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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감방 동기

중앙일보 2019.12.12 00:15 종합 35면 지면보기
최민우 정치팀 차장

최민우 정치팀 차장

9일 심재철(61) 한국당 원내대표가 당선되고 채 1시간도 안 돼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문희상(74) 국회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민주화 동지로 말하면, 이인영보다 심재철이 나랑 더 빨리 만났어요. 합동수사본부 감방 동기야!”
 
문 의장의 언급은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을 말한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신군부는 “김대중 일당이 북한 사주를 받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도했다”며 DJ 주변 인사를 싹 잡아들였다. 문 의장은 DJ 장남 김홍일 전 의원과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 활동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투옥당했다. 심 원내대표는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남산 중앙정보부가 아닌 치안본부 특수대에 끌려가 사건 연루자 중 가장 혹독한 고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교동 직계와 학생운동권으로 비슷한 시기 옥고를 치렀지만 이후 둘의 정치행적은 확연히 달랐다. 문 의장은 1988년 평민당 후보로 정계에 입문했다. 의정부에서만 6선에 성공했다. 2014년 야당 대표 시절엔 청와대 회동에서 “김무성 미워하지 마라”고 해 박근혜 대통령의 파안대소를 이끈, 노련한 협상가였다. 반면 심 원내대표는 MBC 노조 초대위원장을 거쳐 YS의 민주 인사 영입 차원에서 90년대 중반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집요한 근성을 무기 삼아 지난해엔 청와대 업무추진비 폭로를 이끌었다.
 
진영은 갈라졌으나 국회의장과 야당 원내대표로서 재회, 딱히 불편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10일 문 의장이 한국당을 뺀 예산안 통과에 나서면서 둘은 충돌했다. 심 원내대표로선 선출 33시간 만에 옛 감방 동기에게 고약한 선물을 받은 셈이다. 심 원내대표는 “공천 세습”(문 의장 아들은 의정부 지역구 부위원장)이라고 맞불을 놓고 있다. 막장 드라마가 시작됐다.
 
최민우 정치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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