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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 아웅산 수지의 도박…집단학살 피고석 직접 서다

중앙일보 2019.12.12 05:00
지난 10일 '로힝야 학살' 혐의 ICJ 법정에 변호인단장으로 출석한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 [AFP=연합뉴스]

지난 10일 '로힝야 학살' 혐의 ICJ 법정에 변호인단장으로 출석한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 [AFP=연합뉴스]

 
지난 10일(현지시간)은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지 꼭 28년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이날 수지 고문의 일정은 축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날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ICJ) 본부에 출석하는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미얀마의 소수민족인 로힝야에 대한 탄압을 이유로 미얀마 군을 감비아가 ICJ에 제소했고, 수지는 그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헤이그까지 간 참이었다. 한때 군사 정권에 항거하는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그가, 이젠 소수민족을 집단학살한 주범의 얼굴로 나선 셈이다.  
 
수지 고문은 11일(현지시간) 직접 말문을 열었다. 미얀마 군이 로힝야 족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기 위한 작전을 펼친 적이 없다는 주장을 했다. 그는 ”로힝야 족의 무장 세력은 사전 조율을 통해 전면적으로 무장 공격을 했고, 이에 미얀마 정부군이 대응을 한 것뿐”이라는 주장을 폈다.    
 

수지, 왜 직접 나섰나  

 
이번 ICJ 재판에 수지 고문은 반드시 나설 필요가 없었다. ICJ에 피소된 건 미얀마 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지 고문은 스스로 나서는 방법을 택했다. 그 나름의 정면 돌파다. 로힝야 족 탄압으로 인해 미얀마 정부와 군이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을 돌파해보겠다는 승부수다. 미얀마의 로힝야 탄압을 비판해온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아무도 수지 고문의 등을 떠밀고 있지 않지만 그는 스스로 나서기로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로힝야 난민촌의 아이. 로힝야 족에 대한 미얀마의 탄압은 국제적 비판을 받았다. [중앙포토]

로힝야 난민촌의 아이. 로힝야 족에 대한 미얀마의 탄압은 국제적 비판을 받았다. [중앙포토]

 
수지 고문이 나서는 건 의미가 크다. 아웅산 수지의 공식 직함은 국가 고문 겸 외교 장관이지만 사실상 국가 수반이기 때문이다. ICJ라는 국제사회의 최고 법정에서 미얀마를 대표해 직접 대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미얀마 정부도 총력전에 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 키아우 틴 국제협력부 장관은 지난달 기자들에게 “우리는 이번 재판을 미얀마와 미얀마 국민 전체의 이익과 관련된 사안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런 총력전엔 ICJ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미얀마의 절박함이 깔려있다. 로힝야 집단학살과 관련해 미얀마는 다수의 사법 절차를 목전에 두고 있다. 영국 버마 로힝야 협회가 아르헨티나 법원에 수지 고문을 집단학살 혐의로 제소하기도 했다. 수지 고문은 아예 ICJ에서부터 기선을 잡겠다고 마음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 잃고 국내 지지 얻고  

 
수지 고문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은 이번 ICJ 출석을 계기로 더 끓어올랐다. 휴먼라이츠워치(HRW)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 담당은 “아웅산 수지가 헤이그에 가는 모습을 보며 왜 국제사회가 그를 한때나마 인권을 존중하는 인물로 여겼는지 의문이다”라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조작(manfacturing)이자 교활한 술책(ruse)이었다”고 비판했다. “아웅산 수지의 명예는 추락했다”(LA타임스), “수지 고문의 변신은 서구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워싱턴포스트) 등의 반응이 나왔다.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이 27일 오전 부산 누리마루에서 열린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이 27일 오전 부산 누리마루에서 열린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수지 고문이 이를 예측하지 못했을리 없다. 국제사회 비난은 안고 가겠다는 각오를 했기에 헤이그 행도 결심했을 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 배경엔 미얀마의 현지 국민 정서와 내년에 치러질 선거가 있다. 수지 고문으로서는 국내 정치를 셈법에 넣고 이번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적어도 미얀마 국내에선 수지 고문의 이번 선택은 환영받고 있다. 헤이그행을 발표한 뒤 그를 지지하는 집회가 연이어 열렸다. 현지 언론 미얀마 타임스에 따르면 ‘우리는 지도자 수지와 함께 한다’는 플래카드가 등장한 집회가 30여회 진행됐다고 한다. 일부 시민은 헤이그까지 따라가 ICJ 앞에서도 수지 고문 지지 집회를 했다.  
 

미얀마 vs 로힝야

 
미얀마는 불교 국가다. 소수민족 로힝야 족은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다. 이 둘 사이의 갈등이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의미있게 보도된 건 2017년 8월이었다. 미안먀 서부 라카인 주에서 로힝야 족의 반군이 미얀마 정부의 경찰 초소를 공격하면서다. 당시 로힝야 족은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불교인 미얀마 정부 군이 로힝야를 공격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상황은 뉴욕타임스 등에 생생히 보도되며 미얀마가 인종청소(genocide)를 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미얀마 측은 이에 대해 “국제사회가 일부 서구 언론의 가짜 뉴스만을 믿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  
 
수지 고문에게 로힝야족 사태는 아킬레스 건이다.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 운동가이자 인권 옹호론자로 자리매김했던 수지였기에 더더욱 로힝야 족 사태의 심각성에 민감했을 터다. 그러나 그는 내년 선거를 앞두고 로힝야 족에 대한 비판 수위를 더 높이고 있고, 이는 국내 지지도 상승으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그러나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무슬림 족인 로힝야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은 게 사실이다. WP는 "수지 고문이 국내 정치를 의식해 로힝야 족에 대한 강경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웅산 수찌 미얀마 국가고문이 26일 오후 부산 해운대 조선웨스틴호텔에서 양자회담을 하기 앞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문재인 대통령과 아웅산 수찌 미얀마 국가고문이 26일 오후 부산 해운대 조선웨스틴호텔에서 양자회담을 하기 앞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수지 고문은 11일 “미얀마 군은 사실 로힝야 족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며 “과도한 물리력이 사용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미얀마 정부가 군을 조사하고 처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적극적으로 미얀마 정부가 (미얀마) 군을 조사하고 기소하는 상황인데, 이런 곳에서 집단학살이라는 것이 가능했겠느냐”고 주장했다. 미얀마 타임스는 “이번 ICJ 변론으로 (국제사회에서 로힝야 족을 옹호하는) 가짜 뉴스가 근절될 수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WP 등 외신은 그러나 결국 수지 고문이 국내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국제 사회에서의 비난을 감수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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