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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헌신했는데 나가라니…" 삼례예술촌 책공방 사제의 눈물

중앙일보 2019.12.12 05:00
전북 완주군 삼례문화예술촌에 있는 책공방북아트센터에서 김진섭(53) 대표가 강의하고 있다. [사진 책공방]

전북 완주군 삼례문화예술촌에 있는 책공방북아트센터에서 김진섭(53) 대표가 강의하고 있다. [사진 책공방]

"삼례문화예술촌 책공방 제자 ○○○를 지켜 주십시오."
 

[이슈추적]
김진섭 책공방 대표 "부당하다" 호소
"예술촌 수탁업체가 제자 해고…갑질"
두 사람, 7년간 손발 맞춘 출판 전문가
수탁업체 "고용 연장 요구는 월권" 반박
군 "개입 권한 없다"…"무책임" 지적도

전북 완주에 있는 책공방북아트센터(이하 책공방) 김진섭(53) 대표가 지난 6일 문화계 지인에게 보낸 호소문 일부다. 김 대표가 지키려는 제자 A씨(34)는 책공방 시작부터 7년간 그와 손발을 맞춰 온 출판 기획 전문가다.  
 
김 대표는 "삼례문화예술촌 수탁업체 아트네트웍스 대표가 책공방 제자에게 (사전 설명도 없이)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e메일로) 보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열심히 근무해 온 지역 청년을 무 자르듯 자르는 갑질이 계속된다면 절대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삼례문화예술촌은 어떤 곳이고, 도대체 책공방 사제(師弟)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김 대표의 책공방은 전북 완주군 삼례읍 삼례문화예술촌 안에 자리한다. 예술촌은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양곡창고를 완주군이 국비·군비 40억원을 들여 2013년 6월 복합 문화 공간으로 꾸민 곳이다. 김상림목공소 등 7개 문화시설이 모여 있다. 쓰레기가 나뒹굴던 애물단지가 지금은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리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전북 완주군 삼례읍 삼례문화예술촌을 상공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일제 강점기 지어진 양곡창고를 완주군이 40억원을 들여 2013년 6월 복합 문화 공간으로 꾸민 곳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북 완주군 삼례읍 삼례문화예술촌을 상공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일제 강점기 지어진 양곡창고를 완주군이 40억원을 들여 2013년 6월 복합 문화 공간으로 꾸민 곳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첫해부터 책공방을 운영해 온 김 대표는 국내 대표적인 책 만드는 장인(匠人)이다. 그가 출간한 『책기계 수집기』는 지난달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을 받았다. 책공방은 김 대표가 책을 만들고, 누구나 책 만드는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김 대표가 20여 년간 모아 온 인쇄 관련 기계 80여 종과 책만드는 도구 1000여 점도 전시되고 있다.
 
김 대표에 따르면 A씨는 2013년 6월 삼례문화예술촌이 문을 열면서 정식 면접을 거쳐 책공방에 입사했다. 민간 위탁 특성상 매년 1년 단위로 최근까지 7년간 근로 계약을 갱신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1월 완주군의 위탁을 받아 예술촌을 운영하는 수탁기관이 애초 삼삼예예미미협동조합에서 아트네트웍스로 바뀌면서 고용 갈등이 시작됐다는 게 김 대표 주장이다. 삼례문화예술촌은 7개 문화시설마다 대표(관장)가 있지만, 예술촌을 만든 완주군이 한시적으로 운영을 맡긴 수탁기관이 직원 임면권을 갖는 구조다.
 
김 대표는 호소문에서 "그쪽(아트네트웍스)에서 (파견 근무 형식으로 새로 직원을 뽑는다며)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A씨는) 지난해 8월 근로 계약을 맺게 됐다"며 "당시 제자는 계약 기간에 대해 책공방 운영에 따른 자동 갱신을 요구했고, 아트네트웍스 대표로부터 '(내년 12월 31일까지) 책공방이 있는 동안 자동으로 연장될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올해 계약 기간을 30일 남긴 지난 11월 30일 '계약 연장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김 대표는 "이런 날에도 제자는 흔들림 없이 책을 만들기 위해 야근까지 해가며 편집에 여념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문화·예술 분야의 경우)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일을 배우면서 연관성 있는 업무를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며 "그래서 밥그릇(일자리)만은 건들지 말아 달라고 아트네트웍스 대표에게 누누이 부탁했는데 모든 기대를 허무는 갑질이 또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삼례문화예술촌은 아트네트웍스의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 완주군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라며 A씨가 책공방을 떠나지 않게 지켜 달라고 거듭 당부하며 글을 맺었다. 완주군에 따르면 아트네트웍스의 계약 기간은 3년이다. 완주군은 아트네트웍스에 지난해 5억원, 올해 6억원을 지원했고, 내년 예산은 잠정적으로 6억3000만원을 책정했다.
 
책공방 내부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책공방 내부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김 대표는 1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책공방에는 직원 한 사람은 꼭 필요하다. 그러면 일 잘하고, 전문성 있고, 7년이란 노동 행위를 (나와) 똑같이 해온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는 게 상식이다. 3년짜리 수탁자가 채용 권한을 앞세워 애먼 직원을 자르라고 압박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토로했다. 그는 "완주군은 말로는 지역 청년 일자리를 만든다고 강조하는데 정작 현실은 전문직을 키우고 기술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공간은 적고, 일자리도 1~2년 단기 계약직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아트네트웍스 측은 "A씨와 근로 계약을 연장하지 않은 건 법적으로 전혀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책공방에서 A씨의 고용 승계를 주장하는 건 월권"이라고 반박했다. "아트네트웍스가 삼례문화예술촌의 새 수탁기관이 된 만큼 직원 채용을 포함한 예술촌 전체 운영 권한을 행사하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다.
 
심가희(60) 아트네트웍스 대표는 "(근무 기간이) 2년 넘어가면 정직원이 된다고 해서 아트네트웍스뿐 아니라 예술촌 내 문화시설 직원 대부분을 2년 되기 전에 교체했다"며 "일률적으로 이렇게 하는데 왜 책공방만 이를 거부하고, 직원은 왜 꼭 A씨여야만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건 특혜이자 다른 지원자의 취업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며 "책공방 요구만 따르면 우리는 아무 권한도 없는 허수아비냐"고 했다.    
 
심 대표는 "우리 기준이 담긴 계약서가 있는데도 지난해 8월 A씨 본인이 '계약 기간은 자동으로 연장된다'는 문구가 적힌 계약서를 작성해 왔다"며 "그때는 정신이 없어 양보했지만, 올해 1월 다시 계약할 때는 너무 부당해서 그 문구를 빼라고 했다"고 했다. 계약 연장 약속에 대해서는 "검토만 하겠다고 했지 확답을 준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책공방북아트센터 김진섭(53) 대표가 출간한 『책기계 수집기』. 지난달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을 받았다. [사진 책공방]

책공방북아트센터 김진섭(53) 대표가 출간한 『책기계 수집기』. 지난달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을 받았다. [사진 책공방]

그는 "지난해부터 A씨가 꼭 필요한 직원이면 어차피 예산(인건비)은 완주군에서 나가니 책공방에서 직접 채용하라고 제안했는데 불발됐다"고 했다. 하지만 심 대표의 제안은 법규상 수탁자가 둘이 되거나 재위탁 문제가 발생해 완주군과 책공방 모두 거절한 것으로 파악됐다.
 
논란이 불거지자 "완주군이 수탁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한 채 양측의 중재자 역할은커녕 강 건너 불구경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완주군은 "양측 갈등에 개입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완주군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삼례문화예술촌이 전국적인 관광지가 된 것은 책공방의 공이 크다"면서도 "사정은 안타깝지만, 근로 계약을 아트네트웍스와 해당 근로자가 체결했기 때문에 군에선 누구 편도 들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용자가 부담을 갖는 부분(근로자 계약 연장)을 제3자인 군이 강제할 수는 없다"고 했다.  
 
책공방에서 근무하는 A씨가 올해 아트네트웍스 측과 작성한 근로 계약서 일부. [사진 A씨]

책공방에서 근무하는 A씨가 올해 아트네트웍스 측과 작성한 근로 계약서 일부. [사진 A씨]

당사자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A씨는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열악한 여건에도 열심히 일했는데 그 대가가 이건가 싶어 자괴감이 든다. 많이 억울하고 부당한 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예술촌이 제 문제로 입길에 오르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A씨는 "삼례문화예술촌은 민간 위탁 사업이기 때문에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이 문구는 그동안 근로 계약서를 쓸 때마다 넣어 왔고, 근무 기간이 2년을 넘겨도 정규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심 대표도 안다"고 말했다. 기간제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2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를 고용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하지만,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는 예외적으로 2년을 넘겨 기간제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게 돼 있다.
 
A씨는 김 대표와 함께 공방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모아 만든 『책공방, 삼례의 기록』으로 2017년 한국출판평론상 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한 사람의 전문가를 키우려면 오랜 숙련 기간이 필요한데 문화를 이야기하고 전문성을 추구한다는 아트네트웍스는 사람을 키우지는 않고 자꾸 바꾼다"고 했다.
 
그는 "완주군에서 책마을을 만든다고 했고, 선생님(김 대표)이 같이 해보자고 해서 꿈을 향해 여기까지 왔다"며 "삼례문화예술촌이 파주출판도시와 다르게 마을 한 바퀴를 돌면 한 권의 책을 완성할 수 있고, 지역의 이야기를 품은 곳으로 성장시키는 게 꿈"이라고 했다.  
 
책공방 내부 모습. [사진 책공방]

책공방 내부 모습. [사진 책공방]

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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