 일본의 분담비가 75%로 한국(40%), 독일(32%)을 앞선다고 발표했다.   
 
주한·주일 미군 2020 예산안.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주한·주일 미군 2020 예산안.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일본의 분담비가 높은 것은 이른바 ‘배려예산(思いやり予算)’ 때문이다. 원래 미국 측이 지급해야 할 미군기지 근로자 인건비, 공공요금(전기·가스·수도), 기지 내 주택 보수·유지비 등을 일본 측이 배려 차원에서 부담한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주일미군 5만4000여명(지난해 9월 현재)에 대한 일본 측 분담 금액은 3888억 엔(약 4조2700억원)인데, 그중 절반인 1974억 엔(약 2조1700억원)이 배려예산에 해당한다.
 
일본 정부도 이점을 줄곧 내세웠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방위상은 지난 10일 각의(국무회의 해당) 후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부담하는) 주둔경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높다는 것은 미·일 쌍방이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4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미·일 양 정부 간 합의에 기초해 적절히 분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널드-신조’ 관계로 불릴 정도로 돈독한 양국 정상 간 물밑 교섭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지난 9월 타결한 미·일 무역협상에서 일본 측이 많은 양보를 했고, 자위대의 호르무즈 해협 파견을 결정한 것도 미국의 분담금 압박 카드를 상쇄하기 위한 포석이란 분석도 나온다.  
 
주일 미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는 일본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에 MV-22 오스프리 수직이착륙기들이 착륙해 있다. [EPA=연합뉴스]

주일 미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는 일본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에 MV-22 오스프리 수직이착륙기들이 착륙해 있다. [EPA=연합뉴스]

 
일본이 분담금을 높이는 대신 미국산 첨단무기 구매, 무기 공동개발 등을 카드로 내밀 가능성도 높다. 개발비만 1조5000억 엔(약 16조4800억원)으로 추산되는 일본의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F-2 후속기) 개발 사업도 그중 하나다.
10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록히드마틴이 사업 참여를 원하는 가운데 일본은 영국 BAE시스템스와 협력 카드를 내밀고 있다. 고노 방위상은 FT에 “유럽과 공동개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이 유럽 업체와 무기 공동개발에 나선 전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대놓고 미국을 압박하는 발언인 셈이다. 
 
그러나 '협상가'인 트럼프 대통령이 사안별로 분리해 협상하는 전술을 구사하는 만큼 이런 일본의 노력이 얼마나 효과를 볼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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